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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땡겨 박주명 Jun 09. 2017

[2부] 바다에서 식탁까지, 인천배낚시

1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몸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 종일 고생했으니 이제 먹어야겠다.


광어 1마리, 놀래미 1마리, 볼락 8마리.

광어는 회를 뜨고, 놀래미와 볼락은 구워 먹기로 했다. 사실 놀래미 회를 먹어본지가 오래되어서 회를 뜰까 했지만 사이즈가 20센티 남짓이라 풋내가 날 것 같아서 그냥 구웠다.


돔 종류의 회만 주로 뜨다가 오랜만에 광어를 뜨려니 감이 없어서 완전 대실패 했다. 거기다 지금은 광어가 산란기를 마친 시점이라 가뜩이나 살도 얼마 안 나오는데..


그나마 잘 뜬 게 이 정도인데 회를 뜰 줄 아는 사람이라면 저게 얼마나 잘못한 건지 알 게다. 껍질에 살이 다 남겨져서 버려졌으니...

너무 피곤해서일까.. 주방에서 피비린내 나면서 손질하는 게 너무 귀찮고 짜증이 났다.

비린내를 없애야 한다는 일념 하에 싱크대를 닦고 또 닦고..ㅋㅋ


살아있는 광어를 바로 회로 뜨면 정말 맛이 없다. 최근엔 숙성회에 너무 익숙해져서 갓 잡은 광어의 쫄깃함이 뻣뻣함으로 느껴졌다. 고무를 씹는 느낌이랄까. 간장은 아예 꺼내지도 않고, 초고추장을 듬뿍 발라 먹었다.

일부는 진공상태로 냉장고에 숙성시키기로 했다.


그리고 놀래미 구이.

빨리 자고 싶은 마음에 급했는지 덜 구워졌다. 별다른 맛도 못 느낀 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그래도 고생한 게 있는데 남은 거라도 맛있게 먹겠단 결심을 했다.

우선 해장으로 볼락 라면을 끓였다.


맛은... 어... 그러니까..

라면에 볼락은 넣지 말아야겠단 교훈을 얻었다.


하루 숙성시킨 광어를 차렸다. 이제 좀 먹을만하다.


식감을 충분히 느끼고 싶어서 엄청 길게 썰었다. 쫀득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느껴지는 맛이다.

역시 광어회는 숙성을 시켜야 한다.


볼락 사형제도 구이로 변신. 이건 좀 맛있다.

원래 좀 고급스러운 일식집에 가면 볼락 튀김이나 구이를 내어주는데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다.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할 광어 매운탕.

우럭이라도 한두 마리 잡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인천 배낚시는 원래 우럭 잡으러 가는 건데 한 마리도 못 잡다니..


이렇게 한 마리도 남김없이 잡은 것들을 모조리 먹고 나서야 후회감이 밀려온다.

이 돈이면 그냥 사 먹을 걸...





이 글에는 반전이 있다.

물고기 좀 보실 줄 아는 분이라면 위에 광어 사진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낚시로 잡아 올린 자연산 광어는 원래 저렇게 지느러미나 꼬리에 피멍이 들어있지 않다. 저런 건 양식이거나 자연산이지만 일정 시간을 좁은 공간에 가두어서 광어들이 몸부림치다 생기는 피멍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저 자연산 광어는 돈 주고 사 온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인천 배낚시를 마치고 오면, 항구 앞에서 광어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낚시꾼들은 그렇게 물고기를 잘 잡지 못한다. 특히 배낚시는 운빨이 90%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낚시를 해도 꽝 칠 수 있다.


집에 눈치 봐가며 새벽부터 부산 떨며 달려온 아빠들. 아내에게 자식들에게 자연산 회를 맛보게 해주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며 비장하게 낚시를 한 불쌍한 아빠들..

그들을 위해 항구에서는 자연산 광어를 매우 싼 가격에 판다. 60센티 넘는 대광어 2마리를 단돈 5만 원이면 살 수 있다. 횟집에서 먹으려면 20만 원은 넘게 줘야 하는 가격이다. 다들 그렇게 광어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빠가 오늘 이만한 걸 잡았다며...


사진 속의 저 광어는 1.5만 원을 주고 산 광어다.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던 나는 집에 가서 회를 먹을 수 없다는 상실감에... 처음으로 돈 주고 고기를 사봤다.

덕분에 이렇게 포스팅도 하고...


이래저래 경비 10만 원을 넘게 쓰며 다시는 낚시하러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며칠만 지나면 또 낚시 생각이 간절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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