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아기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도 Aug 30. 2023

38. 독서 교육

독서에 관심이 있고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라면 누구나 고민할 만한 부분이 있다. 어느 시기에 독서 교육을 시작할 것인가?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노출해 줄 것인가? 이 책을 보여주는 목적은 무엇인가? 유명한 책은 무엇인가? 전집 구매가 필요한가? 이런 무수한 질문들을 자신에게 또는 주변에게 던져보곤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도 하고 스스로 검색을 해보며 출판시장에 나와있는 무수한 책들과 홍보 문구에 정신이 빙빙빙 돈다.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필수적인 먹이고 입히고 살아가는 것만 해도 벅찬데 그 외의 부가적인 노동에 해당하는 책은 다시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게다가 요즘의 트렌드는 뇌발달인 건지 이걸 잘해야 우리 아기가 똑똑해질 것처럼 구는 홍보문구들도 선택을 어렵게 하긴 마찬가지다.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면, 엄마는 책육아에 꽤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엄마의 의도에 잘 들어맞게도 책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다. 엄마가 동화책과 책을 읽어주는 카세트테이프를 사다 놓으면 한글을 하나도 몰라도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울 정도로 달달달 읽어서 그 힘으로 한글을 뗐단다. 집에 있는 자연관찰책은 곤충 파트를 제외하곤 닳도록 읽었고 부모님이 분리수거함에서 가져오거나 중고서점에서 사 온 각종 전집들도 달달달 외울 정도로 읽었다.


동네에 처음 도서관이 생겼을 때도 책장을 하나씩 독파할 정도로 좋았고 중학생 때 학교에 큰 도서관이 생겼을 때도 매일같이 도서관에 갔다. 대학생 때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기숙사 생활로 뭔가 도피처가 필요할 때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내가 책을 살 돈이 생겼다는 게 좋았다. 책을 살 돈을 지원해 주는 직장이라는 것도 좋았다. 다른 짐은 다 줄여도 책은 부엌 싱크대에까지 넣을 정도로 줄여지지 않았다. 아기를 낳고는 육아서 이외의 책은 거의 읽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 전생의 일 같지만.


책을 읽는 삶이란 무엇일까? 요즘 말하는 뇌발달이나 내가 어릴 적 떠들어댔던 것처럼 공부를 잘하는 책의 수단적인 영역은 책을 무척 좋아했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나는 책을 읽는 그 순간 내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순간이 좋았고 책을 읽고 나서 보는 세상이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단 부분이 좋았다. 책을 읽으며 세상을 사는 기술이 좋아지거나 돈을 버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거나 아는 것이 늘었다거나 말을 조리 있게 잘하게 되진 않았다. 수단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나는 글 자체를 좋아한 거였다. 수단도 함께 얻었으면 생각이 달라졌으려나?


그래서 양육자로서 내가 아기에게 바라는 점도 수단적인 문제보다는 ‘이 아이에게 책이 삶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 삶이 더 다채로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의 영역이다. 책을 통해 무언가를 얻어가는 건 아이가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 아이가 원해서 하는 선택지였으면 좋겠다.




아기가 태어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책육아는 백일부터라는 말을 주워 들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노출을 해주며 익숙하게 여기게 하란 말이었다. 나는 먼저 아기를 키운 친구 덕에 전집 두 질을 물려받았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핏덩이에게 책을 펼쳐서 보여줬다. 그랬더니 아기가 원색의 색감이 있는 책에 활발하게 반응을 하길래 다른 언니의 추천을 받아 색이 선명한 그림책을 몇 권 더 샀다. 그렇게 책도 읽어주고 노래도 불러주며 느낀 점은 아기는 내가 책을 보여주는 그 자극 자체보다는 나에게 안겨서 뭔가를 시도하려는 그 아늑한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돌이 지나 스스로 하고자 하는 욕구도 늘고 몸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지니 책의 취향이란 게 생기는 것이 느껴졌다. 들고 오는 책을 보면 자기가 스스로 조작하는 책, 자기가 동작을 따라 할 수 있는 책, 아기가 등장인물로 나오거나 일상의 물건이나 동물이 나오는 책을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우리 집에 있는 책들은 아기의 취향과는 약간 거리가 있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찾아보다 문득 찾아간 어린이 서점에서 아기 조작북을 추천받았다. 도서관에서 무수한 책의 바다에 있을 때는 아기를 돌보느라 내가 책을 고를 새가 없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서점에 가니 담당직원이 계셔서 책소개를 직접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기도 제법 흥미를 보여서 처음으로 큰돈을 들여 아기 전집을 사봤다. 전집은 조작북 위주고 보드북이란 점, 색감이 선명한 점이 아기 취향과 잘 맞아서 좋았다. 같이 딸려온 소전집은 집에 있는 병풍처럼 사진으로 구성된 보드북으로 골랐다. 서점에서 서비스로 챙겨준 책들은 내가 고를 수 없어서 우리 아기 취향은 아닌 듯 하지만 나중에라도 천천히 경험해 보자.


그렇게 오늘 아기 책들이 배송 왔다. 새집에 가면 사려고 아직 책장을 구매하진 못해서 큰 바구니에 책을 가득 넣은 것이 아쉬웠지만 새 책이 주는 느낌은 언제나 설렌다. 아기보다 내가 더 신난 기분이었지만 아기가 좋아할 만한걸 몇 권 뽑아 보여주니 집중하는 얼굴이 참 좋다. 아기가 커가면서 내가 느꼈던 즐거움들을 경험해 보았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7. 일상기록-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