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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ul 04. 2017

⎨COVER STORY⎬
세계의 끝

BOOKDIO COVER STORY

1.

 그곳에 이런 사실이 있었다. 


 “저 끝에는 절벽이 있어. 그곳이 얼마나 깊은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이 심장에 좋을 거야. 그럼에도 궁금하다면 어느 위대한 모험가의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아무도 가닿지 않은 그곳에 위대한 모험가는 단신으로 뗏목을 몰고 갔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심장을 가진 그였지만 절벽의 끝까지 갈 수는 없었지. 대신 위대한 모험가는 자신을 절벽의 끝으로 데려다준 노에 커다란 종을 매달았어. 그리고는 심장만큼이나 강한 어깨로 힘껏 노를 내던졌지. 절벽의 끝, 세상의 끝으로 말이야. 

 식성 좋은 물고기가 먹이를 빨아들였는지 노는 순식간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어. 세상의 끝이란 그토록 참담한 것이었지. 위대한 모험가는 벌벌 떨리는 팔을 노 삼아 육지로 뗏목을 돌렸어. 그가 팔을 멈춘 것은 육지가 겨우 육안으로 보일 때, 바로 그때였어. 육지에서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모험에서 돌아온 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기다리고 있었지. 위대한 모험가는 뗏목을 젓던 팔을 하늘 높이 들고는 사람들을 향해 흔들었어. 여느 개선장군 못지않은 위풍당당함이었지. 

 육지에 닿은 그를 향해 수많은 환호와 박수, 그리고 동경의 시선이 닿았어. 위대한 모험가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사람들 사이를 묵묵히 걸어나갔어. 입을 열 필요는 없었지. 머무른 자들에게 질문은 너무 현명한 일이었으니까. 위대한 모험가는 환호 소리의 끝에 놓인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어. 그 후로 위대한 모험가를 본 이는 아무도 없었지. 위대한 모험가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도 없었고 말이야. 다만, 그가 집으로 들어가고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녹슨 종에서 울릴법한 거친 소리가 파도를 넘어 육지까지 닿았지. 사람들은 세상의 끝에서 울려온 그 소리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위대한 모험가의 집 앞에 몰려들었어. 그들은 이제 막 말문이 트인 어린아이처럼 각기 시끄럽게 입을 열었어. 저 소리는 무엇인가? 깊은 바다의 끝에 사는 신의 노여움인가? 그들은 끊임없이 질문했어. 위대한 모험가의 두 팔이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에 쌓인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칠 때쯤이었어. 끼익하며 녹슨 철문이 소리를 냈지. 그 소리에 사람들은 질문을 멈추고 대답을 기다렸어. 하지만 철문은 몇 년은 열린 기억이 없다는 듯 아주 천천히 열리고 있었어. 그마저도 어린아이의 얼굴이 겨우 지나갈 만큼 열리고는 끝이었지. 그 좁은 문 틈새로 무엇이 흘러나왔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 뛰는 상상을 했지. 하지만 철문이 다시 닫히기 전 들려온 유일한 목소리는 그들이 예상한 대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어.” 

 “진실. 저것은 진실의 소리다.” 

 “이제 어느 정도 실감이 나겠지? 세상의 끝. 저 끝에는 절벽이 있어. 그곳은 어느 위대한 모험가의 이름이 잊혀질 정도의 시간만큼이나 깊고 가파르지. 그것이 진실이야.” 


 호카 곶. 포르투갈의 서쪽 끝에 있는 이곳은 한때 유럽인들이 생각한 세상의 끝이었다. 그 끝에서 사람들은 물었을 것이다. 

“세상의 끝에 놓인 절벽은 얼마나 깊을까? 그곳에 떨어지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 그 끝에 닿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주고받으며 이야기와 전설, 그리고 신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중 어떤 몽상가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의 끝, 절벽은 너무나 가파르고 깊어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도 그 끝에 닿기 전에 노인이 되어 죽고 말지.” 

 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가닿지 못한 이들의 입을 타고 흘러 시대의 진실이 되었다. 그리고 진실이 전설이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하지만 긴 시간이 허무해질 만큼 진실이 전설이 되는 것은 찰나였다. 위대한 모험가보다 조금 더 무모했던 어떤 이가 한 번 더 노를 저었을 때. 바로 그때였다. 세상의 끝이라 믿었던 수평선은 무한히 확장되었고, 그 앞에 쌓였던 사실들은 모두 이야기가 되었다.



2. 

 세상의 끝에서 한 걸음을 더 내딛는 행위. 그것에는 어떤 동기가 필요하다. 동기의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있느냐 없느냐의 존재 유무가 중요할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말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호카 곶 앞에서 절벽의 아래를 상상하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혹시 저 너머에 새로운 땅이 있지 않을까? 그 땅은 황금으로 뒤덮여 있으며, 그 옆에는 한 모금만 마셔도 젊음을 되찾아주는 샘물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분명한 동력이 된다. 그것이 이미 있던 땅, 이미 있던 사람, 이미 있던 문명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에 불과하더라도 말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5: 제국의 역습>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 스카이워커는 제국의 역습으로 모든 것을 잃고 다시 제국에 도전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스카이워커는 제다이의 위대한 스승 요다를 찾아갔고 요다는 그가 제다이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훈련의 과정 중, 요다는 늪에 빠진 거대한 우주선을 포스로 꺼내 보라는 미션을 던진다. 스카이워커로서는 들어본 적도 없는 미션이었기에 시도조차 감히 떠올리지 못한다. 그런 스카이워커에게 요다는 말한다.

 “불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네 마음속에서만 불가능한 것이다.” 

 이는 반은 맞는 말이지만 반은 틀린 말이었다. 왜냐하면, 요다는 포스로 우주선을 움직이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할만한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어린 스카이워커는 어떤 이야기도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다이나 포스와 같은 이야기를 듣고 전하고 경험했던 요다와 그것에 관한 이야기조차 잊혀진 시대를 살았던 스카이워커. 우주선을 포스로 움직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다행히 요다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는 스카이워커에게 포스를 사용하는 방법이 아닌 불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한 것이다. 요다가 전하는 이야기에 스카이워커는 불가능이라는 마음을 지우고 “한 번 시도해 보겠다.”며 우주선 앞에 선다. 그런 스카이워커에게 요다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시도라는 것은 없어. 행동하던가 행동하지 않던가 둘 중 하나지.”  

사진 출처 http://movie.daum.net

 시도가 아닌 행동. 이야기가 가진 힘은 둘 중 후자를 선택하게 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가 <데미안>의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면, 전쟁에 나선 젊은이의 군복 포켓에 <데미안>이 꽂혀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내딛는 발걸음에는 두려움만 묻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어느 청년의 이야기에 그들은 두려움을 감싸 안을 의지를 품을 수 있었고, 그 의지는 진정한 행함의 동력이 되었다.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도 비슷하다. <인간의 대지>에 잘 표현된 그의 경험, 비행 중 사막에 불시착했지만 끊임없이 걸음을 옮길 수 있었던 것에 동력. 그것 역시 이야기였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의 대상인 사막은 생텍쥐페리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사방의 모든 것이 보이지만 사방의 어떤 것도 진실 같지 않은 공간. 그런 사막이란 공간에서 생텍쥐베리는 상상의 끈을 묶는다. 그가 진실만을 봤다면, 사막에서의 생존확률만 떠올리고, 불가능의 진실에만 귀를 기울였다면 그는 결코 사막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난 우리가 그와 같이 사막에 불시착 하면 어떨까? 우리는 생존확률을 먼저 떠올리게 될까? 아니면 위대한 작가의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까?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사진출처 http://www.aladin.co.kr

 로맹 가리가 프랑스 대사가 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고, 대문호가 되는 과정에도 이야기라는 동력이 숨어 있다. 그의 어머니 니나 카체프는 아들에게 언제나 거짓말을 했다. 그는 어린 로맹 가리에게, 심지어 아직 프랑스 시민권도 없었던 그에게 매일 프랑스 대사가 되었을 때의 이야기, 글을 써서 노벨상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 개선문 앞에서 위대한 장군의 손으로 훈장을 전달받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심지어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아들 로맹 가리였다. 훗날 로맹 가리는 어머니 니나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하나 둘 사실로 만들어 나간다. 그의 자전적 소설 <새벽의 약속>에 그는 이러한 과정을 어머니와의 약속이 이루어낸 것이라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약속의 내용은 모두 니나의 거짓말 같은 이야기에서 시작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http://www.aladin.co.kr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에서도 이야기의 동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장난감 우디와 버즈다. 그들은 스스로 놀라운 이야기를 만들며 애니메이션을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그 뒤에는 진짜 이야기꾼 앤디가 있다. 장난감 우디와 버즈의 주인이자 장난감에 이야기라는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아는 아이 앤디. 그는 시리즈의 3편에 와서 대학 신입생으로 성장한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가 지나버린 앤디는 자신이 만든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인 장난감들을 한 상자에 넣고는 그것을 동네의 어린아이에게 선물로 건넨다. 앤디가 장난감을 떠나보내며 하는 마지막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이야기였다. 앤디는 아이에게 자신이 만든 장난감의 이야기를 즐겁게 전하며 마지막 놀이를 마친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이으려 새로운 길을 나선다. 앤디의 이같은 걸음을 어느 미지의 바다를 나서는 모험가의 걸음과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사진 출처 http://movie.daum.net


3. 

 다시 호카 곶에 선다. 그곳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때는 진실이라 믿었던 이야기. 지금은 소설을 넘어 전설이라 말할 만큼 진실과 멀어진 이야기. 그곳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는 새로운 이야기를 불렀고 새로운 이야기에 이끌린 이들은 노를 저었다. 노는 이야기를 전설로, 전설을 사실로 만들었다. 

 ‘무한의 확장.’ 

 세상의 끝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오늘도 세상의 끝을 넓혀주고 있다.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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