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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Nov 17. 2017

⎨BOOK REVIEW⎬
아무튼, 쇼핑

BOOKDIO BOOK REVIEW


11월 11일. 한국에서는 빼빼로 데이 혹은 가래떡 데이라는 말도 안되는 행사를 하는 이 시간에 중국에서는 스케일이 다른 행사가 펼쳐진다. ‘광군제’라는 이름의 이 행사는 11월 11일이 싱글들의 외로운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며 시작된 싱글을 위한 날(한국에서는 블랙 데이가 가장 유사하겠다)이다. 


최초의 시작은 난징 지역 대학생들이 만들어냈다고 하는데 지난 2009년 부터는 “그들에게 축제 뿐 아니라 쇼핑의 자유도 주자!”는 개국에 버금가는 명분을 앞세운 알리바바의 참여로 중국. 아니, 이제는 세계 최대 쇼핑의 날로 자리매김 했다. 알리바바는 이 날 하루. 자회사 쇼핑몰인 타오바오몰을 통해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진행했는데 초기에는 주로 전자제품을 할인하다가 최근에는 화장품 등 거의 전품목에서 압도적인 할인 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런 소문덕에 중국 자국민의 구입 뿐 아니라, 해외 직구로도 광군제에 참여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물론 소비를 조장하고 필요 이상의 물건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은 이 하루 동안의 행사를 보고 영수증의 김생민은 “대륙적 스튜핏!”을 날리겠지만 1년의 하루 정도는 솔로든 커플이든 마음껏 쇼핑할 수 있는 날이 있다는 것이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그저 단 하루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11월 11일. 단 하루. 알리바바가 팔아치운 이익은 얼마나 될까? 자그마치 28조원이다. 정말 단 하루 였다. 24시간 안에 중국인들은 알리바바에서만 28조원을 소비했고 전체적으로 보면 50조 이상의 돈을 쇼핑에 쏟아 부었다. 비교 대상이 없으니 이것이 커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비교 수치를 가져와보자. 살펴볼 것은 한국의 지난 온라인 거래 매출인데, 그 규모가 자그마치 60~70조에 달했다고 한다. 광군제를 압도하는 이 스케일! 배달의 나라 한국이기에 가능한 것일까? 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금 말한 한국의 온라인 거래 매출은 1년 합산이니까 말이다. 우리의 1년 매출을 중국은 단 하루만에 달성한 것이다. 이 어마어마한 규모에 턱관절이 당기는 이들이 많을테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아니다. 인구가 적다한들 우리가 어찌 그들에게 소비에서 뒤쳐질 수 있겠는가? 어서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자동로그인된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자. 아직도 결제에 공인인증서 및 카드 번호를 잔뜩 쳐넣는 이들은 없겠지? 페이코든 네이버 페이든 간단하게 인증번호 여섯 자리만 넣자. 그것마저 귀찮다면 지문인식으로 한 번에 쓱- 긁어 버리자. 


아무튼, 쇼핑은 즐거운 것이니까 말이다. 



2. 

쇼핑을 하는 이유. 그 이유를 말할때 주로 사용하는 것은 실용성과 비실용성이다. 추워서 따뜻한 옷을 사는 것은 실용적 쇼핑, 좋아하는 캐릭터의 피규어를 사는 것은 비실용적 쇼핑.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나누긴 어렵다. 다시 예를들어 필요 이상의 열효율성을 자랑하는 점퍼를 적당한 열효율성의 점퍼보다 네 배 넘는 가격에 산다면 이것은 실용적인 것일까?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도 없으면서 좋아하는 가수의 LP를 구입하고 LP자켓을 보며 일주일을 행복한 기분에 살며 일의 능률이 올랐다면 그것은 비실용적인 것일까? 이렇듯 무엇하나 쉽게 정의내릴 수 없는것이 쇼핑이고 보면 볼수록, 또 사면 살수록 오묘해지는 것이 ‘쇼핑의 경지’이다. 이러한 ‘쇼핑의 경지’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남겨보자.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이 질문은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이렇게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함께 만들기 위해 던진 질문이다. 세 출판사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여러 저자들에게 위와 같은 공통의 질문을 던지고, 질문을 받은 필진은 그 답을 에세이로 엮어 한 권의 책을 만든다. 이것이 바로 세 출판사의 공동 출판 시리즈 ‘아무튼’의 시작이었다. 필자들은 이 질문에 각기 개성있는 대답을 해주었는데 어떤 이는 망원동, 어떤이는 피트니스, 어떤이는 서재, 또 어떤이는 게스트하우스, 스릴러, 스웨터. 심지어 관성까지…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를 펼쳐냈다. 그리고 그중 한명인 일러스트레이터 조성민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한가지!” 로 쇼핑을 선택했다. 그렇게 <아무튼, 쇼핑>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3. 

얼마 전까지만해도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트렌드는 바로 ‘욜로였다. 한 번 뿐인 인생이라는 말로 즐거운 삶, 오늘을 사는 삶, 극단적으로는 ‘탕진잼’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이 욜로 때문에 사람들은 잊고 살던 자신의 취미. 혹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트렌드의 맹점 중 하나는 “욜로 = 소비” 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는 점이다. 한 번 뿐인 인생이고 나를 위한 삶을 살자는 것이 욜로지만 그것이 모두 소비로 연결된다는 것은 이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자신만의 삶을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이 소비일지는 몰라도 가장 최선의 방법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이러한 흐름은 유행의 초기 단계이니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 트렌드가 조금 더 오래갔다면 소비 너머의 욜로. 탕진잼을 넘은 진짜 욜로의 시대로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욜로의 유행이 소비와 탕진 사이에서 막을 내려버렸다는 점이다. 재밌는 것은 욜로의 막을 내려준 이가 바로 욜로의 극단에 있는 ‘영수증’이었다는 점이다. 팟캐스트 <송은이 김숙의 비밀보장>의 코너로 시작된 ‘김생민의 영수증’은 “절박함이 있다면 절약하고 저축해서 진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고 말하며 전국민의 탕진잼을 일시에 멈추게 만들었다. 그런 시기에 이 책 <아무튼, 쇼핑>은 다소 유행에 뒤떨어진 책이 아닌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욜로나 영수증. 그 어느쪽에도 속해있지 않으며 그저 어떤 한 사람의 피난처를 말하는 책이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려 한다. 



<아무튼 쇼핑>의 저자 조성민 일러스트레이터의 소개를 보면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소비 억제를 노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이주했다.”


이 한 줄을 저자처럼 쇼핑을 피난처로 삶는 어떤 이가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그래. 산좋고 바다 좋은 제주에 가면 속세의 물건일랑 모두 지워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할까? 아니다. 그들은 생각하기 전에 행동했을 것이다. #제주도에서만_살수있는_잇템


이것을 저자도 잘 알고 있었는지 바로 다음 줄에 “하지만 쇼핑의 촉이 더 예리해짐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쇼핑을 하는 이들에게 형이하학적 구속은 아무 의미없는 일이다. 쇼핑과 희노애락의 감정. 그것은 이성의 위에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저자 역시 그런 경지에 이르렀는지 책의 시작부터 쇼핑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잠시 들어보자.


“상품 페이지를 훑어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한없이 맑아지는데 그것은 인터넷 서핑이 나의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이자 휴식처이고,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좋은 핑계가 아닐 수 없다. 이토록 쇼핑의 정당성을 밝히며 시작하니 저자의 쇼핑 리스트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책에는 저자가 엄선한 쇼핑 카테고리 22개가 담겨 있다. 리스트는 과연 한 사람의 쇼핑 리스트 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하다. BMX 자전거부터 가위, 책, 지갑, 액자, 조명, 책상, 심지어 원반까지….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으로 가득한 자신만의 바다를 소개한다. 문제는 저자의 리스트와 그안에 담긴 글을 읽다보면 전혀 관심없던 물건들이 내 장바구니에도 담기는 것을 어느순간 깨닫게 되는것인데, 그 이유는 저자의 친절함 때문이다. 저자는 해당 물건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기준으로 글을 썼는지 자신의 친아들을 소개할때처럼 애정 묻은 필체로 물건을 설명하고, 더불어 물건에 스며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이 중요한데 그는 소개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온라인 사이트 등)까지 곁들이고 있다. 소개와 이야기, 그리고 목적지 까지. 이 완벽한 길 안내에 정신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저자와 같은 바다를 헤엄치는 자신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장바구니에 들어간 물건들을 보며 결제 버튼을 누르기 직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것이다. 


“이건 정말 스튜핏한 일이잖아?”


자신에게 필요없는 것을 사는 일. 그 물건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는 미지수이지만 대부분은 창고에 처박히거나 중고로운 평화나라에 가는 것이 운명이다. 이것이야말로 김생민이 부르짖는 스튜핏한 인생이며, 욜로에 관점으로 봐도 의미없는 짓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담아놓은 장바구니는 눈물을 머금고 모두 비우고 다시 책을 펼쳐보자.(울상을 지을 필요도 없다. 품절사태는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이야기를 만날 때다. 



4.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쇼핑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그리고 그것을 읽는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이 제품 끝내주지 않아?” (아니, 이런 말 말고…) 


“좋아하는 것이 많은 세상에서 사는 것의 즐거움,”


이 책을 쓴 조성민 저자는 만수르가 아니다. 우리도 만수르가 아니다. 그렇기에 저자나 우리가 쇼핑을 좋아한들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고 가질 수 없는 것을 열망할 때 생기는 간극의 차가운 공기는 뼈 속 깊이 파고드는 법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쇼핑을 즐기고 쇼핑을 말하며 쇼핑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숨 쉴 수 있는 어떤 공간을 만난다 고백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저자가 생각하는 쇼핑의 정의는 단순 구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쇼핑의 정의를 제주도 바다처럼 넓혀 생각한다. 어떤 물건에 관심을 갖고, 관심이 가는 물건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가진 나를 상상하는 과정까지…. (설령 실제로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쇼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장하면 세상의 모든 물건을 갖지 못하더라도, 심지어 좋아하는 물건을 유튜브 리뷰에서만 만나야 한다한들 즐겁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감정을 솔직히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자의 감정속에서 한 가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어쩌면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슬픈 질문의 대답은 대부분 ‘Yes’일지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욜로가 유행할 일도, 영수증으로 다시 정신을 차리자 뺨을 때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 삶에 저자의 권유는 간단하다. 좋아하는 것을 억지로라도 하루의 시간에 욱여넣으면 그만큼 웃을 일이 많아진다는 것. 바로 그거다. 쇼핑과 물건을 사는 것. 그것이 비록 1차적인 호기심이며 단순한 쾌락이라 치부하더라도 그것을 무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분명 삶의 호기심을 자극해주고 싫어하는 것이 더 많은 삶이 아닌, 좋아하는 것이 더 많은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저자의 말처럼 아무튼, 쇼핑을 해보자. 해보고 후회한들 우리가 50조원을 날릴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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