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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Oct 23. 2024

【소설】
놀러 오세요, 담담 놀이터에 #5.

무릎안기 놀이


 7. 

 유연은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선마다 다른 색과 파동, 그리고 결을 보여주는 그곳에서 눈을 떼기 쉽지 않았다. 유연은 그대로 풀밭 위에 앉아버렸다. 그리고는 폭. 무릎을 감싸안았다. 이곳에서의 기억. 그 마지막이자 처음인 그때의 기억처럼. 무릎을 감싸안았다. 그때 유연은 무언가 흥얼거리고 있었다. '구슬프게 '같은 감정을 표현할 만큼의 가창력은 없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들었으면 그냥 생각 없이 밝은 어린아이가 부르는 동요처럼 들렸으리라. 그래서 유연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자 눈, 코, 입. 뜨거운 것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조차 누가 볼까 무서워 몸을 숨기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바다의 품 정도라면 충분할 것 같았지만. 그건 너무 멀었다. 그래서 유연은 무릎을 세운 채,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껴안았다. 두 무릎을. 그것은 엄마의 것과 달리 불편하고 또 쓸모가 없었다.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그저 얼굴을 파묻을 수 있었다는 것. 그래서 감출 수 있었다는 것. 그게 뭐든 간에. 숨겨버릴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유연은 자신의 생. 그 기억의 시작이 언제나 이 장면인 것이 불만이었다. "기왕이면 더 행복한 장면이면 얼마나 좋아." 볼멘소리하는 것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유연은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건 엄마에게 배운 것이었다. 물론 엄마가 그렇게 하는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그 장면을 기억하는 것은 아빠의 사진기 덕분이었다. 다른 남자들처럼 낚시를 하거나 등산 같은 것에 취미가 없었던 아빠는 시간이 남을 때면 사진을 찍거나 책을 읽었다. 그게 취미의 전부였다. 그런 아빠의 사진기에 주로 담기는 것은 유연과 엄마였다. 풍경은 그저 두 사람의 뒤에 놓이는 정도의 의미뿐이었다. 언젠가 유연은 아빠의 사진 앨범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엔 유연이 기억 못 하는 세계가 가득했다. 기억보다 작은 유연, 기억보다 앳된 엄마. 그리고 교월리에서의 장면들. 그런 순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물론 앨범의 마지막 장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면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았다. 몇 번이나 아빠의 앨범을 펼치고 또 넘겼을까. 몇 번이나 그 이야기를 읽고 또 읽었을까. 그곳에서 엄마는 몇 번이나 무릎을 안고 있었을까.

 그 사진을 볼 때면 물어보고 싶었다.


 "엄마, 왜 그렇게 무릎을 안고 있었던 거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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