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는 한 학기당 한 편 정도의 고전소설이 실린다.
1학기에는 춘향전을 했고, 2학기에는 심청전을 한다. 줄거리 파악을 위해 교과서의 본문을 읽고 요약하는 10분을 줬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열심히 읽고 있다. 왜지? 하는 의문으로 아이들을 관찰한다. 마디마디 문장은 낯설고 둔탁하지만 아이들은 인물에 집중하고 있었다.
불안한 질문이 머릿속에 정렬을 한다.
혹시 심청전을 모르는 것은 아닌가?
"심청전을 처음 읽어본 사람?"
그렇다, 한 반에 5명 정도의 아이들이 들어는 봤지만 읽어보는 건 처음이라 한다.
대부분은 취학전에 전래동화로 읽은 경험이고 소수는 읽어본 거 같다는 평이다.
어릴 때 읽은 동화는 뭐가 있었냐고 물으니 제목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대부분 현대작가들이 쓴 동화책이다.
고전을 읽는 것이 당연했던 동화는 어느새 현대물로 아이들에게 교통규칙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교육용 동화책들이 차지하고 있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할까?"
머뭇거리던 아이들 중에 한 명이 "우리 것이니까 누군가는 그 다음 세대에 전달해야하기 때문 아닌가요?" 한다. 전달의 의무를 지기 위해 지금의 우리가 고전을 읽기엔 너무 거창한 타이틀인 것 같다.
고전 속에 등장하는 지금과는 다른 시대, 지금과는 다른 사고방식, 지금과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기 위함이다. 멀리 유럽이 아니고, 바다건너 미국이 아닌 우리 땅의 우리 민족이 거쳐온 역사 속에 그들이 가졌던 생각과 문화를 작품을 통해 이해해 보는 시간이다. 어쩌면 나를 이해하기 위함인지도 모른다.
"애들아, 우리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리 할머니들의 삶을 알아야 하고, 할머니의 삶 한 구석을 들여다보다보면 지금의 내가 보이기도 하는거란다. 왜 우리 민족은 이런 생각과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자. 심청이는 왜 장승상 부인이 돈을 준다고 햇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인당수를 선택하게 되는걸까?"
같은 교무실의 두세살 차이나는 동료교사의 삶의 방식도 이해하기 힘든 세상이다. 빠르게 변해가고, 그만큼 급하게 적응하는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어디까지를 텍스트로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 질문을 하면서도 늘 한계를 준다.
"수능에 출제될 때는 문학감상의 틀 안에서 작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열림과 닫힘 사이에 늘 공존하는 학교 교육의 머뭄. 나는 어디쯤 서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