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TM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
XTM채널에서 방영하는 예능 중에 수방사(수컷의 방을 사수하라!)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아내 몰래 특정 취미를 갖고 있는 남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다.
수방사의 시즌1 마지막편은 심야식당편(이라고 쓰고 횟집편이라고 읽는다)이었는데 출연하게 되었다.
건방져 보이지만 사실 수방사가 첫 방영할 때부터 왠지 난 신청하면 될 것만 같았다. -_-;;
회를 미친듯이 좋아하는 남편과 회를 너무 싫어하는 아내. 설정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환경에 있는 난 수방사의 컨셉과 너무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작년 말쯤에 수방사에 의뢰 신청을 올리고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작가와 사전 미팅을 한번 하고 온라인 미팅도 했다. 본 촬영일은 2주 전에 확정되었다.
그 2주 동안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보통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실행할 때 와이프와 먼저 논의를 하거나 도움을 받는데 이번 일은 그럴 수가 없으니 모든걸 혼자 해결해야 했다. 거기다 나와 와이프는 사내부부이기 때문에 겹치는 인맥이 많아 주변에 의견을 공유할 사람도 별로 없었다.
정말 대나무숲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작가가 방송 내용을 구성하기 위해 계속해서 카톡이나 전화를 통해 질문을 자주 했었는데, 혹시 와이프가 휴대폰을 볼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거기다 촬영 일주일전엔 일본을 놀러갔는데 24시간 붙어 있다보니 더더욱 조심스러워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본 촬영 일주일전에 아내 성향 테스트에 나오는 몰래카메라를 촬영했다.
와이프가 들어오기 전 스텝들이 집안 곳곳에 카메라 4대를 설치하고 밖에 나가서 대기한다. 와이프가 들어오면 미리 짜여진 (와이프를 화나게 할) 각본대로 말을 걸어본다. 이때도 혹시 카메라를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20분 정도 와이프를 화나게 하고, 우린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가면서 몰래 스텝들에게 이제 카메라 수거해 가시라고 카톡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흘러 드디어 본 촬영일이 되었다.
난 몰래 휴가를 냈고, 마치 회사에 일이 있어 일찍 출근하는 것처럼 먼저 집을 나와 스텝들과 접선 했다.
그렇게 하루종일 이것저것 촬영을 하고 드디어 바뀐 집을 보는 시간.
집이 꾸며진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난 진심으로 기뻣다. 정말 촬영 내내 계속 웃었다. 가식이 아니라 정말로 그냥 웃음이 계속 났다. 다찌(bar)를 만들고 참치냉동고가 있을꺼란 예상은 했지만 좁은 거실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어서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는 나무도마와 Bar, 대나무와 벚꽃, 모든게 다 아기자기 했지만 갖출것은 다 갖춘 작은 이자카야 느낌이었다.
정상훈씨가 직접 그렸다는 이 그림은 볼 수록 신기하다. 어떻게 저리 잘 그릴수가 있지; 나중에 중고나라에 팔아야겠다 ㅋㅋ
방송엔 잘 보이지 않지만, 천장과 Bar 하단에 은은한 느낌을 주는 조명도 있다.
나와 와이프는 이전부터 수방사를 몇 번 같이 본 적이 있다. 와이프는 처음 집을 보았을 때 잠깐 동안은 정말 내가 직접 꾸민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설마 내가 벚꽃을 저렇게 직접 설치했으려고..
집을 둘러본 후에야 수방사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방송엔 나오지 않았지만 (장난 비슷한) 욕을 살짝 했었다. 생각해보면 수방사인걸 알았으면 카메라가 숨겨져 있단 것도 알았을텐데 왜 그랬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간다. ㅋㅋ
방송에선 다 끝나고 MC들이 후다닥 도망가는 걸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다. 스텝이 카메라 수거하러 들어오는 줄 알고 문을 열어줬는데, 김준현, 정상훈, 정태호씨가 우르르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시즌1 마지막회라서 그런건지 아니면 원래 항상 와이프랑 인사를 하고 가는데 방송엔 나오지 않았던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와이프도 깜놀하며 신기해 했다.
사인을 못 받아둔게 지금도 후회된다며..
여튼, 힘든 점도 있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고 집도 너무 마음에 든다. 다만 전세집이라 나중에 이사갈 때 철거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좀 있긴 하다.
소재를 채택해 주고 여러가지로 챙겨주었던 작가님들과 PD님, 스텝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재밌는 방송을 만들어준 세 MC분들께도 감사드린다.
그리고 집을 이렇게 마음에 들게 설계하고 꾸며주신 디자이너님과 작업자분들에게 정말정말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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