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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Sep 24. 2019

혼인 신고 왜 했지?

같이 산지는 거의 1년이 넘은 것 같다. 지난달에 혼인 신고를 했다. 결혼식 준비는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 법적으론 부부인데 아직 지인들에게는 '예비부부'라고 불리는 그런 사이. 그래서 나는 그냥 나 편할 대로 남편이라고 불렀다가 애인이라고 불렀다가 동거인이라고 불렀다가 뒤죽박죽이다. 하지만 일단은 같이 살고 있고 가족관계 등록부에 배우자가 등록되었으니 그냥 남편으로 치자. 


동거를 하던 중이거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혼인 신고를 하고 나서는 '물러설 수 없구나.'란 생각을 종종 한다. 이렇게 서류로 얽히게 된 사이라니. 대박. 내가 유일하게 '선택해서 만나는 가족'을 이렇게 후루루룩 국수 먹듯 정해버려도 되는 걸까? 그리고 서류 한 장이면 우리가 가족 되는 거라니. 그냥 전입신고하듯이 이렇게 쉽게 지나가도 되는 거야?


이렇게 복작복작한 마음과는 별개로 아직 서류 한 장 때문에 뭔가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나진 않았다. 그냥 시청에서 덜렁 던져 준 '귀하께서 신고하신 가족관계 등록부 정리가 완료되었습니다.'란 문자뿐. 그 문자로 법적 남편이 되었지만 그냥 우리는 살던 대로 살고, 대한민국 공장식 결혼식 시스템에 정신도 몸뚱이도 쉴 새 없이 돌아가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사실 결혼식 공장 시스템에 몸을 던질 때도, 엄마한테 결혼식 날짜 정했으니까 그렇게 알라고 통보했을 때도, 내 생에 가장 큰 금액의 대출을 껴안고 집을 구하고 살림살이를 장만할 때도 들지 않았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남들은 몇 년 뒤로 미루거나 임신 전까지는 안 하기도 한다던 혼인신고까지 일찍 해놓고 나서야 드는 질문.

 나 이거 왜 했을까?


특히 이 질문이 거세진 건 얼마 전 있었던 추석 탓이 컸다. 추석이 다가올 무렵 남편이 "작년에는 서울 올라가서 추석 안 보내는 사람들이랑 하루 놀았지?"라고 묻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엔 이 지긋지긋한 명절의 가부장제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때 제사 안 지내고 브런치 먹는 모임이 있다는 소식에 바로 신청했고 그곳에 가서 즐겁게 시간도 보내고 그다음에 있던 설도 더욱 아무렇지 않게 안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남편과 원 플러스 원이 되면서 갈등이 시작된 거다. 작년의 브런치 모임에서 기혼 분들의 사례가 와르르 떠오르기 시작했고, 결국은 '내가 정말 잘한 선택이 맞아?'란 생각까지 들었다.


내 지인들이 "너는 결혼만 물어보면 싫은 티를 팍팍 내길래 안 할 줄 알았다. 왜 결혼하려고 해?"라고 물어보면 남편이랑 살면 재밌을 것 같아서 그랬다고 대답했다. 혼인신고 왜 그렇게 빨리 했냐고 하면, "그날 둘이 시간이 맞았어."라고 대답했다. 정리하자면 큰 생각 안 했단 소리다. 이사 가려고 집 알아보기 귀찮아서 몇 달을 차일피일 미루며 끙끙대기만 하는데 이 귀찮은 결혼은 마땅히 말할만한 근거도 대책도 없이 결정해버렸다니. 심지어 일 년에 한 번 가는 해외여행 갈 때도 일 년 전부터 월급이나 보너스 일부를 모아 모아 다녀오는 계획 인간인 내가 결혼 준비는 전세금 빼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보니 이게 사랑인가 싶기도 하고.


난 남편이랑 결혼하면 재밌을 줄 알았다. 아직 같이 오래 살아본 건 아니지만 지금도 남편이랑 사는 건 재밌다. 좁아터진 싱글 침대에 둘이 꼭 붙어서 잘 때도 재밌긴 했지만, 그게 한이 맺혀서 산 킹사이즈 침대에서 드넓게 팔다리 쭉쭉 뻗으며 사는 건 더 재밌다. 지긋지긋한 대출이자와 관리비 납부의 책임을 남편에게 떠넘긴 것도 재밌고, 부엌이 좁아 밥을 못해주겠다던 남편이 넓어진 부엌살림을 통째로 가져간 것도 재밌다. 그냥 우리가 마지막으로 돌아올 곳이 같은 집이란 것도 재밌고, 일상 속에 남편이 존재한단 것도 재밌다. 


그런데 이렇게 재밌는 게 있는 줄만 안건 아니지만 안 재밌는 것도 너무 많은 게 결혼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남편이랑 살면 사실 별로 안 재밌는 것도 그럭저럭 넘기며 살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안 맞는 거 천지다. 나와 남편이 부부가 된다는 이유로 간섭쟁이들도 배로 늘어났다. 나는 다 잘라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관계가 생기니 내 주변의 관계나, 또는 남편과 관련된 관계들이 요동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 쫌만 더 생각해볼까 하기엔 이미 혼인 신고해버렸고? 그래서 그렇게 어물쩡 살아간단 얘긴 또 아닌데, 사실 난 결혼이 이런 건 줄 몰랐지.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한참 몰랐지.


그래서 브런치에 다시 돌아왔다. 속 터질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마다 다시 주절주절 쏟아내 보려고. 예전만큼 긴 글 쓰는 게 자신이 없는 데다 결혼식 준비가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직장에서 일하랴, 결혼 준비하랴 매일 뭔가가 목 끝까지 올라오는 삶을 살고 있어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어딘가엔 나를 쏟아 놓을 공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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