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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Aug 04. 2016

『사냥꾼들』X『인간의 대지』

어크로스 더 유니북스


Book Review Serial

어크로스 더 유니북스

7화 | 사냥꾼들



1. 

작가 중에는 군인으로 복무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전투기 조종사 출신의 작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를 비롯해 다양한 작품의 시작을 비행기를 조종하는 경험 아래서 만들어냈고, 로맹 가리 역시 전투기 조종사로 전쟁에 참여해 훈장까지 수여 받았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오늘 소개할 책의 작가 역시 하늘에 오른 작가이다. 


제임스 설터. 2015년 타계한 미국의 소설가이다. 가장 미국적인 문장(이 대체 뭘까?)을 구상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고 있으며 <스포츠와 여가>와 같은 장편소설, <어젯밤>과 같은 단편소설들로 명성을 높였다. 여기까지는 이 작가의 기본적인 평가였고, 개인적으로 평하기에 제임스 설터는 개인의 세세한 움직임을 포착해 그 안에서 이야기와 메시지를 끌어내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작가라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그런 제임스 설터의 데뷔작이다. 앞서 말했듯이 제임스 설터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전투기 조종사로서 전장을 누볐다. 특히 제임스 설터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하늘을 누비기도 했는데 바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경험이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복무 중에 소설을 쓰게 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사냥꾼들>이다. 


<사냥꾼들>. 적군과 아군의 미사일이 날카롭게 날아들고 하늘을 지배하기 위해 구름을 가르는 이들의 이야기가 스펙타클 하게 펼쳐질 것 같은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그런 블록버스터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 주인공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은 3인칭 시점으로 '클리브'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클리브는 제임스 설터처럼 한국전쟁에 참전하는 조종사 중 한 명이다. 한국전쟁 전에도 많은 전공을 세우고 군인다운 태도와 모범적인 행동으로 잘 알려진 조종사였다. 한국전쟁이 진행되던 시점에서 클리브는 일본을 거쳐 한국에 도착한다. 그는 자신의 실력과 공훈 덕분에 곧장 편대장 임무를 맡게 된다. 그런데 클리브의 편대에는 골칫거리의 인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펠' 이라는 이름의 인물이었다. 펠은 그야말로 천부적인 사냥꾼이었다. (축구 중계에 나오는 "저 선수는 골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선수예요!!" 라는 해설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클리브를 비롯해 다른 편대 원들은 전투에 출동해도 적기를 못 만나고 허탕을 치기 일수인데 펠은 출동만 하면 백이면 백 모두 적군의 전투기를 마주친다. 적기를 자주 만나다 보니 적기를 격추시키고 명성을 올릴 기회도 많았다. 물론 적기가 자신을 떨어뜨릴 확률도 그만큼 높았지만 말이다. 


다행히 전투 실력이 좋았던 펠은 죽음 대신 언제나 승전보를 가지고 왔다. 하지만 그의 승전보를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펠은 오로지 자신의 명성에만 관심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펠은 적기 다섯대를 격침하면 받을 수 있는 에이스 칭호를 위해 자신의 파트너가 위기에 몰려도 적기를 격침하는 데만 관심을 둔다. 그런 교활하고 이기적인 속성은 동료들은 사지로, 자신은 영웅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 


그런 펠의 모습을 편대장으로서 지켜봐야 하는 클리브는 점차 초조해진다. 펠이 연속으로 적기를 격침시키는 동안 겨우 한 기의 적기만 격침 시킨 클리브. 그는 성과도 성과지만 편대를 위기에 빠트리는 펠의 행동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다. 전공이 현격히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편대장이 부하의 행동을 나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시기와 질투로 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이 고조되는 사이, 적군에서 소식이 들려오는데 그건 바로 실종된 줄 알았던 적군 최고의 에이스 케이시 존스가 다시 비행을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를 잡을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잡은 적기의 수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전투기 조종사들 사이에서 그를 잡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적군의 수장을 떨어뜨리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이런 기회를 펠이 놓칠 리 없었다. 그것은 클리브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대의 에이스, 케이시 존스를 누가 먼저 마주하게 될지는 하늘만이 아는 결과였다. 

소설은 이렇게 목적은 같지만, 생각은 다른 전우의 이야기를 그리며 이어진다. 



2. 

이 소설의 특징을 말하기에 앞서 표지 이야기를 먼저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임스 설터 작가의 작품은 마음산책 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있는데 표지가 모두 던컨 한나의 그림이다. <어젯밤>, <가벼운 나날>, <스포츠와 여가>, <올댓이즈>까지 모두 그랬다. <사냥꾼들> 역시 던컨 한나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데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기존의 표지에 쓰인 작품에는 모두 한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 클리브가 타는 전투기의 그림이 담겨 있다. 게다가 이 그림은 기존에 완성한 것이 아닌 <사냥꾼들>의 표지를 위해 작가가 직접 작품을 읽고 특별히 그린 작품이라고 한다.




그럼 본격적으로 이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들을 조금 해볼까 한다. 일단 그전에 편견부터 하나 없애고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설명을 보면 직접적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을 직접 읽기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아, 이 작품은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말하려는 소설이구나."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집어드는 분도 계실테지만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절대 잡지 않는 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한국전쟁'이라는 키워드에 잘맞춰진 소설은 아니다. 되려 한국 전쟁이라는 배경 안에서 이방인으로 참가한 이들이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순간. 그 순간에 주안을 둔 작품이다. 그들에게 있어 하늘은 한국전쟁 중의 한국 하늘이든, 2차 대전 중의 독일 하늘이든 크게 중요치 않다. 그것은 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읽다 보면 한국전쟁이라는 배경은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고(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이 몇 번 나올 뿐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더 크고 정확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국전쟁'이라는 키워드가 작품 선택에 중요하신 분들에게 참고가 되었길 바란다. 


다음으로 말하고 싶은 부분은 이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전쟁이다. 

이 작품에서 전쟁은 마치 스포츠처럼 표현되고 있다. 전투의 패배를 염두에 두고 전투에 뛰어드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전황이 어떻더라도 기적을 믿지 않고 목숨을 맡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니까 말이다. 이 작품 속 인물들도 그렇다. 클리브를 비롯한 동료들은 자신의 패배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찰을 떠나 적기를 만나지 못하면 아쉬워하고, 정찰 임무가 맡겨지지 않아 하늘에 오르지 못해 힘겨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사실 이 작품은 전쟁이 배경인 작품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 같은 감정을 표현할 만도 한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작품이 자전적 작품이고 직접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공군 조종사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이는 우리의 기억 속 전쟁 장면과는 반대되는 장면으로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인물들의 마음 때문인지 그들이 하늘을 나는 모습은 어느 스포츠 경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펼쳐놓은 전투의 세세한 묘사 역시 스포츠 해설가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 같고, 이를 제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마지막 전투에서 고도의 숫자가 반복해서 보이고, 그 사이를 오가는 조종사들의 모습을 그려낼 때다. 그것은 분명 전쟁의 숨 막힘이 아닌, 스포츠의 경기의 긴장감이었다. 


이 작품을 보며 또 하나 집중하면 좋을 것이 바로 제목이다. <사냥꾼들>. 이 제목을 보면 무슨 이유때문인지 팀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되려 각기 다른 편의 개개인이 모여든 집단. 같은 것이라고는 떨어뜨려야 할 적의 존재밖에는 없는. 그런 집단을 표현하는 제목으로 보인다. 전쟁하면 흔히 떠오르는 전우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제목이기도 하다. 


이것은 어쩌면 전투기 조종사라는 요소가 주요하게 작용했을지 모른다. 제임스 설터는 이 작품에서 전쟁, 전우, 동료애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기보다는 혼자 탈 수밖에 없는 전투기. 그리고 드넓은 하늘. 그곳에 올라야 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제목 역시 적기와 경쟁하고 적기를 격추하려 달려드는 다른 동료들. 그들과 경쟁하는 사냥꾼이라는 단어를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3. 

이 작품이 놓인 우주를 탄생시킨 매개체. 그것은 '폐쇄된 고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와 같은 우주의 다른 작품으로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제임스 설터처럼 전투기 조종사였던 생텍쥐 페리는 우편 비행 업무를 하다가 사막에 추락하게 된다. 그때 벌어진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인간의 대지>이다.


이 책에서 생텍쥐페리는 홀로 비행을 하다 홀로 사막에 떨어지고 홀로 사막을 걸으며 삶의 구멍을 찾아 나선다. <사냥꾼들>에서 폐쇄된 고독을 보여줬던 하늘과 <인간의 대지>에서 폐쇄된 고독을 보여주는 사막은 위치가 다를 뿐, 고독을 짓는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고독을 잴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위는 평방미터 일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Dalmoon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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