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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15. 2017

⎨PODCAST⎬
유럽 음악 축제 순례기

BOOKDIO COVER STORY


여름의 한 복판,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부릴수록 사람들은 휴가를 얻어 떠나곤 한다. 유럽 또한 일상을 벗어나 떠나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대표적인 여행지일 것이다. 여름의 유럽은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일터를 떠나 온 직장인들로만 북적이지 않는다. 음악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온, 전 세계의 클래식 음악 팬들도 함께 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런던과 에든버러,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브레겐츠, 스위스의 베르비에와 루체른, 독일의 뮌헨과 바이로이트, 이탈리아의 페사로와 베로나. 여름이 시작되는 6월부터 가을이 시작되는 9월 초까지... 축제가 열리는 유럽 각지에서는 다양한 교향악과 오페라들이 무대 위에 올려진다.  


지정된 콘서트홀에서 올려지는 공연이 있는가 하면, 일 년에 한 시즌뿐인 축제만을 위해 지어진 극장에서 이뤄지는 공연도 있고, 그 오래전 로마 검투사들이 맹수를 사냥하고 결투를 하던 원형 경기장에서도, 호수 위에 설치된 그 해의 공연만을 위한 무대 세트 위에도 공연이 진행된다. 


뉘엿뉘엿 지는 노을 속에서 시작되어, 별빛이 반짝이는 밤까지 계속되는 공연들... 클래식을 잘 알건, 클래식을 잘 모르건... 상관이 없다. 그냥 그 순간의 분위기에 취하고, 그 나라의 분위기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면 그만... 모든 걸 잊고 오롯이 그 순간에 몰입하는 경험... 그런 경험을 하기 위해 우리는 그 동안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축제가 열리는 여러 지역 중, 나는 오늘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이탈리아의 베로나, 그리고 영국의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박종호



1.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천재 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고향, 20세기를 풍미한 마에스트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고향. 그리고 도레미 송으로 유명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 서른이 넘어 처음 떠난 여행에서 만난 잘츠부르크는 아주 작은 도시였다.  


잘자흐 강이 도시를 끼고 돌고...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작은 시가지의 꼭대기에는 사제의 몸으로 한 여인을 사랑했다는 대주교가 거처하던 호엔 잘츠부르크 성이 보인다. 그리고 그 뒤로 병풍처럼 알프스의 자락들이 둘러싸여 있는데, 도시 전체가 오페라의 세트 일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도시는, 7월 말에 시작하여 8월 말까지 약 다섯 주에서 여섯 주간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든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모여든 관객들로 북적인다. 클래식 음악을 알진 못해도 이름은 익히 들어보았을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등...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악단들...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들과 연주자들까지... 지구촌의 내로라하는 클래식 스타들이 이 작은 산골도시에 모여든다.  

인터넷으로 미리 티켓을 구하지 못했대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츠에 있는 공식 매표소에서도 표를 구할 수 있고, 잘츠부르크 시내 거리의 상점들 중 ‘티켓 있음’ 이라고 붙여둔 곳에서도 구할 수 있다. 심지어 축제에 참여하는 음악가들이 머무는 호텔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까. 


티켓을 구했으니 잘츠부르크가 자랑하는 카페에서 커피도 한 잔 해야겠다. 모차르트 초콜릿이라 불리는 모차르트 쿠겔른을 처음 만든 카페 ‘퓌르스트’도 좋고,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초콜릿 케이크인 ‘자허 토르테’를 먹어볼 수 있는 잘츠부르크의 호텔 자허 내 카페도 괜찮다. 달콤한 초콜릿에 곁들일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오늘 밤 내 귓가를 간질여줄 음악들을 기대해 본다. 커피를 마신 후에는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잘자흐 강변을 산책하며 시간을 보내본다. 


오늘 내가 볼 공연은 이탈리아 작곡가인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 잘츠부르크 대성당 앞 돔플라츠에 마련된 임시 무대에서 열리는 공연이다. 음향이 좋은 극장이나 강당, 성당에서의 공연도 좋겠지만, 이렇게 야외에서 볼 수 있는 오페라야 말로 여름의 유럽 음악 축제에서 만끽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음악과 함께 와인이나 맥주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것도 없지... 


해질녘 시작된 공연은 별들이 반짝이는 밤이 되어 끝날 거다. 아마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오페라 <아이다>에 나오는 합창 ‘개선 행진곡’의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돌아갈 거다... 


  

2.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이탈리아의 베로나 하면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청춘 남녀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의 배경이었던 도시... 그리고 몇 년 전 부터는 ‘여름이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오페라 하우스로 변신하는 원형경기장의 도시’로도 알게 되었다. 


고대 로마 시대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던 ‘아레나 디 베로나’. 우연히 알게 된 원형경기장의 훌륭한 음향효과는 무대에서 전 객석까지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훌륭히 전달되는 것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음향효과가 마이크나 스피커 하나 없이 원형경기장의 벽과 계단을 통한 공명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도, 그와 함께 활동했던 플라시도 도밍고나 호세 카레라스도... 세계 최정상의 오페라 가수들이 이 아레나 디 베로나의 무대에 섰다. 그들이 부르는 감미로운 노래와, 솔솔 불어오는 여름밤의 바람... 그리고 2천년이라는 세월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고적만이 가지는 특별한 분위기... 그 모든 것이 하나로 어우러져 새로운 걸작품으로 탄생한다. 


한 여름의 햇빛에 달궈진 원형경기장의 돌들이 식어가는 아홉 시...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내가 그토록 이곳에서 보고 싶었던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 그 언젠가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영상으로 보고 감탄했던 베로나의 <토스카>를 실제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은 너무나 감격스럽다.  


어느 새 시간이 흘러 오페라가 끝나는 3막... 피 묻은 셔츠를 입은 남자 주인공 ‘카바라도시’가 죽음을 앞두고... 남겨질 연인 ‘토스카’에게 편지를 쓰다가 오열하며 부르는 노래 ‘별은 빛나건만’이 시작되었다. 노래 제목처럼 아레나 디 베로나의 하늘에는 어느 새 떴는지 모를 별들이 빛난다... 


베로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베로나를 부르는 호칭, ‘아름다운 베로나.’라는 뜻의 ‘벨라 베로나’ 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 순간. 이 순간을 베어내 영원토록 간직하고 싶다.    



3. BBC Proms 

가장 늦게까지 계속되는 유럽 클래식 음악 축제인 영국의 BBC 프롬스. 7월 중순에 시작해 9월 초에 끝나는 일정이라 꼭 유럽의 여름을 마무리하는 마침표 같은 존재다. 


BBC 프롬스는 내게 처음으로 유럽의 클래식 음악 축제라는 것을 알게 해 준 행사였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에서 축제 폐막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앵콜곡으로 연주되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의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관객과, 오케스트라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관객들을 지휘하는 지휘자의 모습에서 무척 큰 임팩트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로열 앨버트 홀을 빽빽이 채운 관객들과, 그 관객들이 들고 있는 각국의 국기들, 그리고 그들이 하나 되어 부르는 노래... 이 모든 것들이 ‘축제란 바로 이런 것이다.’ 라고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영국 여행을 가게 된다면 꼭 이 프롬스의 마지막 날 콘서트를 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축제를 ‘클래식 음악계의 월드컵’ 이라고 부른다. 클래식 음악계의 종가 역할을 하는 유럽의 많은 오케스트라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다른 대륙의 오케스트라까지도 초청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몇 년 전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이 초청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해의 참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는 건 좀 아쉽게 느껴진다. 


올해도 전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들이 총출동 했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 베르나르드 하이팅크, 파보 예르비, 존 엘리엇 가디너, 사이먼 래틀, 리카르도 샤이, 발레리 계르기예프... 빈 필하모닉을 위시한 유럽 유명 오케스트라들,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 런던 심포니, 로열 콘세르트 허바우 오케스트라, 베를린 슈타츠 카펠레, 유럽 챔버 오캐스트라도 함께 한다. 뿐만 아니라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피아니스트 안드레아스 쉬프, 에마누엘 엑스까지... 한국에서 공연을 보기도 힘들지만 공연 티켓 가격은 엄청나게 비싼 이들의 무대를 싸게는 우리나라 돈으로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매력을 가진 음악축제임은 분명하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클래식 기악 음악 뿐 아니라 합창, 오페라, 영화음악, 현대음악 등 여러 장르의 음악들을 즐길 수 있다. 올해는 특별히 영화음악 감독 존 윌리엄스 탄생 85주년을 기념하는 공연도 가졌단다.  

시즌 마지막 날의 공연 Last Concert. 이 날은 입장 티켓을 구하지 못했다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로열 앨버트 홀 건너편의 하이드 파크에서 공연 실황을 중계해준다. 차려입지 않고 캐주얼한 복장으로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앉아 영국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홀짝이며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거다.   


『이지 클래식』류인하


4. 

유럽, 하면 누구나 꿈꾸는 이미지가 있을 거다. 어떤 이들에게는 빛나는 바로크와 르네상스의 중심지, 또 어떤 이들에게는 살아있는 왕과 왕비, 왕자 공주가 살고 있는 곳. 또 다른 이들에게는 뛰어난 건축물들과 박물관들이 즐비한 곳... 


하지만 내게는 18, 19, 20세기의 음악과 역사들이 현재와 공존하는 곳이다. 어딜 가나 거리의 악사들이 반겨주며, 풍경 하나하나에도 그들의 음악이 깃들어 있고, 어렵지 않게 그들 삶에 녹아든 그 시대의 음악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그곳으로 떠나고 있다. 알프스와 작은 강이 흐르는 잘츠부르크, 가장 큰 야외 콘서트장이 된 아 레나가 있는 베로나, 그리고 아직도 중세의 여왕님을 만날 수 있는 런던으로...


Written by 류인하
yoohwanj@naver.com
https://brunch.co.kr/@yoohwa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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