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기록부

by 홍선생

나는 12월이 되면 교과세특을 입력하기 시작한다.

수행평가 결과물을 토대로,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동기와 자료조사의 의미 발전방향 등을 담는다.

4개학급의 115명의 학생은 하루에 5명씩 작업하기 시작하면 23일이면 끝난다. 매일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한다. 그러면 크리스마스 이브전에 세특이 완성된다. 나의 최애 목표다.

크리스마스만큼은 세특의 지옥에서 벗어나자.


그러나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방학식을 기점으로 세특을 준비한다.

그네들은 겨울방학의 하루하루를 학생부와 보낸다.

그러나, 나는 숨이 막혀 죽을 것 같고 속이 울렁거려 토할 거 같았던 기억을 트라우마로 늘 12월에는 세특을 끝낸다.

다행히 이번에도 그 끈기는 나의 구토와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미끼로 밀어넣어 완성했다.


이제 1월.

첫주에는 자율활동을 입력한다. 하루에 5명~6명씩 하면 1주에 끝난다.

두번째 주에는 진로활동을 입력한다. 하루에 5명~6명을 하면 이 또한 주중 1주일이 걸린다.


이번에는 백신 3차 접종을 앞두고 조금 서두른 덕분에 첫주에 자율과 진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12월 마지막주를 흥청망청이로 보내지 않은 덕분이다.


지난 주는 거의 3차 백신접종으로 몸져 누웠지만. 마무리 해 놓은 진로와 자율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홧병에 걸렸으리라.

오늘 근무일이라 출근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묵혀둔 아이들의 자기평가서를 꺼내

마지막 남은 행동발달종합 특기사항을 입력한다.

사실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다. 쓴 커피를 몇 잔을 마셔도 계속 목이 마른다.


하지만.. 쓰다보면. 문득.

자판을 멈추고 정말 그 아이를 생각하게 된다.


여자아이가 5인 덕에 늘 짝이 없어 결국 2:2:1인 체제 속에서 스스로 관계에서 낙오되어 힘들었던 00이

정이 많았지만 공부만큼은 애정을 쏟지 못해 키만 더 커버린 우리반 키다리 ##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자기를 내세운다 싶지만, 늘 누구보다 여린 곰이 하나 들어있는 @@이

불러도 불러도 늘 네~! 선생님 대답해 주는 스마일맨 $$이

누구보다 작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커서 궂은 일은 그 작은 손으로 다 하던 ^^이


그래. 이 맛으로 사는거구나.

내가 또 이 아이들을 속속들이 살폈구나.

하나하나 기억나는 사연마다 아이들과 함께 한 틈바구니가 행복했다 싶다.


정말 엑셀 화면만 봐도 어지럼증이 도는 오후.

이젠 오늘은 그만하자.

행동발달사항 15명을 입력하며 머리가 뜨거워지고 양볼은 고구마구이처럼 달아올랐지만.

오늘은 그만하고 접자.


또 다음 주에는 남은 13명을 향해 전력질주해 보고. 남은 1월을 마무리하면.

2월 개학에는 조금은 홀가분하게 너희를 진급시킬 수 있을만큼 나도 훌훌 가벼워지지 않을까.


저장이 혹여 날아갈까 분분하게 엑셀파일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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