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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Dec 06. 2017

⎨COVER STORY⎬
"구독의 시대"

BOOKDIO COVER STORY


하루의 가장 앞에 선 단어. 누군가는 알람시계를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커피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단어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구독’이었다. 조간신문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집마다 신문을 구독했다. 매일 새벽, 아무도 깨지 않은 그 시간에 마른 무게의 신문 뭉치가 집 앞에 던져지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었다. 그런 이유로 신문 구독을 하던 세대에게 ‘구독’이라는 단어를 던지면 자연스레 ‘신문’이 떠오르게 된다. 


그렇다면 신문을 구독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구독’이라는 단어를 던지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한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를 넣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유튜브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유튜브를 켠다. 그리고 내가 구독해놓은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을 찾아본다. 사실 애써 찾아볼 필요도 없다. 구독을 신청했다면 새로운 영상은 눈앞까지 배달되기 때문이다. 사실 그것이 구독의 속성이다. 신청하면 집 앞으로 배달을 해주는 것. 예전에는 신문 배달부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면 지금은 인터넷이라는 배달부와 스마트폰이라는 우체통이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 우체통에 들어오는 것은 유튜브 말고도 수없이 많다. 각종 SNS 채널, 쇼핑몰 전단, 뉴스, 주식, 드라마, 언어학습까지….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거의 모든 것들이 이 우체통에 담긴다. 그리고 온라인 우체통에 이런 것들이 매일 쌓일 동안 현관문 앞에는 꽃과 양말, 화장품, 반찬, 심지어 와이셔츠가 매일 아침 도착한다. 그것 역시 우리가 ‘구독’한 것이다. 



그야말로 구독의 시대다. 주기적으로 필요한 것이라면 뭐든지 구독의 형태로 제공된다. 예전에는 그것이 신문 속 정보였다면 지금은 그 활용성이 무한히 넓어지고 있다. 여기서 구독의 또 다른 속성이 등장한다. 바로 편리함이다. 주기적으로 필요한 것. TV와 라디오 외에는 뉴스를 접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그 중심에 ‘뉴스’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뉴스’를 제외한 모든 것이 있다. 이런 구독의 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구독은 편리함과 동시에 귀찮은 것이기도 하다. 신문사들이 그러했듯 구독 서비스를 하는 모든 판매자는 어떻게든 구독자 수를 늘리고 싶어 한다. 단 하나의 알림이라도 소비자의 우체통에 집어넣고 싶어한다. 눈길을 받는 것은 다음 문제다. 일단은 우체통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조금 진지하게 말하면 생존의 문제다. 판매자들은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이 미치는 공간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 구독의 시대에 눈길의 선 밖은 낭떠러지다. 그리고 최근 그 낭떠러지로 떨어진 이가 있다.



2. 

시사주간지의 상징과도 같았던 잡지 <타임>. 바로 그 <타임>이 매각되었다. 1922년 설립되어 창립 100주년을 몇 해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전해진 소식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구독으로 승승장구하던 매체가 구독의 시대를 맞아 종말을 맞이했다는 현실. 이 현실은 모든 문자 매체에 주는 강한 경고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타임은 2017년에도 3백만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었다. 전성기의 모습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게 적은 숫자지만 다른 주간지와 신문 시장의 몰락을 생각해보면 <타임>의 삼백만 구독자는 거대한 제국처럼 보일 정도이다. 하지만 그것은 문자 매체 시장만 두고 봤을 때 이야기이지 구독의 시대에 전체 지도를 보면 형편없는 인구수에 불과하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대다수의 평가는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타임>은 1994년에 이미 자사와 협력사의 콘텐츠를 모아 볼 수 있는 사이트 ‘패스파인더’를 공개할 정도로 시대의 걸음에 뒤처진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패스파인더를 너무 믿었던 것, 그리고 패스파인더를 디지털 우체통이 아닌 기존의 우체통에 배달하려던 것이 실패 원인이었다. <타임>은 훌륭한 기자와 양질의 콘텐츠. 이것을 무기 삼아 ‘패스파인더’를 일종의 가판대 시장으로 만들려 했다. 양질의 콘텐츠가 있다면 사람들은 패스파인더 시장에 모일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타임이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구독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눈앞에 콘텐츠가 놓여 있는지였다. 



<타임>은 이점을 놓쳤다. 물론 그들도 구독과 배달 서비스를 했고 디지털 시대에 맞추려 사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전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그런 노력은 그 어떤 이들보다도 발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구시대의 우체통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이트 패스파인더는 초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한 사이트로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의 기준에서는 큐레이션과 구독 서비스에 있어 뒤처진 사이트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콘텐츠 영역 밖의 일이다. 하지만 <타임>은 콘텐츠 밖의 문제마저 콘텐츠로 해결하려 했다. 이것은 훈련이 된 소비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방향일 수 있다. 찾아보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며 그것을 선별해 볼 수 있는 이들 말이다. 예를 들면 <타임>의 구독자 300만 명 같은 이들 말이다. 문제는 300만 명이라는 숫자로 제왕의 왕관을 견딜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들은 더 영민해야 했다. 그리고 더 낮은 곳의 공사를 충실히 해야 했다. 꼭대기 층에서 화려한 파티를 하기 위해서는 그 높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하를 단단히 다져야 했다. 그렇지 않았던 대가는 “30억 달러의 매각”으로 모두 설명된다. 



3.

<타임>의 몰락. 즉, 제왕의 몰락을 바라보면 자연히 그 세계의 멸망을 상상하게 된다. 이 경우에는 인쇄 매체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진다. <타임>도 몰락하는 판국에 그보다 어려운 사정의 인쇄 매체들이 사라지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특히 종이책 단행본 매체보다 시의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신문과 잡지 매체의 어려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길을 찾고 있다. 그들이 찾아야 하는 길은 <타임>의 ‘패스파인더’가 찾아주지 못한 길이어야 했다. 모델로 삼을 만한 성공 사례도 찾기 힘들다. 유튜브와 같은 구독 사례를 답습하는 것은 맞지 않는 심장을 이식한 듯 잠시 생명을 연장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이야기를 살펴보자. 


한국의 대표 영화 잡지 <씨네21>은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이 발전하던 시기에 발맞추어 디지털 매거진을 발간했다. 당시 디지털로 매거진을 만드는 몇몇 업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종이책을 PDF로 옮긴 정도의 서비스할 뿐이었다. 하지만 <씨네21>은 당시로써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화려한 인터랙티브 기능을 이용해 그야말로 디지털 매거진의 표준을 보여주며 시장을 만들어 나갔다. 이것은 앞서 말한 인쇄 매체의 새로운 길처럼 보였다. 특히 영화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영상이 중요한 콘텐츠를 다루는 잡지에는 더없이 좋은 방법으로 보였다. 사용자들 역시 초반에는 그 부분에 반해 디지털 매거진을 구독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구독자 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씨네21> 디지털 매거진은 방향을 제시한 표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반쪽짜리 성공 사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영상과 디지털에 익숙한 이들의 구미에 맞게 포장을 한 이 콘텐츠가 왜 외면당한 것일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지갑이었다. 



<씨네21> 디지털 매거진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하지 못했다. 그들은 더욱 쉽게 콘텐츠를 전달할 아주 좋은 방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것이 우체통의 자리를 차지해도 좋은지, 혹은 지갑을 열어도 좋은지에 대한 질문에 소비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냐하면, 소비자들은 <씨네21>이 아니더라도 필요한 만큼의 영화 정보를 너무나 쉽게 얻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떠오른다. <씨네21>은 인터넷에 널리고 널린 가벼운 정보만 담은 잡지가 아니지 않은가? 당연히 그렇다. 그렇기에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외면당한 거지?”


이 질문의 답은 하기 전에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콘텐츠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저 애당초 필요하지 않았다. <씨네21>의 깊은 영화 기사를 원하는 이들은 당연히 <씨네21>을 본다. 이때 그들에게 종이와 디지털 두 개의 매체 선택지가 생긴다면 편한 것을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그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타임>의 300만 구독자처럼 <씨네21>의 정보를 원하는 이들의 수 자체가 너무나 적다.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 종이와 디지털로 매체 선택권도 주고, 가벼운 정보를 원하는 이들이 더 많으니 그런 방향으로 콘텐츠를 채우는 것. 그러면 구독자가 더 늘어날 수 있지 않을까? 글쎄… 그것 역시 쉽지는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은 구독의 시대이자 정보가 홍수처럼 넘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가벼운 정보를 잔뜩 모은 매체가 있더라도 그것에 애써 구독을 하거나 더나아가 지갑을 열 필요가 없다. 


콘텐츠에 집중한 <타임>의 몰락. 디지털에 적응하려 했으나 실패한 <씨네21>. 이 두 인쇄 매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변하지 않은 콘텐츠다. 여기서 말하는 변하지 않음은 단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해냈고 두 잡지를 제외한 다른 인쇄 매체들도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지금까지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콘텐츠마저 변화시키려는 이들에게 물어야 한다.



3.

<가디언>, <뉴욕타임스>, <슈피겔>, <르몽드>, <엘파이스>. 이 이름은 각국의 유명 언론 매체이면서 2010년 위키리크스 특종을 보도한 곳이다. 그들은 이 거대한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기존에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거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협업 프로젝트였다. 위키리크스 사건은 단순히 한 언론 매체가 달려들어 전말을 밝히기에는 어려운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불가능한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취재는 물론이고 산처럼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것을 체크하는 과정까지… 보도를 위해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사건이었다. 



문제는 언론사에 지갑을 여는 이들. 그런 이들이 관심 갖는 사건은 바로 이런 사건이라는 점이다. 누가 보도해도 별다를 것 없는 작은 사건들은 구글 검색 몇 번으로 쉽게 찾아볼 수도 있고 그것마저 귀찮다면 구독해놓은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기사를 전해주니 어려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사건의 보도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이런 보도를 다룰 수 있는 매체는 한정적이다. 또한, 이런 보도의 경우 헤드라인만 보고 멈추고 싶지 않다.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를 몰아보듯 어서 다음 편을 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런 기사를 보기 위해 해당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배너 광고를 보거나, 신문을 구입하거나, 새로이 구독하는 것 역시 아까운 일이 아니다. 위의 언론사들은 언론사의 가장 기본이 되는 보도 윤리에 더해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사를 제공하고자 했다. 그것을 위해 그들은 기존에는 절대 하지 않았던 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모을 수 있는 정보를 모아 공유하고 데이터를 분석 체크 했다. 그리고 완성된 기사를 분배해 보도하는 형식으로 하나의 특종을 모두의 특종으로 만들어냈다. 이 기사를 통해 해당 언론사들은 언론 매체로서의 가치를 올린 것은 물론이고 짐을 싸고 있던 콘텐츠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머물어도 좋다는 인식을 주었다. 


4.

 종이와 문자 매체가 살아남는 법. 위의 사례는 그것의 가장 좋은 모델일지 모른다. 자신들의 탄생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문자 매체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강조하는 것. 그럼으로써 잊힌 사람들의 시선을 돌려세우는 것. 그것을 위해 가장 본질이 되는 콘텐츠의 제작 방식 자체를 뒤바꿔 버리는 것. 그것이 가능하다면 구독의 시대에서 본질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시대를 따라가려 변화하려는 모습. 옷을 갈아입는 정도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말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 습관, 생활 방식까지. 심장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바꾸어 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 생각된다면 지금 당장 빨간 관을 주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리라.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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