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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un 14. 2024

여행하다 죽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5. 뉴욕


팬데믹이 시작되던 그때. 우리가 오늘 여행 온 이곳. 뉴욕은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락다운의 강도는 높았고, 붐비던 지하철과 도로, 그리고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옅어져갔죠. 작가 빌 헤이스는 그런 뉴욕의 텅 빈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 사진은 <별빛이 떠난 자리>라는 아름답고 쓸쓸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기도 했죠. 그런데 그가 뉴욕의 거리를 찍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정말 많은 도시 중에 왜 하필 뉴욕이었을까요? 그건 빌 헤이스의 활동무대가 그곳이었다는 점도 있겠지만, '뉴욕'이라는 가장 뜨거운 도시가 가진 이미지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토록 타오르던 도시가 빙하라도 찾아온 듯, 순식간에 식어버렸으니…. 그 대비를 담는 것은 작가들에게 더없이 가치 있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에요.


그런데 여기, 그런 뉴욕 같은 삶을 살다 간 이가 있습니다.

스스로 뉴욕을 꿈꾸었고, 그래서 뉴욕을 닮아간 사람.

그의 이름은 스콧 프랜시스 피츠제럴드 입니다.



피츠제럴드는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열등감에 휩싸인 채 살아갔습니다. 그 열등감의 발로는 부모님에게서부터였죠. 피츠제럴드의 어머니는 상인으로 성공한 집안이었는데요. 특히 명예나 계급에 관한 욕심이 정말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어린 피츠제럴드에게도 계급이라든지, 상류 사회에 관한 열망을 일찍이 심어주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피츠제럴드가 처음 배운 단어가 ‘UP’이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런 잘못된 욕망을 주머니에 넣은 채 시간은 흘렀습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피츠제럴드 앞에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요. 바로 젤다 세이어였습니다. 앨라배마주 대법원 판사의 딸이었던 젤다를 사랑하게 된 피츠제럴드. 가뜩이나 첫사랑을 계급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실패한 그였기에 이번에는 기필코 사랑에 성공하리라 다짐하는데요. 이를 위해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높이, 더 높이 올려줄 사다리. '돈'을 벌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그가 선택한 곳은 고향의 시골 마을이 아닌, 돈이 터져 나오는 도시. 뉴욕이었죠.



그가 뉴욕을 고른 이유. 그것은 당시 미국의 상황과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세계대전 종전 후, 미국 경제는 그야말로 호황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나 뉴욕이었죠. 이런 이유로 당시 성공을 향한 열정과 욕망을 가진 이들은 모두 뉴욕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뉴욕이 그리 만만한 도시가 아니었다는 것이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에요.


피츠제럴드는 당장 거물 소설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일단은 신문사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원서를 내는 신문사에서 죄다 퇴짜를 당했는데요. 글 실력이라면 외모만큼이나 자신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 또 한 번 좌절을 겪게 되자 피츠제럴드는 절망에 빠졌어요. 하지만 주저앉아만 있다간 뉴욕 사람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만 할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피츠제럴드는 광고 회사에 들어가 원하지 않는 세탁 광고 문구를 쓰며 생계를 이어 나갔죠. 뉴욕은 정말이지 만만치 않은 곳임을 깨달으면서 말이에요.



결국 피츠제럴드는 짧은 뉴욕 생활과 뉴요커를 향한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갔죠. 다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게 된 그는, 예전에 쓴 소설 <낭만적 에고이스트>를 고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퇴짜 놓았던 출판사에 호기롭게 다시 작품을 보내게 되는데요. 이 작품을 눈여겨봐 준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바로 맥스웰 퍼킨스. 편집자였죠.


이 이름이 낯익다면 아마도 영화 <지니어스>를 보신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니어스> 속 콜린 퍼슨이 연기한 배역이 바로 맥스웰 퍼킨스 입니다. 그는 헤밍웨이를 비롯해 피츠제럴드를 발굴한 인물로 당시에 굉장한 명성을 높이던 편집자였죠. 그는 작품의 제목을 <낙원의 이편>으로 바꾸는 조건으로 출간을 제안하는데요. 실패를 거듭하던 피츠제럴드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리고 맥스웰 퍼킨스의 예상처럼 이 작품은 그야말로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는데요. 이 한 권의 책으로 피츠제럴드는 말 그대로 돈방석에 오르게 됩니다.


이렇게 돈을 벌게 된 피츠제럴드가 처음 한 행동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바로 뉴욕 최고급 호텔을 예약하는 것이었는데요. 우리도 그를 따라 그곳으로 움직여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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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가 돈을 벌자마자 뉴욕의 최고급 호텔을 예약한 이유. 그건 자신에게 커다란 상처를 안겨주었던 뉴욕을 다시 한번 침공해 정복하겠다는 허영 넘치는 오기의 행동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을 오기라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 이때의 피츠제럴드는 뜨겁게 내달리는 뉴욕의 속도. 그것을 따라잡을 만큼 성공의 속도를 높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의 뉴욕을 우리는 ‘재즈시대’라 부릅니다. 세계대전의 승리와 활황의 경제 덕에 돈과 술, 흥을 비롯해 모든 것이 넘쳐흐르던 시대가 바로 이 재즈시대죠. 이 시대는 밤새 술을 마시고 잠시 일을 하고 또다시 밤새 술을 마시는 시대였기도 하는데요. 재밌는 것은 피츠제럴드가 이 시절 사는 방식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피츠제럴드는 “단편 소설 따위 하루면 쓸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잠깐의 집중력만 발휘해서 우수한 작품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작품은 술을 마시느라 날려버린 통장 잔고를 다시 채워주었죠.


그렇게 돈이 쌓이기 시작하자 피츠제럴드는 뉴욕의 고급 호텔을 마치 제집인 것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중에서도 그가 사랑한 곳은 지금도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P 호텔인데요. 피츠제럴드는 이곳에 아예 장기 투숙하면서 글을 썼어요. 그렇게 본다면 ‘P 호텔’과 뉴욕은 ‘재즈시대’와 피츠제럴드. 이 모두를 대변하는 공간이라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P 호텔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더 여행을 이어가 보도록 해요.

센트럴파크 맞은편에 위치한 이 호텔은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중에서도 중요한 장소로 등장합니다. 개츠비가 사랑한 여인. 데이지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공개되는 장소이기도 했고, 작품의 중요한 세 인물인 개츠비와 데이지, 그리고 톰이 모여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소로 등장하기도 했죠.


그 이유는 피츠제럴드와 개츠비의 평행이론을 생각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두 사람 모두 돈 때문에 첫사랑에 실패했고, 거대한 부를 축적해 화려하게 주인공으로 재등장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겉으로 보이는 것에 집중한 인물들이었는데요. 그런 두 사람이기에 성공한 자신의 무대로 이 최고급 호텔을 골랐던 것이죠. 말하자면 개츠비는 피츠제럴드의 분신이자, 그가 가진 마음속 욕망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인물이라 볼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피츠제럴드는 자신이 만든 분신의 새드엔딩을 따라갔다는 것이겠죠.


P 호텔의 고급 커피숍 팜코트에서 비싼 음료를 물처럼 마시며 글을 썼던 피츠제럴드. 프랑스 파리에 가서도 파티와 사교장의 주요 고객으로 화려한 삶을 살았던 피츠제럴드. 어쩌면 그는 자신의 삶이 영원한 재즈시대로 이어질 거라 믿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가 자동차 사고로 불운한 결말을 맞은 뒤, 개츠비의 운명도 사그라든 것처럼. 피츠제럴드의 운명 또한 연인 젤다가 병을 앓으면서 그 불꽃을 잃어갔는데요. 이것은 뉴욕 재즈시대의 운명과도 같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던 활황은 더없는 추락으로 이어졌고, 뉴욕의 밤은 팬데믹의 거리처럼 싸늘히 식어버렸죠. 더는 흥겨운 음악도, 취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이들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런 순간에도 P 호텔은 굳건히 그 자리에 다이아몬드 같은 자태를 뽐냈는데요. 피츠제럴드도 개츠비도…. 다시는 그곳의 거대한 유리문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피츠제럴도 혹은 개츠비의 퇴장을 배웅하듯 P 호텔을 나서보도록 하죠. 그리고 다시금 불이 켜지고 사람이 걷고, 차와 전차가 쉼 없이 내달리는 그 거리를 천천히 걸어보도록 해요. 그리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한 시대와 장소, 그리고 거기에 살던 사람과 사람들을 말이에요.


어떤 인물들은 간혹 자신이 살다 간 시대와 닮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요. 재즈시대의 피츠제럴드, 비트 세대의 긴즈버그 같은 이들이 그런 예가 될 수 있겠죠. 그들은 시대의 거울이 될 운명을 타고났기에 한 시대의 종말과 함께 흔적도 없이 운명을 마감하곤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남긴 잿더미와 한 사람이 남긴 흔적들. 예를 들면 P 호텔과 <위대한 개츠비> 같은…. 그런 흔적들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여행지로 안내하곤 하는데요. 어떤가요? 가끔은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그 복잡한 실타래 위를 걷는 여행. 이것도 즐겁지 않으신가요? 그럼, 뉴욕의 밤거리를 걷는 여행의 남은 길은 당신에게 맡기고 저는 다음 여행을 준비하도록 할게요.


그때까지.

잘 지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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