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 운전기사 일을 더는 할 수 없게 된 당나귀, 일하던 식당이 이사를 가면서 혼자 남겨진 바둑이. 험상궂은 인상 때문에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하다 해고당하는 야옹이. 변변한 자리도 잡지 못한 채, 노점에서 두부를 팔다 쫓겨나는 꼬꼬댁.
삶의 길에서 몇 걸음씩 밀려난 그들은 우연히 어두운 밤거리를 함께 걷습니다. 그러다 불 켜진 도둑들의 집을 발견하고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죠. 그렇게 네 명의 도둑들과 네 마리 동물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열심히 살았는데도 할 일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동물들의 사정을 들은 도둑의 말. 그 말에 동물들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자 도둑들은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구나.”라며 긴 한숨을 내쉬죠. 그러고는 휑한 방에 놓은 찌개 냄비에 각자 가지고 있는 재료들을 넣습니다. 고양이는 편의점의 삼각김밥을, 개는 식당의 김치 한 통을, 당나귀는 퇴직금으로 받은 참치통조림을, 닭은 팔다 남은 두부를….각자가 떨어져 있을 때는 쓸모없어 보였던 재료들이지만, 함께 모여 만드니 찌개는 근사한 식사가 되었습니다. 그 맛있는 찌개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동물과 도둑들.
조금 전까지 패배자의 모습으로 길에 멈춰 섰던 그들은 고개를 돌립니다. 그리고 찌개를 먹으며 각자 새로운 길을, 자신들이 향하고자 했던 브레멘을 다시 한번 꿈꾸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옅은 온기가 주는 짧은 환상이었을 수도 있고, 막다른 길에 선 이들의 헛한 바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꿈꿀 수 있다는 것, 막다른 골목에서 또 다른 길을 바라볼 힘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들을 생의 승리자로 만들어 줄지도 모릅니다. 아직, 브레멘을 꿈꿀 수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