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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Sep 02. 2017

없지 않다.

당신이 모를 뿐이다.

'야, 커밍아웃은 립싱크로도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괜히 있는 줄 아냐?’


무슨 말이냐고? 술을 마시던 중 던진 ‘형은 왜 A한테는 커밍아웃 안 해요? 걔도 꽤 오픈되어있지 않아요?’라는 내 멍청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A와 형과 내가 있다. 우리 셋은 가끔씩 술을 마셨고, 더 가끔씩 운동을 했고, 거의 일어나지 않았지만, 같이 공부도 했다. 자세히 말하긴 어렵지만, 이런 저런 일을 하며 서로 유대와 신뢰를 쌓았다. 그렇게 셋이 논지 한 반 년쯤 되었을까. 형은 내게 커밍아웃했다. 솔직히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하는데, 대충 ‘아 정말? 전혀 몰랐네요. 형, 나는 게이다(Gaydar)가 있는 사람은 아닌가 보네요.’ 정도로 반응했던 것 같다. 커밍아웃이 처음도 아니고, 형이랑 친해진 건 성적 지향이랑 상관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 무반응 탓일까, 형도 내게 너무 관심 없는 티 내지는 말라고 놀리며 이야기는 끝났다. 딱히 바뀌는 건 없었다. 아, 형의 애인을 소개받았으니 바뀐 게 없지는 않다.


적어도 우리 셋의 관계가 바뀐 건 없었다. 우리는 여전히 셋이서 같이 놀았다. 늘 그래왔듯이 서로 자기 얘기만 늘어놓았다. 대화에서 가끔씩 A가 모르나 하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러다 A가 3대3 미팅을 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그제야 형한테 혹시 A가 모르냐고 물었다. 당연히 답은 ‘모른다’였다. ‘왜 A한테는 커밍아웃 안 해요?’가 그 다음에 나온 질문이었다. 커밍아웃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한 형은 A한테는 말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궁금한 게 있었지만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조용히 있었다. 다만 나는 궁금한 게 있으면 티가 나는 사람이고, 형은 그걸 눈치 못 챌 만큼 멍청이는 아니다. 형은 ‘A가 알면 지금처럼 못 놀 거야’라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때 얘기를 잠시 해보자. 나는 내 할 말만 하는 놈이다. 사회성이 그다지 좋은 편도 아니라 친구를 사귀면 가능하면 깊게 사귀려고 한다. 내가 깊은 관계가 되기 위해 쓰는 방법은 온갖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라는 사람을 쉽게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거다. 그때도 그랬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였다. 얘기할 때마다 정말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온갖 사소한 얘기, 예를 들면 ‘우리 학교에서 화장실에서 양변기를 쓸 때는 11시가 넘어서 교직원 화장실을 쓰면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한번은 주제가 성소수자(그때는 이런 말을 몰라서 그냥 ‘동성애자’라고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로 넘어갔었다. 지금도 그때도 내 입장은 ‘누가 누굴 좋아하건 그걸 왜 다른 사람이 신경 써’라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었다. 그리고는 아마 ‘누가 나한테 게이라고 해도 똑같이 대할 자신 있어’라고도 했을 거다. 나는 정말로 게이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믿었고,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해도 크게 다르게 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른 친구들도, 아니면 적어도 한 명은 그렇게 생각했음에 틀림이 없다.


‘야, 이런 얘기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 나 사실...’


무척이나 놀랐다. 하지만 그냥 놀라고 끝났으면 별문제가 없었을 거다. 부끄럽지만,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당황했고, 그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친구에게 보여줬다. 다시 묻고, 당황하고, 그리고는 허둥댔다. 그 뒤의 행동들도 아마 전과 같지는 않았을 거다. 한동안 그 친구를 의식했던 기억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그게 행동으로 드러났을 테고 아마 녀석은 실망했을 거다. 그렇게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친구를 하나 잃었다. 그게 내 커밍아웃에 대한 첫 기억이다.


형이 왜 A한테 이야기하지 않는지는 모른다. 사실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수십 가지는 있을 테고 나는 그저 제 3자의 입장에서 추측해볼 따름이니 내 경험에 비춰볼 수밖에 없다. 물론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형이다. A한테 말 못하는 게 편할 리 없다. 적어도 ‘지금처럼 못 놀 꺼야.’라고 말하는 형은 별로 쾌적해 보이진 못했다. 웬만한 건 그냥 웃어넘기는 항상 즐거운 사람인데도 말이다. 큰 욕심은 없다. 그냥 형이 쾌적했으면 한다. 좋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나는 누가 커밍아웃해도 아무렇지 않게 대할 자신이 있다!’ 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하면 이 ‘아무렇지 않게 대할 자신’이라는 부분이 벌써 대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가 아닐까 싶지만, 혹시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쯤 재고해 보길 바란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을까?


이건 당신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당신도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랑하길 바라는 사람이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다. 한 번도 커밍아웃을 경험한 적이 없다면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상대방이 친한 사람이면 더 반응은 더 두려워진다. 우리들, 그러니까 이성애자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적 지향이라는 정보의 디폴트 값(기본 값)을 ‘남성과 여성’으로 둔다. 사회가 그렇게 가르치고, 본인이 그런 탓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정보를 채워나간다. 이름은 뭐고, 직업은 무엇이며, 음식 취향은 어떠한지를. 굳이 묻지않아도 되는 당연한 정보는 내가 갖고 있는 디폴트 값으로 채워둔다. 예컨데 ‘종족:인간’, 이런 식으로.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성적 지향을 ‘이성애’라고 입력해둔다. 그런 상태에서 커밍아웃을 받으면 상대방에 대한 오류가 발생한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한 너'는 ‘내가 알던 너’가 아니게 된다. 그렇게 상대방을 대하는 게 바뀐다. ‘내가 아는 너’가 아니니까. 그 디폴트가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준다.


모든 것에 디폴트 값이 있는 건 아니다. 디폴트가 없는 것들도 있다. 뭐, 예를 들자면 ‘좋아하는 색깔’, ‘잠을 자는 자세’와 같은 것들. 너무 다양해서 기본값이 존재하지 않는 것들. 필요한 게 이거다. 성적 지향이라는 정보의 디폴트 값을 없애는 것. 성적지향은 정말 다양하니까, 누군가를 만나도 ‘이 사람은 이성을 좋아하겠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다. 처음 만난 상대가 당연히 빨간색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한 번은 A가 ‘아는 게이 있냐’고 물었다. 그건 왜 묻냐고 되물었다. A는 ‘아니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을텐데, 내 주변에 게이가 한명도 없어서’라고 했다. 글쎄, 정말 없을까.


- 이 글은 LEDEBUT 36호(ledebut.kr)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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