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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씨 Nov 03. 2017

서울패션위크는 아름답지 않다.

화려하지만, 아름답지는 않다.

이 글을 써야하나 말아야하나 한참을 고민했다. LEDEBUT에 쓰려다가 말았다. 우리 독자에게 필요한 글이 아닌 것 같았다.


서울패션위크 2018 s/s가 끝나고 한참이 지났다. 어쨌건, 서울디자인재단은 성공적인 행사였다고 자축했고, 내게 ‘시민참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행사’라고 보도자료를 보내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서울패션위크가 열린 5일간 나는 패션위크 밖에서 시민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보도자료와는 완전 달랐다.

엄청나게 다채로운 색깔의 옷과 사람들

이 시기의 DDP는 화려하다. 대한민국 어디보다도, 언제보다도 다채로운 색깔의 옷이, 그리고 다른 색채의 사람이 모인다. 애초에 사람들은 그걸 보는 패션위크의 재미 아니던가. “오, 저사람은 모델인거 같아.” “와, 저 사람이 입고 온 옷 완전 특이해.” 하지만 그게 끝이다. 다양한 색은 잘 배치되었을 때 아름답다. 하지만, 그저 엉망으로 섞어놓았다면 징그럽거나 어지러울 뿐이다. 패션위크가 그랬다. 갈 곳이 없어 뒤섞인 시민들은 나를 어지럽게 했다. 패션위크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서울패션위크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온다. 한껏 꾸민 모델부터, 낮부터 창신동에서 족발에 소주를 한 잔 하신 등산복차림의 아저씨까지. 아까 말했다시피 정말로 별의별 색깔의 사람들이 온다. 아, 물론 이름에 ‘패션’이 들어가니 옷의 색도, 사람의 색도 다양한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모든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이곳에 온다. 모델은 쇼에 서기 위해, 디자이너에게 인사하기 위해,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등산복차림의 아저씨는 뜨는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젊은 사람들은 구경하기 위해, 그도 아니라면 그저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사실 딱히 올 이유가 없는 사람들은 DDP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즐길 거리, 먹을 거리가 거의 없는 이곳은 사실 축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애초에 ‘페스타’도 아니긴 하지만. ‘디제잉 쇼’나, ‘헤라 립 토크 쇼”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행사가 전무하다. 나머지는 위치가 지나치게 외지거나, 시간이 너무 이르거나 늦다. 혹시라도 당신이 갈만한 행사가 있었다고 쳐도, 갈’만’한 거지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행사 규모가 작아서 인원제한이 있는 탓에 그 사실을 이제 안 당신이 들어갈 방법은 없다.

쇼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적다

이렇듯, 서울패션위크는 올 이유가 있어야 오는 행사다. 사실 업계 관계자는 올 이유가 참 많다. 업계 관계자, 그러니까 모델이나 연예인을 비롯한 VIP, 바이어, (기자와 포토)프레스, 디자이너에게 패션위크는 축제다. LEDEBUT만 해도 서울패션위크가 시작됨을 엄청나게 기다렸다. 프레스에게 패션위크란 기사거리나, 사진이 터져나오는 시기인 탓이다. 다들 꾸미고 나오니까 그중에 고르기도 쉽다. 디자이너는 다른 디자이너를 보고 공부를 하거나, 자신의 쇼를 선보이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바이어와 VIP는 쇼를 보며, 이번 시즌의 트렌드를 파악한다. 100%는 아니지만, 대충의 맥락은 이렇다.


입장만 봐도 그렇다. 위에서 말한 업계 관계자들은 입장이 각기 다르다. VIP와 프레스, 연예인, 바이어는 각기 입장이 다르다. 물론 일반 시민들의 입장과도 분리되어있다. 물론 들어가서도 다르다. 자리가 지정되어있고 자리에 가면 이름이 붙어있다. 예를 들면 (LEDEBUT 신동윤) 이런 식으로. 물론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해주는 건 아니고 요청을 해야 해주긴 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자리는 대개 3번째 자리가 넘어가는 뒷자리다. 게다가 선착순으로 앉기도 하지만, 들어오는 순서대로 채워나갈 때도 있어서 일찍 왔어도 맨 뒤에 앉기도 한다. 실질적으로 옷의 디테일을 보라고 준비하는 게 아니다. 그냥 옷의 전체적인 디자인이 이렇구나... 정도로만 보라고 주는 자리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팬서비스에 가깝다. ‘어유, 우리 브랜드를 런웨이에 올 정도로 좋아하셔요? 감사합니다. 자리는 한 자리 드릴게요. 어디 앉을 지는 모르고, 선착순으로 앉으니까 재수 좋으면 앞쪽에 앉으실 수 있어요’ 라는 느낌. 게다가 그 쇼도 원한다고 다 들어가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티켓은 이벤트를 통해서 배포되고, 중복을 가리지 않는다. 입장부터 자리까지 다 운빨이라는 얘기다.

서울패션위크의 피날레인 비욘드클로짓 쇼가 진행되고 있지만, 많은 시민들은 밖에서 떠돌고 있다

그럼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그다지 대우받지 못하는 시민들은 왜 오는 걸까. 물론 재미로 올 수도 있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그냥 재미로 온다면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 오는 관람객의 상당수는 하루만 오지 않는다. 적어도 2일이상, 길면 5일내내 온다. 인터뷰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관람객은 한 커플이었다. 속초에서 온 고등학생 커플이었는데, 5일동안 이곳에 머문다고 한다. 인터뷰에서는 진로가 패션쪽이라서 방문했다고 했는데, 쇼 들어가는 게 있냐고 묻자 없단다. 솔직히 외부만 보려는 거라면 사진으로도 충분할텐데, 그래도 뭐라도 있을까 싶어서 온거다. (쇼 못 들어간다고 아쉬워하는 모습이 신경쓰여서 구경이나 하라고 티켓 2장을 줬다.) 이게 대표적인 모습이다. 정말 많은 시민들은 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냥 밖에서 떠돌 뿐이다. 하지만 밖에서도 딱히 할 건 없다. 이 사람들이 오는 이유는 하나다. ‘그래도 뭐라도 있을까 싶어’, 그러니까 ‘기회에 대한 기대’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거나, 인터뷰를 한다는 것을 잘 거절하지 않는다. 하나의 기회로 인식한다. 모델지망생은 데뷔의 기회, 포토그래퍼 지망생은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 일반인들에게는 혹시라도 다른 해외 블로거들처럼 자신의 패션이 유명해질 기회다. 한없이 좁은 기회지만, 어쨌건 분명 기회가 있긴하니 이 기대는 긍정적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할 게 전혀 없는, 쇼에도 들어가지 못해 전광판으로 쇼를 봐야하는 곳에서 하루종일 맴돈다. 오르막길을 오가고, 앉을 곳도 없는 DDP의 터를 빙빙 돈다.

전광판으로 쇼를 보는 시민들

하지만, 이건 패션위크가 의도한 ‘시민참여’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패션위크’라는 이름이 만들어낸 효과에 가깝다. 패션위크에서 시민이 배제되어도  지금과 딱히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으니, 패션위크에 시민이 참여하는 건 딱히 없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서울디자인재단은 ‘시민참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행사’라고 했다. 적어도 ‘이 사람들이 여기에 왜 오지?’라는 의문을 갖고 5일간 돌아다녔던 내 생각은 다르다. 글쎄? 시민참여라기 보다는 그냥 이름과 장소 제공이 효과적이었던 것 아닐까.


정돈되고, 의도적인 배치의 색 조합은 아름답다. 서울패션위크에는 시민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색깔이 모였지만, 의도적인 배치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다양한 색깔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를 찾아 엉망으로 흐트러질 뿐이었다. 그저 휘섞어둔 색깔은 내게 어지러울 뿐이었다. 색이 뒤섞이면 처음엔 자신의 색을 지키다 나중엔 보기 싫은 검은 색으로 변한다. 패션위크는 화려하지만,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혐오스러워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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