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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Sep 14. 2015

오에 겐자부로의 빛과 온도, 오에 히카리

작가를 짓다 - 3화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나는 너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핀의 모험』에서 나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의 핵심은 어떤 일이 있어도 친구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보다 더 중요하다 생각되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옥으로 가도 좋다'라는 메시지이다. 지옥으로 가도 좋다는 말은 강력한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앞뒤 생각하지 않는 무모함을 뜻하기도 한다. 보통 무모함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무모함 뒤에 그것을 감당해도 좋을 만큼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기꺼이 감당했던 무모함처럼 말이다.


오에 겐자부로. 그는 작가로 데뷔하자마자 평단으로 하여금 일본의 미래를 이끌 작가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완벽에 가까웠던 작가다. 그는 1935년 에히메 현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말이 다가오는 시기에 소년기를 보낸 그의 집은 굉장히 가난했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어머니는 자식에게 최대한 많은 책을 전하려 애썼다. 그런 노력으로 오에 겐자부로는 어린 시절 책을 벗 삼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가난한 살림에 많은 책을 사주지는 못해서 오에 겐자부로는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도 오에 겐자부로의 가슴에 깊이 각인된 책은 마크 트웨인 작가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인데 지금까지도 그 책에 등장하는 대사 "지옥으로 가도 좋으니 흑인 청년 짐을 배신하지 않겠다."를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오에 겐자부로가 책, 더 나아가서는 소설과 집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초석은 바로 이렇게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었다. 오에 겐자부로의 어머니는 문학이 사람에게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계셨던 분으로 보인다. 특히 오에 겐자부로의 이 일화를 보면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어느 날 숲 속에서 바닥에 나무를 그리며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너무 흘러 감기에 걸려 버렸는데 너무나 아픈 나머지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오에 겐자부로는 어머니에게 묻는다.

 "저는 죽나요?"

 어머니는 오에 겐자부로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네가 죽더라도 다시 너를 낳을 거야."

 오에 겐자부로는 다시 어머니에게 물었다.
 "그 애는 다른 애가 아닐까요?"

 그러자 어머니는 오에 겐자부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네가 아는 모든 것과 네가 읽은 모든 책을 가르칠 거란다."


짧은 에피소드지만 이 이야기만 봐도 오에 겐자부로의 어머니가 문학과 인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의 어머니는 사람의 육체는 그야말로 육체일 뿐, 더 중요한 가치는 한 사람이 배우고 익힌 책과 지식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문학적 가치관이 확고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오에 겐자부로는 후에 자신을 스스로 '읽는 인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 발단은 이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오에 겐자부로를 지은 사람이 어머니인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조금 더 들어보자.)


그런 소년 시절을 보낸 오에는 도쿄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의 스승이라 할 수 있는 와타나베 가즈오를 만난다. 불문학자였던 와타나베 가즈오 밑에서 오에는 불문학과 철학을 배운다. 그중에서도 사르트르의 작품과 철학에 깊이 빠져드는데 이는 후에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활동에도 크게 영향을 끼친다.

(어 그렇다면 이 사람이 오에 겐자부로를 지은 사람?? 아니다. 조금만 더 들어보자.)


와타나베 가즈오 밑에서 가르침을 받는 동시에 오에 겐자부로는 집필 활동을 시작한다. 사실 오에 겐자부로는 소설가 지망생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친구인 이타미 주조(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파 영화감독)가 방황하고 있을 때 그를 즐겁게 해주고자 탐정 소설을 한 편 쓰면서 집필활동을 시작한다.

흔히 전후 세대로 불리는 오에 겐자부로는 전쟁 후 일본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작품을 본격적으로 집필하기 시작하는데 그가 가진 문학적 천재성 때문인지 평단은 일찍 그의 재능을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23세라는 어린 나이에 『사육』이라는 작품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 기록은 최연소 수상 기록이기도 했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후에도 오에 겐자부로는 활발한 집필 활동을 이어간다. 그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의 높은 평가는 물론이고, 방황하던 일본 젊은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이끌어낸다. 그렇게 스타 작가가 되어갈 무렵 오에 겐자부로는 결혼을 하게 되는데 아내와 만난 사연이 꽤 흥미롭다.



오에 겐자부로의 친구 이타미 주조. (또 나온다...) 그의 어머니가 『푸우야,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라는 책을 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타미 주조의 어머니는 전쟁통에 그 책을 잃어버려 다시 구하고 있었는데 오에 겐자부로는 친구의 부탁을 받아 도쿄의 헌책방에서 이 책을 찾아 주었다. 오에 겐자부로는 어렵게 구한 책을 그 집에 보내게 됐는데 그 일을 계기로 그녀의 딸과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 사랑은 허리케인 이라!!)


아내와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갖게 된 오에 겐자부로. 하지만 태어날 아기가 장애를 가지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오에 겐자부로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뇌 탈장 진단을 받고 큰 수술에 들어간다. 수술을 통해 목숨은 이어갈 수 있었지만 아이는 지적장애와 함께 눈과 귀를 쓰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장애우를 격렬히 꺼리는 분위기가 있어서 의사들이 오에 겐자부로 부부의 생각을 물었는데 두 사람은

그런 것에 상관치 않고 아이를 기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아이가 빛을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히카리(빛)로 지었다. 그렇게 오에 겐자부로와 오에 히카리는 처음 만났고 깊은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오에 히카리는 오에 겐자부로의 지극한 보살핌을 바탕으로 눈을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지적 장애는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에 히카리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어울린다거나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 낸다거나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오에 겐자부로는 서두르지 않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오에 히카리에게 모차르트나 쇼팽 같은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에 히카리가 6살이 되던 해였다. 함께 산책하러 나간 가족들은 오에 히카리가 처음으로 완벽한 한 문장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바로 "저건 흰 눈썹 뜸부기예요."라는 말이었다. 오에 겐자부로가 놀라서 히카리가 가리키는 곳을 보자 그곳엔 정말 흰 눈썹 뜸부기가 있었다.

누군가는 이 문장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에 겐자부로에게 이 문장은 정말이지 큰 의미가 되었을 것이다. 이 문장은 오에 히카리가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을 온전히 재창조하여 다시 세상에 펼쳐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히카리가 세상을 향해 완전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때, 오에 겐자부로 역시 자신의 새로운 문학 인생을 시작한다. 보통 작가의 문학세계를 몇 기, 몇 기로 나누어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평단에서 임의로 나누는 경우가 많다. 작가들은 그저 자연스럽게 작품 세계가 변화했을 뿐이고 그것을 특별히 인지해서 방향을 확 틀어버리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스스로 자신의 문학 생활을 3기로 나누고 이 시기부터 2기 문학 인생이 시작되었다 밝히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1기 시절은 앞서 말했듯이 전후 세대 작가로서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2기가 시작되며 오에 겐자부로는 '사소설'이라 불리는 형식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소설'은 일본 문학의 작법 방법의 하나로 작가가 직접 경험한 일을 중요 소재로 쓰는 소설을 말한다)

그 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개인적 체험』이다. 이 작품은 '신초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지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자식의 죽음을 바로는 아버지가 등장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 외에도 『허공의 괴물 아구이』 『우리들의 광기를 참고 견딜 길을 가르쳐 달라』 『핀치러너 조서』 『새로운 인간이야, 눈을 떠라』 『조용한 생활』 등 이 시기에 펼쳐낸 모든 작품에는 오에 겐자부로와 히카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이 작품들 속 화자는 대개 작가인 경우가 많고, 그의 아들은 모리, 이요, 혹은 본명인 히카리 라는 이름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이처럼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문학 2기를 사소설의 형태를 빌어 히카리를 오롯이 담아냈다. 그의 사회 비판적 시선이 담긴 작품을 좋아했던 이들은 그가 사소설을 쓰기 시작하자 심한 비판을 가해오기도 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히카리를 유괴하겠다고 협박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하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이런 비판과 격렬한 반대 시선이 던져지면 강한 심장을 가진이라도 주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흔들림 없이 자신이 목표한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나간다. 오에 겐자부로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작품 속에 히카리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히카리와 40년 동안 살았고, 그 아이에 관해 쓰는 것은 제 문학표현의 커다란 기둥 중 하나입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그는 히카리를 담은 2기 작품을 통해 사회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의 공생이라는 주제를 펼쳐낼 수 있었다. 이것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던 1기 문학에서 한층 더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되어주었는데 이 과정은 히카리가 아니었다면 오에 겐자부로가 찾아내기 어려웠을 부분임이 분명하다.


이렇게 더욱 넓어진 오에 겐자부로 문학 세계를 제대로 보여준 작품으로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 『히로시마 노트』와 1967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이 있다. 이 작품은 사회적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서술한 1기 소설의 특징에 사회적 약자와의 공존을 고민한 2기 소설의 특징이 절묘히 결합된 오에 겐자부로 최고의 걸작으로 불리고 있다. 이 작품은 1860년, 시코쿠 마을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와 1960년 일어난 안보투쟁을 연결해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완전히 부서지는 개개인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1995년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으로 불린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달받던 그 날에도 오에 겐자부로는 히카리와 함께 집에 있었다. 스웨덴에서 걸려온 전화는 오에 히카리가 처음 받았다. (오에 히카리는 전화를 받는 게 취미였다고 한다. 그래서 '여보세요'와 '안녕하세요'를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한국어로 완벽히 구사한다고 한다)

오에 히카리는 전화를 받고 'No'라고 답하고는 다시 "아니요."라고 답했다. 그리고서 오에 겐자부로에게 전화기를 넘겨주었는데 스웨덴 아카데미 노벨 문학상 선정 위원회의 위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당신이 겐자부로 씨입니까?"

오에 겐자부로는 히카리가 자신 대신 노벨상 수상을 거부했는지 물어보고는 수상을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오에 겐자부로는 다시 소파에 앉은 뒤에 가족들에게 노벨상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는데 가족들의 반응은 이랬다.


"아, 그래요?"


이 황당한 반응에 더해 히카리의 동생인 두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갔고, 빨리 집 밖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과 전화벨 소리가 멈추길 바랐다고 한다. (해마다 고은 시인 집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런 에피소드를 남기며 오에 겐자부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는데 그 후 오에 겐자부로는 2기 문학을 마무리하며 3기 문학을 시작한다. 이 시기에는 1기 때처럼 다시 일반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가 여전히 히카리와 공존하는 삶을 이어가듯, 3기 문학작품에서도 오에 겐자부로는 아이를 통한 자신의 표현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다. 그리고 올해, 보다 사회에 가깝고 직접적인 글을 쓰기 위해 소설 절필 선언을 했다.


절필 선언을 한 오에 겐자부로의 남겨진 작품들을 해석하고 연구하는 일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럴 때마다 오에 히카리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오에 겐자부로 소설에 히카리가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히카리는 다른 작가들의 조력자처럼 오에 겐자부로에게 격렬한 조언을 해주지도, 힘찬 응원을 해주지도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렇지만 히카리는 자신이라는 존재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과 최대한의 행동, 그리고 최대한의 마음으로 오에 겐자부로에게, 그리고 그의 문학세계에 스며 들어갔다. 그 결과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이 작가로서 평생을 바라봐야 할 방향을 똑똑히 잡아낼 수 있었고 그의 중, 후기 문학세계를 완성해 나갈 수 있었다.

이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작품에 있어 히카리는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단 하나의 손가락, 단 하나의 등대임이 분명하다.



겐자부로 하우스의 입주자들.

겐자부로 하우스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특히 그는 3기로 나눈 작품 세계처럼 집을 세 채로 나누어 입주자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더 많은 입주자가 각자의 색깔에 맞게 겐자부로 하우스에 들어와 맘껏 그의 작품을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첫 번째 입주자를 전해보자. 첫 입주자로 선정한 인물은 황석영 작가다. 황석영 작가를 뽑은 이유는 다름 아닌 오에 겐자부로의 예언(?) 때문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예전에 아직 노벨상을 받지 못한 작가 중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묵, 모옌, 그리고 황석영은 반드시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무슨 신기를 발휘한 것인지 그의 입에 언급된 작가 중 르 클레지오, 오르한 파묵, 모옌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제 남은 것은 황석영 작가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겐자부로 하우스에 입주해서 노벨문학상 수상 전화를 기다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입주자로 선정해봤다.


두 번째 입주자는 요미우리 신문의 기자인 오자키 마리코다. 오에 겐자부로의 팬으로서 15년 이상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 세계를 연구한 사람이다. 그런 노력 끝에 그는 오에 겐자부로의 작가 생활 50년을 맞아 대담집을 기획하여 책으로 펴내기도 했는데 한국에는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라는 책으로 출간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 라는 작가와 작품에 관해 궁금한 것이 많았던 독자들은 많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는데 그 공을 높이 사 입주자로 선정했다.



마치며.

오에 겐자부로라는 작가를 지은 오에 히카리의 이야기를 하면서 내내 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오에 겐자부로의 서재 풍경이다. 오에 겐자부로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따로 작업실을 특별히 두지는 않고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글을 쓴다고 한다. 오에 히카리가 음악을 듣고 작곡을 하는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몇십 년을 한결같이 이어져 온 이 풍경은 오에 겐자부로에게 있어 하나의 테마로 자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테마는 그의 삶과 문학에 가장 중요한 스케치이자 밑그림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만약 이 시간 이후에 오에 겐자부로의 책을 읽는 기회가 생긴다면 책 표지를 넘기듯 오에 겐자부로의 테마이자 밑그림인 이 풍경을 슬쩍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럼 그곳에서 히카리의 빛이 전하는 아주 따뜻한 온도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겐자부로 하우스 입주자 여러분께.’

멀리서 단 하나의 빛을 보고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 집을 완성하는 동안 많은 빛을 만났습니다.


때로는 모험심 가득한 빛을 만날 때도 있었고,

때로는 검은 연기와도 같은 뿌연 빛을 만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빛들은 나를, 그리고 이 집을 차근차근 만들어 주었죠.


마침내 창을 낼 때가 되었습니다.

저는 어디로 창을 내야할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제게 낯익은 풍경과도 같은 빛이 비쳤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그 빛을 지나칠 뻔 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길을 붙잡은 그 빛은 지금 제가 손가락을 가리키는 방향을 향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창을 내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그 창 말입니다.


이제 그 창을 향해 또 다른 빛이 비칠 것입니다.

부디 그 빛이 가리키는 방향을 잃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부디 그 빛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되짚어 가보시길 바랍니다.


펜과 종이.  

창을 낼 도구는 이미 충분하답니다.  




<팟캐스트 '책 읽는 라디오' 2015 가을 개편>

'작가를 짓다' 3화   

(방송 듣기)

http://me2.do/FQZyUYWf


<참고자료>

『읽는 인간』 위즈덤하우스

『만엔원년의 풋볼』 웅진지식하우스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 문학과지성사

『작가란 무엇인가2』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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