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May 08. 2018

⎨COVER STORY⎬
나의 리틀포레스트

BOOKDIO COVER STORY

 짧은 봄날. 그보다 더 짧은 벚꽃의 열흘. 온 몸을 펼치고는 겨우 열흘을 견디지 못한 채 사그라드는 벚꽃의 생은 그들에게만 아쉬운 것은 아닐테다. 생의 전체를 축제로 살다가는 꽃잎. 그것을 좇는 이들의 발걸음은 더욱 아쉽고 바쁘니까 말이다. 


 두 사람이 마주 앉으면 좋을 크기의 돗자리와 식어도 좋을 도시락의 음식. 그 위로 떨어지는 분홍빛 꽃잎과 오늘을 기억하라며 한정판으로 제작된 맥주 한 캔 까지. 한 평의 여유, 한 입의 여유, 그리고 한 잔의 여유를 찾기 위해, 고작 그 작은 여유를 찾기 위해 사람들은 평소보다 바삐 움직인다. 여유를 부렸다간 분홍빛 꽃잎은 난데없고, 푸르다 못해 짙어진 잎사귀의 그늘을 헤매야 할 것이다. 올 봄에도 분명 지각생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습기 오른 공기를 천천히 걸어야 한다. 그리고 생각해야 한다.  


 “오늘 저녁 식탁은 어떻게 할까?”  

 

바로 아치코처럼 말이다.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만화 <리틀 포레스트>.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일본의 시골 마을 코모리 출신의 아치코다. 그녀의 하루는 간단하다. 만들고 먹는다. 그것이 전부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일 수밖에 없다. 일단 만드는 과정을 보자. 큰 마을까지 나가려면 자전거로도 30분이 넘는 곳에 위치한 코모리 마을. 그런 곳이다보니 즉석 식품은 어울리지 않는다. 대신 코모리 마을은 논과 밭에서 아주 가깝다. 집과 밭의 경계를 애써 나누지 않은듯 집에서 기지개를 펴면 함께 깨어난 밭의 새싹을 마주볼 수 있다. 우스운 비교겠지만 직장과 주거 공간이 한 건물에 있는. 말하자면 뉴욕식 거주 형태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아치코는 나름의 출근길을 나서 집 앞 밭으로 향한다. 그리고 모양을 갖춘 식재료들을 뽑아든다. 고구마, 양배추, 옥수수... 코모리의 땅을 거주지로 허락한 작물들이 그 주인이다. 재료를 모았다면 이제는 요리다. 양배추를 자르고 고구마를 굽고, 옥수수를 익히고.... 때로는 빵으로, 때로는 밥 반찬으로, 또 때로는 특별한 메인 요리로 식탁을 차린다. 문제는 그 과정이 매우 지난하다는 것이다. 한 그릇의 식사를 위해 작물을 씻고 다듬고 자르고 말리고 또 자르고 볶고 삶고 차갑게 식혀야 한다. 10분도 걸리지 않을 한 끼의 식사를 위해서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완성된 식탁에 앉는 아치코. 그녀의 다음 순서는 짧은 감사의 기도. 그리고 한텀의 쉼표다. 젓가락을 들고 소박한 그릇에 담긴 반찬을 하나 집어 든 그녀는 자신과 음식에 잠깐의 여유를 허락한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그 순간은 각별하다. 그 짧은 순간 아치코의 눈은 음식의 색깔을 담는다. 열기와 함게 자연스레 코로 들어오는 음식의 향도 놓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은 짧은 상상의 순간. 아치코는 상상해본다. 이런 색과 이런 향을 가진 음식이 입에서 어떤 맛을 전해줄까? 이 순간이 아치코의 하루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그리고는 한 입. 아치코는 먹는다.  


 만들고 먹는다. 이것이 아치코의 하루다. 그녀의 시간을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뭘 그렇게까지…”  


 그녀는 뭘 그렇게까지 해서 먹어야 하는 것일까? 간단히 식은밥을 먹거나 미리 해둔 밑반찬, 혹은 그제 정도에 끓인 카레나 미역국을 먹어도 그만일텐데. 왜 식탁에 현재의 시간만을 올리려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받은 아치코와 그녀의 작은 숲이 되묻는다.  


 “뭘 그렇게까지…” 

 그렇다. 우리는 뭘 그렇게까지 해서 살려고 하는 것일까. 약간의 틈도 없는 시간속에 몸을 구겨넣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왜 그렇게까지 살려고 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은 없다. 고민이나 대답. 그런 것을 기다려줄 인내는 이미 멸종된지 오래니까 말이다. 그저 우리는 오늘도 입을 벌릴 뿐이다. 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밥을 먹기 위해서. 그 안으로 무엇이 들어갈지는 모른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자격은 입술과 혀를 움직여 질문 할 줄 아는 이에게만 주어진 특권. 그런 여유의 시간을 믿는 이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다만 아직 우린 흐르는 소리를 들어낼 능력은 있다. 그 능력으로 귀기울여보자. 그럴 시간이 없다면 다음 스케줄을 향해 걸으며 귀만 열어두자. 그정도로도 이 작은 소리는 들릴 것이다. 볕과 바람의 소리. 그것으로 천천히 소요하는 잎의 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천천히 내딛는 아치코의 발소리. 


 저 먼 작은 숲에서 흐르는 이 소리가 귀에 닿는다면 입을 크게 벌리자. 아무 이유없이. 그 소리를 베어물자. 그것이 삶의 이유. 삶의 대답이 될지도 모르니까.  


Written by 최동민
groscalin84@gmail.com




'책읽는라디오'의 청취는

아이폰 사용자는 아이튠즈 팟캐스트 에서.

안드로이드 사용자는 팟티 에서,

데스크탑, 노트북 사용자는 사운드클라우드 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기타 문의 및 건의는 bookdio.com@gmail.com으로 남겨주세요.


그리고, 

'책읽는라디오'가 전하는 이야기에 공감하신다면 서포터즈 가입으로 함께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PODCAST⎬ 오늘의 책 Vol.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