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브런치를 찾지 않았는데, 삶의 변화 국면마다 이곳이 다시 생각나는 건 어쩌면 고마운 일인 것 같다. 덕분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비명들을 돌아보고 오늘의 힘겨움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 생각할 수 있어서 그렇다.
오늘은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고 어려워서 남편 이외에 이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 다른 말로는 터놓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에 경험이 없는 나와 남편이 서로 우왕좌왕 하느라 아이에게 적절한 대응을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일이다.
이 글을 쓰는 것도 구체적인 모든 것을 적기는 어렵지만 기록을 남겨 이후의 나도 보고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 사람들이 이 글에 흘러 들어올 수 있으니 공유하기 위해 적어본다.
아이에게 큰 충격이 될만한 사건이 하나 생겼다. 이 사건에 대해 적절한 사과도 조치도 받지 못했고 당시의 나는 그대로 넘겼다가는 2차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심각함을 느껴 경찰 신고를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본인이 직접 진술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진술을 했고, 이 상황에서 아이가 느꼈을 심리적 압박도 컸을 것이다. 세돌이 넘었고 29개월 때 이미 완전할 정도로 배변훈련이 되었는데도 사건 이후로 새벽에 소변 실수를 했기에 조사 당시 담당자에게 심리상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상황을 남편은 다르게 느낀 것 같았다. 이것을 계속 떠올리게 하면 안 좋을 것 같다며 남편은 심리상담을 취소했다. 여기서부터 우리 부부의 소통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는 시간에 대화를 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맞벌이 부부라 직장에 있는 시간에는 짧은 통화만 가능하고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에 맞춰 스케줄이 짜여 있으니 퇴근 후 출근 전 시간은 모두 아이가 함께 있는 시간이다. 장거리 출퇴근에 직장생활에 육아에 찌들어 아이 재우며 같이 잠드는 날이 많아 아이가 잠든 이후도 둘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어렵다. 그렇다고 아이가 있는 시간에 그 사건이나 아이의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가 아무리 어려도 이제 말귀를 알아듣는데 그 상황을 부모가 심각하게 이야기 나누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그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성에 대한 소통의 부재로 서로에게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 점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모든 것이 한 번에 뒤바뀌지 않고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 변화를 하나로 묶어서 생각한 것은 사건이 벌어진 이후 3주 가까이 지나고나서였다. 앞에서 적었듯이 처음엔 배변 실수부터 시작했다. 밤잠에 실수 하는 일이 낮 시간 실수로 이어지더니 외출 때에도 실수할 정도로 심해졌다. 아이는 원래 매우 정서적 발달이 빠른 편이고 주변 상황에 민감한 성향이라 배변 교육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사건 전까지 한 번도 밖에서 배변 실수를 한 적이 없다. 배변 실수가 잦아지다가 이틀 연속 외출 때에도 배변 실수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 둘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심리상담을 다시 요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두 번째는 엄마 집착이 심해지고 아빠 거부가 시작된 것이었다. 원래도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에는 주로 나를 찾았다. 작년에 내가 복직하면서부터는 남편이 온전히 등원을 해주고 어린이집 행사에서도 남편이 주양육자로 참여했기에 남편과도 충분히 잘 지내는 아이였는데 이제는 나와 남편이 같이 있으면 무조건 나만 찾았다. 처음에는 식사와 잠자리를 나와 같이 해달라고 요구했다. 특히 잠자리는 원래 안방에서 다같이 잤지만 침대는 혼자 썼는데 내가 아이의 침대에서 같이 자달라고 했다. 잠에서 몇번씩 깨서 나를 찾고 집에서도 내가 안 보이면 울면서 찾기 시작했다. 놀이도 나와만 해야 했고 남편이 등장하면 소리를 지르거나 침을 뱉기도 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남편은 가해자가 아니다.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는 일도 위협을 하는 일도 없고 오히려 따뜻한 성향의 사람이다. 이 행동을 그 사건과 연결지어 생각하지 못할 때에는 나는 가중되는 육아부담, 남편은 아이가 본인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무척 예민해지게 되었다.
세 번째는 아기 때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아기 때는 어땠어?"라며 그 때의 기억을 회상하고 놀이처럼 하는 듯 했지만 점점 정도가 심해졌다. 말을 하지 않고 울음이나 떼로 의사표현을 하거나 아기처럼 해달라고 요구하거나 내 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아 했다. 세돌 전에 사라졌던 손빨기도 다시 시작했다. 처음에는 잘 때만 손을 빨다가 이제는 어느 때든 손을 빠는 모습이 보였다.
이 세 가지를 인식하고 나서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부부 간의 대화, 아이에게 더욱 사랑을 주는 것, 전문가를 찾는 일이었다. 우리는 틈틈히 시간을 내어 서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 대화를 나눴다. 아이에게는 우리가 계속 아이를 사랑하고 우리 가족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 사이라는 걸 언어로 마음으로 행동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연휴가 지난 오늘 다시 해당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심리상담을 연결해줄 것을 요청했다. 어린이집에도 아이의 상태에 대해 간략하더라도 공유하고 가능한대로 가족간의 시간을 더 늘려볼 생각이다. 부디 이 시기가 아이에게 너무 힘들지만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