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회를 먹는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선이 뭐가 있을까?
벵에돔, 황돔(참돔), 돌돔 정도가 있다(사진 왼쪽 순서대로). 보통 1kg에 10만 원이 넘는 고급 횟감들인데, 그중 돌돔은 2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근데 제주도 횟집에서 회를 먹다 보면 심심치 않게 밑반찬으로 올라오는 생선이 있으니 바로 자리돔이다.
다 커봤자 10cm 정도인 작은 물고기라서 보통은 뼈째 썰어서 세꼬시로 먹는다. 자리물회나 자리젓갈로 먹기도 한다. 육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생선이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살아있는 자리돔을 취급하는 몇몇 집에서 10마리에 3~4만 원을 받고 팔기도 한다. 제주 사람들이 보면 기가 찰 일이긴 하다.
왜냐하면 자리돔은 제주도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고, 낚시꾼을 성가시게 하는 잡어 정도로만 취급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흔한 물고기냐면, 낚시할 때 밑밥을 한번 뿌리면..
이렇게 된다. 저 새까맣게 몰려든 게 모두 자리돔이다.
여하튼 정말 몇 달만에 큰 맘먹고 제주 낚시 여행을 준비했고, 이 날은 둘째 날이었다.
이 날 찾은 곳은 대평 해송횟집 포인트라고 불리는 곳인데,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바람이 많지 않아 바다도 잠잠한 게 딱 낚시하기 좋았다. 오랜만에 찾은 제주 바다인데, 반드시 기준치 이상(25cm 이상)의 벵에돔이나 참돔을 잡아서 갯바위에서 회를 떠 먹는 기쁨을 누르고 싶었다.
낚시를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났다. 결과는..
20cm가 넘을까 말까 하는 벵에돔들, 무식하게 힘만 센 따치(따돔이라고도 하고, 회로 잘 먹지 않는다.)
이 딴 게 전부였다. 물 속엔 자리돔 백만 마리가 바다를 완전 점령해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보내고 나서야 난 낚시를 포기했다.
갯바위에서 회를 먹겠다던 내 꿈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내가 얼마를 들여서 여기까지 왔는데..
한 달전부터 얼마나 설레었는데..
나쁜 바다. 물고기 한 마리 내어주는 게 그렇게 싫더냐. 갑자기 바다가 미워졌다.
내가 이런다고 회를 안 먹을 것 같아? 꿩 대신 닭이라고 어차피 안될 거면 자리돔이라도 잡아서 먹겠다.
자리돔은 '돔' 아닌가? 여기선 잡어지만 육지에선 엄청 비싼 몸값이라고.
그래 자리돔을 잡자!
채비를 자리돔으로 바꿨다. 자리돔은 마음만 먹으면 백 마리라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낚싯대를 담그기만 하면 주렁주렁 달려오는 게 자리돔이다.
너네한텐 미안하지만, 난 이렇게라도 회를 먹어야겠다. 그리고 사실 너네들 원래 작은 애들이잖아. 어린 게 아니라 다 큰 거 알고 있다고.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작은 것들은 방생해주고, 그나마 큰 것들만 골라서 20마리 정도를 준비했다. 그리고 갯바위에서 회를 뜨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에 생선회를 뜨는 걸까? 왜 이렇게 얘네들한테 미안한지.
머리를 잘라내어 바다로 던지면서 이렇게까지 해서 회를 먹어야 할까 하는 자괴감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10마리만 손질을 하고 다 방생했다. 그나마 10마리를 썰어내다가 5마리도 버렸다.
5마리로 세꼬시를 뜬 자리돔 회.
맛은 있다.
일반 횟집에서 서비스로 내어주는 자리돔은 대부분 죽은 상태의 생물로 나온다. 그래서 약간 살이 푸석한 느낌이 있는데, 바로 회로 뜬 이 자리회는 식감이 탱탱하고 부드럽다. 5분도 안되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하다.
바람이 세지고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마치 바다가 내게 화를 내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해서 꼭 회를 먹어야만 했나?
그 어린 것들까지 잡아서 꼭 먹어야 했나?(어린 게 아니라 원래 작은 거라니까;;)
바닷물이 넘실거려 내 짐들을 덮치기 시작한다. 일부 장비가 바닷물을 맞아 젖었다.
서둘러 채비를 정리하고 돌아가려는데..
돌아가는 길목마저 거의 잠기다시피 했다. 발만 한번 헛디뎌도 물 속에 빠질 것만 같다.
양 손에 채비를 꽉 쥐고 조심스레 길을 건너면서 생각했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러나.
그러길래 다 큰 벵에돔 한 마리만 보내줬어도 저 작은 애들을 먹지 않았을 거 아냐.
너무하네 나쁜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