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05. 2016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샌드위치』X『리틀 포레스트』

어크로스 더 유니북스

1. 

지금처럼 먹방이 유행하기 전, 미식에 관한 탐구와 표현은 책과 영화가 도맡았다. 물론 글 혹은 사진으로만 봐야 하는 책보다는 영화에서의 먹방이 더 많은 사람의 눈을 사로잡은 것도 사실이다. 먹방 영화로 잘 알려진 <카모메 식당>의 경우에도 원작 소설이 있음에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영화 속 오니기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텍스트 콘텐츠라는 한계가 있음에도 읽는 것만으로 우리의 입맛을 살려주는 책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다행인 일이다. 완성된 요리를 시각으로 직접 받아들이는 것이 침샘을 폭발적으로 자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함께 즐기는 데는 책만큼 좋은 콘텐츠가 또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

오늘 이야기할 이 소설의 작가는 시바타 요시키 이다. 이 작가는 등장부터가 먹방에 특화된 작가였다. <리코, 여신의 영원>이라는 작품으로 요코미조 세이지 대상을 받으며 데뷔를 했는데, 이 작품 역시 미식 소설이다. <오늘의 런치, 바람의 베이컨 샌드위치>도 내용은 다르지만, 미식소설의 범주에 들어갈 그런 작품인데 이번 무대는 초원과 목장이 있는 일본의 한 고원 마을이다. 


책의 주인공은 나호 라는 인물이다. 나호는 30대 나이에 도쿄에서 잡지사 부편집장 일을 하던 여성으로 결혼은 했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이다. 일과 가정. 모두 엉망이 되어갈 즈음에 나호는 "내가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삶의 모든 진행을 일시 정지 시킨다. 그리고 정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유리가하라 고원으로 떠난다. 


유리가하라 고원은 한때 스키장으로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지금은 쇠퇴해버린 곳이다. 스키장이 유행일 때 우후죽순 지어진 펜션들은 빈집으로 방치되었고 마을의 활기 또한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래서 이곳의 펜션은 싼 가격에 구입이 가능했고 나호는 그중 한 펜션을 계약한다. 그리고는 펜션을 카페로 개조하여 <송 드 방>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낸다. 현실적인 고민은 여전히 일시정지 시켜놓은 채 말이다. <송 드 방>에서 나호는 로컬푸드를 이용한 음식 메뉴를 만들기 시작한다. 고원 목장에서 나오는 신선한 우유와 고소한 버터. 수제 소시지와 질 좋은 베이컨. 근처 농장에서 나는 제철 토마토와 로컬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빵까지…. 나호는 <송 드 방>안에 유리가하라 고원의 맛을 담기 시작한다. 


쇠퇴한 관광지인 유리가하라 고원이었기에 <송 드 방>의 손님 역시 주민들이 전부였다. 다행히 입소문이 조금씩 퍼지고 잡지 등의 매체에 한 두 번 소개가 되면서 <송 드 방>에는 조금씩 관광객과 외지인들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호는 자신의 음식으로 유리가하라 고원이 죽은 관광지가 아니라 계절에 맞는 생명의 재료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인식을 변화 시켰다는 생각에 뿌듯한 감정을 느낀다. 이에 탄력을 받은 나호는 이제 머릿속에서 유리가하라 고원에 온 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안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나호를 방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태초에 소설을 만든 이는 소설의 필수요소로 왜 '갈등'을 넣어서 나호를 힘들게 하는지 원…)


나호를 흔드는 것은 전남편의 방문이었다. 전 남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이혼 절차가 온전히 끝난 것이 아니어서 복잡한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었다. 남편의 방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는 나호와 <송 드 방>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이어진다.




2. 

나호와 유리가하라 고원. 그리고 <송 드 방>의 이야기에서 집중하기 쉬운 부분은 역시 음식이다. 하지만 그전에 앞서 볼만한 점이 있는데 도시와 시골의 차이를 드러내는 부분들이다. 흔히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을 떠올리면 그려지는 풍경이 있는데 그런 일반적인 생각과 다른 묘사가 책에 등장한다. 예를 들면 


도시라면 다른 누군가가 해줄 일을 시골에서는 자기가 해야 해.
도시에서 살면 상관하지 않아도 될 성가신 일에도 상관해야 하고.
시골에서 사는 것도 아주 힘들어.
자기 일만 생각하며 생활하고 싶다면 도시가 최고지.

이런 시골 주민의 대사를 보면 시골 역시 의외로 번잡한 일이 많다는 것. 그저 한적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도시에서라면 직접 하지 않아도 될 마을 일들(도시라면 반상회 정도 참석하면 그만인)에 더 많이 참여하고 직접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서 "이거 만만치 않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장면으로는 이런 장면이 있다.


해동하지 않고 얼린 채 밥을 지으니까 아주 편해.
여기서 생활한 뒤로 냉동실과 친해졌어.
신기하지, 도시 생활 쪽이 냉동식품을 더 많이 사용할 것 같은데.
이 고원에서는 계절마다 여러 가지를 딸 수 있잖아.
내게는 그 계절에만 끝나는 것이 안타까워서 걸핏하면 냉동하고 병조림을 하고 그러네.


나호의 이 대사는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시골과 도시가 있다면 냉장고 사용률은 당연히 도시가 높을 것 같다. 인스턴트 음식과 냉동 음식을 더 구하기 쉽고 많이 소비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호의 대사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도시에서는 계절을 무시하고 식자재를 구할 수 있고, 식자재를 땅이 아닌 마트에서 편히 구하다 보니 그것의 소중함을 조금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골은 다르다. 나호가 제철 재료를 얼려두는 것처럼 직접 식재료가 성장하고 수확하는 과정을 아는 시골에서는 그것의 소중함을 더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런 대사와 장면들은 쉽게 생각하면 얻기 힘든, 생각으로 잘 가꾸어야 나올 수 있는 장면이기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이다. 

일본 소설의 특징 중 하나를 꼽는다면 특정 소재를 부각 시키는, 그래서 그 소재에 관해 지나칠 정도로 상세한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런 부분을 꼽는다면 역시 음식이다. 작가는 소설을 펴내며 작가의 말에서 "독자들에게 배고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맛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베이컨 샌드위치는 물론이고 다양한 런치 메뉴, 베이커리, 소시지, 베이컨, 우유, 버터 등 음식부터 식재료에 관한 묘사가 굉장히 발랄하고 맛깔나게 다가온다. 거기에 더해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묘사가 아니라 고원의 재료가 어떻게 맛있는 음식이 되어가는지와, 그 음식을 어떻게 맛있게 먹는지에 대한 표현 또한 잘되어 있어서 시바타 요시키 작가의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3. 

결국, 이 작품은 계절의 음식을 매개체로 태어난 소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매개체로 태어난 우주에는 바로 이 작품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리틀 포레스트>


이 작품은 만화인데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한 적이 있다. 작품의 내용을 살펴보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는 소녀 이치코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만화다. 이 만화에서는 주인공이 정확히 어떤 시골에 살게 됐는지, 왜 시골에 오게 됐는지? 부모는 어디에 있는지… 이런 것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계절에 맞는 제철 식재료, 그리고 그것을 요리하는 이치코의 모습이다. 


이 작품에서는 식재료를 키우는 장면에서부터 요리를 하는 장면까지가 꽤 상세히 나온다. 그것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식사를 사먹는 경우가 많은 도시 사람들. 혹은 만들어 먹는다고 해도 마트에서 재료를 사서 해먹는 사람들의 눈에는 조금 이상하게 비춰지기도 한다. 


아니 대체 뭘 저렇게 까지 귀찮게 만들어 먹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혼자 살기 때문에 항상 적은 양의 음식을 한다. 식혜를 만들어도 한 병. 밤조림을 만들어도 한 병. 딱 먹을 만큼만 만든다. 그런데 양이 적어도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똑같은 수고가 드는 일이다. 수확하고 다듬고 조리하고….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이치코는 딱 한 병의 음식을 얻는다. 그리고 그걸 먹으며 그만큼의 즐거움을 얻는다. 그런 이치코의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대체 뭘 저렇게가지 고생해서 고작 1인분의 음식을 해먹는거야? 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럼. 우리들은 제대로 된 음식 하나 해먹을 여유도 없으면서 뭘 이렇게까지 바쁘고 힘들게 사는거지


이런 생각이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힘겹게 만든 식혜를 하룻동안 차갑게 식혀놓고 시원하게 목으로 넘기는 그녀의 모습이 절로 간절해진다. 

그 한 장면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작가의 이전글 『사냥꾼들』X『인간의 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