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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Feb 02. 2018

⎨COVER STORY⎬
0과 1의 대화법

BOOKDIO COVER STORY


대화. 그것을 위해 우리는 역사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몸짓과 목소리를 꾸미고, 그림을 그리고, 숫자를 만들고, 체계화된 언어를 약속하며 우리는 대화를 이어왔다. 이에 대화를 전달하는 방식 역시 끊임없이 발전했다.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던 시기, 우리의 대화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그것은 원거리로 대화를 나눌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두가 노래하던 시절에는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아름다운 방법이었다.


그러다 우리에게 언어의 도구가 주어졌다. 이제 우리는 말하고 싶은 생각을 글로 적을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쓴 글을 타인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언어는 우리에게 시간을 요구했다. 뇌를 거쳐 목소리로 직접 말을 전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 그것이 필요했다. 우리는 최선의 단어를 고르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할 고리를 찾는 데 시간을 들였다. 문단의 위치도 중요했으며 심지어 끝맺는 인사말 역시 고민해야 했다. 기능적으로만 본다면 목소리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지도 몰랐다. 목소리는 말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달리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언어를 쓰는데 드는 시간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으며 대신 그 시간이 선물해줄 전달력과 생각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언어는 곧 대화방식조차 바꾸었다. 이제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나의 생각을 비교적 정확한 뉘앙스로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배달부가 암기력이 좋을 필요도 없었다. 배달부는 그저 튼튼한 다리와 길눈이 밝으면 그만이었다. 배달부는 누군가가 정제하여 적은 종이를 들고 전달받을 이에게 도착한다. 거리는 크게 상관이 없었다. 언어가 시간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이 담긴 종이를 받은 이는 종이에 적힌 언어를 읽는 데 시간을 들인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한 번 더 읽는다. 몇 번이고 상관없다. 눈은 언어를 해치지 않았고 종이가 상할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이때 들이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이는 없었다. 되려 사람들은 더 많은 시간이 소비되길 바랐고 더 정확한 생각이 쌓이길 원했다. 자기 생각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면서 시간의 소비는 더이상 덕목이 아니었다. 사회는 기차 소음만큼이나 빠르게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되었다. 물론 속도에 비례한 가치로써 말이다. 


물건이 기계에서 마구 찍혀 나오고 사람들은 기계를 돌리는데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래야만 돌아가는 사회가 된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대화의 방식 역시 달라져야 했다. 이전처럼 오래 써야 하고 오래 들여다봐야 하는 대화는 존재 가치를 잃기 시작했다.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달린 편지는 이전보다 빠르게 서로에게 전달될 수 있었고 뉴스가 담긴 신문 역시 아침마다 받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오래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다. 생각을 정제하는 것보다는 기계를 정비하는 것이 더 소중한 시대였으니까 말이다. 이런 문제를 사회는 기술발전으로 메워보려 했다. 이제 문자를 통한 대화가 아닌 주파수를 통한 대화. 즉, 통신 기술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라디오는 누구보다 빠르게 뉴스와 음악을 전했고, 전화는 배달부 없이 먼 거리로 대화를 이어주었다. 다시 음유시인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점차 잊어가기 시작했다. 종이에 쓴 언어와 그 안에 담긴 정제된 생각. 그것의 장점은 잊고 그것으로 소비될 시간을 아까워했다. 그러지 않아도 충분해 보였으니까. 전화와 목소리는 그런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어도 우리를 이어줄 것이라 믿었으니까 말이다. 


통신 기술은 사람과 시대에 시간을 벌어주며 발전했다. 그리고 그 발전은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로 다시금 혁명의 시기를 맞게 된다. 무수한 글자를 가진 인간이 0과 1. 단 두 개의 문자만 알고 있는 컴퓨터에 대화의 전권을 맡기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때부터다. 컴퓨터는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모든 대화의 방법을 제공했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화상채팅, 정제된 생각을 전할 수 있는 메일, 언어와 통신을 결합한 메신저와 프로그램까지...  컴퓨터는 모든 대화 방식을 제공하는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단점 역시 모두 제거한 채 우리의 시간을 아껴주었고 생각을 정리해주었다. 말하자면 인류는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다. 대화가 편해지고 대화의 정보와 모든 사람의 생각을 클릭 몇 번으로 모두 볼 수 있게 되자 그 방대함에 사람들은 질리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원하는 대화만을 들을 수는 없다. 전파가 모두 차단된 거대한 숲에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 우리는 댓글로, 커뮤니티로, 인터넷 기사와 라이브 방송으로 세상의 모든 대화를 접해야만 한다. 이것은 단순히 인터넷을 끊어버리면 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잠식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히 선 하나를 끊는 것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최근 한국에 개간 호를 발행한 잡지 <New Philosopher>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첫 번째 주제로 잡았다. <New Philosopher>의 부제는 '너무 많은 접속의 시대'이다. 소통의 부재를 이야기하던 시대를 벗어나 어쩔 수 없이 소통해야 하고 이어져야 하며 접속되어야 하는 시대의 이야기를 펼쳐낸 것이다. 이 잡지에 실린 글 중에서 니콜라스 카의 글을 보면 대화의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한다. 바로 인간 정신과 컴퓨터 간의 비유적인 연결을 넘어 실질적인 연결을 구현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글에서 예로 든 것은 일론 머스크가 인간의 뇌 속에 인터넷과 연결하는 '피질 직결 인터페이스'를 심기 위한 스타트업을 출범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우리가 기술을 이용하여 완전하고 풍부한 생각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가 상상하는 미래의 대화법은 바로 이것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연결된 우리 모두가 목소리나 키보드, 펜과 같은 도구를 통해서가 아닌 뇌에서 직접 생각을 전달하고 또 전달받게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인간 정신에 직접 연결되는 모뎀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니콜라스 카는 이제 인간은 네트워크상의 컴퓨터처럼 생각하기를 원하고 또 요구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인간은 그 과정을 현재 학습하고 있다는 의견도 더하고 있다. 그 예로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번 누르는 '좋아요'버튼이 있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에 있는 너무 많은 대화에 노출되어 있고 이를 컴퓨터처럼 처리해내기 위해 좋은지 좋지 않은지로 소통을 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0과 1. 컴퓨터의 언어를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로는 이 많은 정보를 해결할 수 없기에 습득하게 된 일종의 기술적 진화(진화가 꼭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에서)라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그것은 일견 너무나 의미없어 보이고 너무나 고리타분하며 또 너무나 옛 시대의 골동품 같아 보이는 것이다. 사색과 명상, 수천의 언어와 단어, 정제된 문장, 이성, 그리고 좋고 싫은 이분의 감정이 아닌 색깔만큼이나 다양한 감정들. 세상의 모든 대화를 오롯이 얻기 위해서는 이같이 고루한 것을 헐값에 팔아야 한다. 안타깝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노래하길 좋아하던 시인들이 편지에 길을 잃었고, 글 쓰길 좋아하던 이들이 전화에 길을 잃었듯 우리는 틀리지 않는 예언을 하는 이가 적어놓은 것처럼 방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뇌와 정보를 직접 연결하는 것이든, 감정 표현의 버튼을 수천 개 만드는 것이든, 아니면 인터넷 선을 끊어버리는 것이든...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루한 것의 먼지를 닦는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시간마저 소비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에는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아주 잠시라도 가장 편한 의자에 앉아 마른 천으로 그것을 닦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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