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7.
요즘은 도통 기운이 나지 않았다.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는 것 같다. 기운이 나지 않아도 육아는 계속되고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속에 쌓인 것들을 풀 기회도 제대로 갖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기분이다. 아기에게 이런 것을 티 낼 수는 없지. 하지만 아기도 내 벅참을 느끼는 건지 아니면 한 단계 성장한 덕에 조금은 평화로운 육아시기를 보내고 있다.
여름이라 입맛이 뚝 떨어질 법도 한데 다행히 요즘은 뭘 해줘도 맛있게 잘 먹어준다. 고마운 일이다. 어제저녁밥은 무려 리필을 해줬다. 가끔 어린이집에서 '더 먹고 싶다고 표현하여 더 먹었어요.'라는 문구가 쓰여있어서 의문이었는데 내 앞에서 그렇게 더 먹겠다고 하다니. 어느새 이렇게 컸니? 덕분에 좀 묵직해진 느낌이라 몸무게를 재보니 드디어 10kg을 넘었다! 너무 감격스럽다. 9개월 때부터 9kg 초중반을 왔다 갔다 해서 내 마음을 졸이더니 17개월에 드디어 두 자릿수 몸무게를 보여줘서 마음이 놓인다. 대견하다.
떼가 많이 줄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훈육을 한 게 먹힌 거였는지 아니면 그때 그 시기가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다. 떼를 쓰면 낮고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자리를 피할 수 없을 땐 반응을 해주지 않았다.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이제 떼를 쓴다고 뒤로 뒤집어져서 심하게 우는 일은 확실히 하루에 2,3번 정도로 줄었다. 대부분은 그냥 받아들이거나 울음도 1분 이상 가는 일이 많이 줄었다.
대신 "기다려." 훈련이 필요해진 듯하다. 분명 아기는 본인이 요구한 것이 일상적인 루틴이고 내가 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울음을 보이며 심하게 재촉하곤 한다. 이전에는 내 손도 같이 빨라지느라 허겁지겁하다가 실수가 잦아졌는데 이제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듣는 개월수가 되었으니 기다리는 법도 알려줘야겠다. 이렇게 말하면 강아지들 훈련과 비슷해 보인다. 사실 비슷한 점이 많다. 규칙을 알려주고, 반복하고, 제한하고, 일관성을 보이는 것.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도 꾸준히 해봐야지.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기는 인지적인 발달이 다른 발달에 비해 빠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몸의 명칭과 부위를 정확하게 알고 찾으며 관련된 노래와 율동을 할 줄 안다. 실물과 사물, 그림의 관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며 그것을 서로 연결하는 동작을 보여줄 수 있다. 그림책에 나타난 행동묘사를 따라 할 수 있다. 음식과 관련된 표현을 구분하여 말할 줄 알고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먹는 것인지 표현할 수 있다. 모양 맞추기 활동에서 도형의 모양에 따라 알맞은 구멍에 넣을 수 있다. 아마 내가 아기와 집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훈련하는 부분이고 남편이 자주 반복해 준 것을 아기가 기억하고 있나 보다. 정말 배운 대로 흡수하는구나.
소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있는 중이다. '내 거'라는 단어를 알려주고 반복해 보았더니 "거" "아기ㄱ" 이런 식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물건이라고 표현하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일상적으로 쓰이는 건 아니라서 반복이 필요할 듯하다.
단어를 말해주고 따라 해보라고 하면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확히 발음하려고 노력한다 ㄱㄲㄴㄷㄸㅁㅂㅃㅅㅆㅇㅋ 이런 자음들은 이제 명확히 나오는 편이다. 아직 받침은 ㅂㅁ 외에는 정확하지 않다. 두 글자인 단어는 대부분 두 글자까지 할 줄 아는데 세 글자인 단어는 첫 단어만 말하곤 한다.
대부분의 지시어를 알아듣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놀이처럼 인식하고 도망가면서 내 반응을 살펴보거나 하고 싶은 것, 하기 싫은 것을 명확히 구분한다. '개인기'라고 하는 동작표현들을 이전에는 5-7가지 정도 해냈다면 이제는 15가지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아직 손가락을 각자 표현하는 섬세한 작업은 잘하지 못한다.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를 자주 한다. 기우뚱 거리는 물체에 올라가서 균형을 잡아보려고도 하고, 바퀴가 달린 자동차 위에서도 올라가 균형을 잡아 보려고 한다. 내 몸 위에 올라타서나 쿠션 위에 올라가서 흔들흔들 균형을 잡아보려고도 한다. 이전에는 올라가면 바로 넘어졌는데 이제는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줄 안다.
서서 다리 사이로 고개를 집어넣는 요가로 치면 '수리야 나마스카라' 동작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원산폭격' 자세라고도 부르던데, 바닥에 머리를 박는 게 안전상 걱정되기도 하지만 이 시기 아기들이 자주 하는 동작이란다. 어쩜 이런 건 빼놓지 않고 하는지.
손을 쓰는 섬세함과 힘이 많이 늘었다. 귤도 바나나도 깔 줄 알고 색연필도 전에는 콕콕 찌르기만 했는데 이제는 선을 긋는 것도 잘한다. 그래서 어제 스케치북을 주문했다. 지금 갖고 있는 연습장 종이들을 드디어 색연필로 가득 칠해놨다. 보통 쉽게 그어지라고 사인펜 많이 쥐어준다는데 나는 아직 사인펜을 감당할 깜냥은 못 돼서 수성 색연필을 고집하고 있다. 가구나 바닥에 그어도 물 묻힌 걸레로 쓱 닦아주면 되니까.
아직 손가락 하나하나를 조절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하는 동작은 곧 잘하는데 '최고'처럼 손가락 한 개만 펴고 나머지를 접는 건 잘 못한다. 그러면서 어떻게 검지손가락을 포인팅 하는 동작은 잘하는 건지 의문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