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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16. 2017

이미 한 게임 뛴 기분이야

17-18 EPL Episode 1.


 “겨울이 오고 있다”


 지난겨울 이적 시장. 리버풀은 선수 보강을 미루었다. 겨울을 알뜰히 보내고 다가오는 여름 시원하게 영입을 이어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면서 말이다. 하지만 겨울을 맞이한 리버풀 선수단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아프리카 네이션스 컵으로 지난 시즌 에이스였던 마네가 떠났고, 선수들은 강도 높은 프레스 전술에 체력이 몹시 떨어져 있었다. 그런 리버풀이었기에 겨울 이적 시장을 그냥 보내는 리버풀에 불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반면에 리버풀과 클롭 감독의 결정을 응원하는 팬들도 적지 않았다. 리버풀의 전임 감독 브랜든 로저스 때 시행된 영입 정책의 악몽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로저스 감독은 월드클래스 급의 선수를 사는 것이 아닌, 값싸고 가성비(가 좋다고 알려진) 있는 선수를 다수 영입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챔피언스리그에도 못 나가고 선수층이 두껍지 못했던 리버풀에는 일견 어울리는 정책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성비의 선수들이 바로 그 가성비를 보여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때 영입된 선수들은 자신들의 몸값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했고, 두터워질 것이라 예상했던 선수층에는 마치 지방이 잔뜩 낀 뱃살처럼 우둔해 보이기만 했다. 리버풀 팬들은 이런 실패를 이미 경험해보았기에 앞으로는 한 명을 사더라도 제대로 되고 값비싼 선수를 샀으면 하는 마음을 가졌다. 물론 여기에는 내 돈이 들지 않는다는 심리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팬들은 이번 겨울은 넘기고 여름에 본격적으로 선수 사냥을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물론 긴 겨울을 무사히 넘겨야 했고 궁극적으로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우승은 바라지도 않는다)해야 한다는 선결 조건이 있었지만 말이다.


 다행이었다. 리버풀은 힘든 겨우살이를 마치고 4위로 지난 시즌을 마감했다. 챔피언스리그는 플레이오프를 통과한다면 진출할 수 있게 되었고(보통 프리미어리그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 기세를 몰아 여름 이적 시장에서 빅샤이닝을 보여주면 이번 시즌도 기대해볼 만 했다. 

 리버풀의 타겟은 세 명이었다. AS로마의 윙어 모하메드 살라. 사우트햄튼의 수비수 버질 반 다이크. 그리고 라이프치히의 미드필더 나비 케이타였다. 세 선수 모두 지난 시즌 팀의 중심이라고 불릴 만큼 활약을 했고 포지션으로 보더라도 공격, 미드필드, 수비. 이렇게 리버풀의 약점으로 지목되었던(전부다잖아!) 부분을 보강할 수 있는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팬들의 기대를 샀다. (게다가 이 선수들은 모두 클럽 레코드를 지불해야 할 정도로 비싼 선수들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살라는 클럽 레코드를 깨는 이적료로 리버풀의 선수가 되었다. 하지만 버질 반 다이크와 나비 케이타는 선수는 원하지만, 클럽에서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아직 2주 정도의 이적 기간이 남았지만, 최소한 이번 이적 시장에서 그들에게 리버풀 유니폼을 입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팬들은 다시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이번에 영입한 선수는 엄밀히 말하면 윙 포워드 살라와 레프트 윙백 로버트슨, 그리고 스트라이커 솔란케(자유 이적) 뿐이었다. 사실 리버풀은 작년에도 공격에서는 꽤 강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갑작스레 바르셀로나 DNA가 흐른다는 수아레즈 처럼 확실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무튼, 리버풀의 그런 공격진에 괜찮은 두 선수가 추가된 것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스트라이커 자원인 솔란케는 유망주일 뿐이고 윙 포워드 살라가 추가된 것이 전부라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살라를 영입함으로써 윙에서 뛰던 쿠티뉴를 중앙으로 내린다면 지난 시즌 약점으로 지목되었던 미드필드 진에서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강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감독들이 변명처럼 말하는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와도 비슷했다. (나비 케이타가 왔다면 좋은 음식에 향신료를 더한 듯 기뻤겠지만 말이다) 수비? 그건 여전히 반 다이크를 기다릴 수밖에 방법이 없다. (유스 출신의 조 고메즈가 갑자기 터질 수만 있다면 그것 역시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 것과 다르지 않은 효과일 것이다.) 


AS로마에서 클럽 레코드를 깨고 영입한 살라 | 사진 출처 www.liverpoolfc.com


 이적 시장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까지는 잇몸으로 버티든 어쨌든 버티어 볼 마음이 든다. 게다가 프리시즌에서 활약한 이들의 모습도 고무적이다. 특히 작년에 부상이 없었고 경기장에도 없었던 모레노는 다른 사람이 된 듯 뛰어다녔고 간만에 리버풀 아카데미가 배출한 유스 출신 아놀드와 자유 계약으로 영입한 스트라이커 솔란케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살라를 윙 포워드로 두면서 자리를 중앙으로 옮긴 쿠티뉴는 기대한 것처럼 미드필드 진에서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여주며 광속 공격수들에게 양질의 볼배급을 해주었다. 중앙 수비는 여전히 공이 오지 않기 바랄 뿐이지만 아직 반 다이크 혹은 다른 수비수가 올 가능성이 있으니 희망을 품어보자. 


 어찌 됐든 이 정도면 만족할만한 프리시즌이었다. 여기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프리시즌 중 랄라나가 최소 2개월짜리 부상을 당했다. 리버풀 미드필더진의 유일한 씽크빅 랄라나가 스쿼드에서 빠짐으로써 리버풀의 미드필드는 또다시 우당탕탕 축구부가 되어 버렸다. 게다가 중앙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쿠티뉴 마저 등 부상을   당했다. 경미한 수준이긴 하지만 말이다. 스터리지는 왜 말하지 않느냐고? 그가 언제 부상명단에 없었던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리버풀은 이제 쿠티뉴와 랄라나가 돌아올 때까지 피르미누, 살라, 마네 셋의 연계를 통해 만들어낼, 혹은 헨더슨이 롱 패스를 뿌려주고 스피드로 공을 차지하는 두 가지 옵션의 공격밖에 남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 문제이다. 바이날둠과 찬에게 창의적인 패스를 주문하는 것은 맥도날드에서 와퍼를 주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바꿔 말하면 2개월만 맥도날드에서 잘 버티면 창의력 대장 두 명이 돌아오고 우리는 드디어 와퍼를 주문할 수 있게 된다. 어떤가? 희망의 육즙이 벌써 흐르지 않는가? 하지만 냅킨은 잠시 내려두자. 왜냐하면, 리버풀의 창의력 대장 한 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니까 말이다. 

살라, 피르미누, 마네 쓰리톱의 연계를 믿어야 한다 | 사진 출처 www.liverpoolfc.com


 얼마 전, PSG는 바이아웃 금액으로 네이마르를 영입했다. 돈, 메시, 에이스, 등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이적이었지만 어쨌든 바르셀로나는 팀의 차기 에이스를 놓쳐 버렸다. 가뜩이나 주전 선수들의 노쇠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바르셀로나였기에 젊은 네이마르의 이탈은 뼈아픈 일이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가 어떤 클럽인가. 이가 없으면 다른 이의 이를 뽑아 자신의 이에 부착하는. 돈 많고 역사 많고 선수 욕심마저 많은 클럽이 아닌가. (모든 클럽이 그러고 싶어 한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바르셀로나는 곧장 네이마르의 대체자를 찾아 나섰다. 네이마르를 대체해야 했기에 웬만한 재능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아예 월드클래스 이거나 월드클래스의 가능성이 보이는 최고급 어린 선수를 영입해야 했다. 리버풀로써는 이런 바르셀로나의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봐야 했다. 왜냐하면, 리버풀에 바로 그런 선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바르셀로나가 노리는 최우선 타겟은 도르트문트의 뎀벨레, 그리고 리버풀의 쿠티뉴였다. 남미 선수들의 워너비 클럽 바르셀로나의 부름이었기에 팬들의 불안감은 증폭되었다. 그런 팬들을 진정시키려는 것이었는지 쿠티뉴는 “클럽의 협상이 없는 한, 떠나지 않겠다.”라고 선언을 했다. 우승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지만 빅클럽의 자존심이 있는 리버풀이었고 감독과 구단은 야망을 보여주며 과감히 "Not For Sale"을 선언했다. 이로써 닭 쫓던 개를 바라보듯 바르셀로나를 조롱할 일만 남아 보였다. 시즌 개막 하루 전까지만 해도 분명 그렇게 보였다. 


왜 그랬니 쿠... | 사진 출처 www.liverpoolfc.com


 "쿠티뉴가 이적 요청서를 제출했습니다.
그것도 이메일로"


 왓포드와의 17-18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을 하루 남긴 상황에서 스카이 스포츠를 비롯한 유력 매체들이 쿠티뉴의 소식을 전했다. "이적 요청서 제출." 리버풀 팬들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쿠티뉴가 떠나는 경우는 바르셀로나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했을 때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적 요청서라니… 그것도 개막 하루 전에… 그것도 팀의 에이스가… 충격은 말줄임표 몇 개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표현을 위해 몇 번 더 말줄임표를 남겨보자.

 

………………………………………


 리버풀의 이적 시장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비록 반다이크와 케이타 영입에 난항을 겪고 있긴 했지만, 공격, 미드필드, 수비 이 세 곳(다시 말해 축구의 전부다)의 약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것을 위해 공격진에 살라를 영입했고, 쿠티뉴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내리며 창의력을 극대화 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 모든 계획은 에이스 쿠티뉴를 중심으로 짠 것이다. 그렇기에 쿠티뉴가 빠져 버린다면 1년 농사의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원래는 벼농사를 지으려 했는데 갑자기 과수원으로 전향해야 한다면, 그것도 하루 만에 그것을 해내야 한다면 어떻겠는가? 과즙미고 뭐고 일단 모판을 들고 야반도주하려는 아들놈을 당장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안타까운 점은 쿠티뉴는 리버풀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남미 선수들의 바르셀로나 사랑은 '워너원' 팬덤에 가깝고, 솔직히 말해 우승컵을 들기 위해서는 바르셀로나를 향하는 것이 정확한 선택이다. 왜냐하면, 리버풀은 여전히 야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클롭 감독은 돈으로 우승컵을 사려는 감독이 아니다. 그런 그의 확고한 철학이 리버풀에 이식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최근 리버풀에 부족했던 것은 우승컵보다도 구단을 이끄는 철학이었으니까. 

 그 철학이 마음에 안 들어서 선수가 구단을 떠나는 것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자신이 돈으로라도 우승컵을 사고 싶은 선수라면, 그리고 그에 맞는 실력이 있다면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형제들이나 첼시와 같은 부자 구단으로 떠나는 것이 맞다. 문제는 떠나는 시기와 방식이다. 어찌 됐건 자신을 월드 클래스 반열로 키워 준 구단이다. 그런 구단에게 떠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개막 하루 전에 이적을 요청하는 것. 그것은 철학과 야망을 모두 떠나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바르셀로나가 드림팀이었고 가고 싶었다면 미리 이적 요청을 해야 했던 것이다. 만약 이번 이적이 성사되어 리버풀에 천억이 넘는 돈이 떨어진다 한들 문 닫힌 시장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리버풀과 팬들은 이에 분노하는 것이다. 


자신의 철학(그리고 만개한 웃음)을 잃지 않는 클롭 감독 | 사진 출처 www.liverpoolfc.com


 쿠티뉴의 이적 요청이 있자 바르셀로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리버풀 상점을 찾았다. 이에 구단은 다시 한번 "Not For Sale"을 선언했다. 리버풀은 돈이 없는 구단이 아니며(그렇다고 많이 쓰는 구단도 아니지만) 에이스를 파는 일은 이제 그만할 것이라는 선언이었다. 마스체라노, 알론소, 토레스, 수아레즈 까지. 팀의 핵심 선수들을 매번 팔아온 리버풀. 그래서 우승컵과는 거리가 멀었던 리버풀. 그런 리버풀이 우승컵을 향한 야망을 보여주는 선언이었다. 물론 이적 요청서를 제출한 선수를 마냥 잡아두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와의 껄끄러운 관계가 구단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하지만 야망을 보여주었다는 것. 그와 동시에 클롭 감독의 철학 역시 여전히 확고하다는 것. (문제는 이 둘이 융합되려면 아직 남아 있는 이적 시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이 두 요인은 최악을 가정해 쿠티뉴를 빼앗긴다 하더라도 큰 힘이 될 것이다. 


 경기는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이미 한 게임 뛴 기분.

 17-18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리버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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