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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도 Sep 27. 2019

남편, 우울증 여자랑 사는 건 어때?

내 우울증이 시작된 건 언제인지 잘 모르겠다. 처음 진단을 받은 건 고등학생 때였다. 정신과를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상담도 하고 이런저런 검사도 한 뒤 우울증이 뭐고 강박은 뭐고 그런 설명을 들었다.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상태였구나' 짐작했다. 몇 번을 다른 병원을 찾고 상담도 받았지만 꾸준히 다녀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만성적이고 무기력했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상담을 시작했다. 늘 그렇듯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엔 끝을 보겠단 마음으로 다녔다. 매주 금요일, 상담이 끝나는 날이면 트위터에 상담 후기를 적었다. 그러곤 허기진 배를 안고 그땐 애인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폭식을 하고, 어떤 날은 먹다가 울었고 어떤 날은 먹고 나서 울었다. 그럴 때면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눈치를 보곤 했다. '내 얘기 들으면서 무슨 생각 해?' '이거 우울이고 강박이래. 이런 거 겪어본 적 없으면서 이해할 수 있겠어?' '너는 이런 내 옆에 있는 게 지겹지도 않아?' 그를 공격하는 말들이었지만, 결국 나를 찌르는 말들이었다. 나 혼자 상처 입고 결국 꺼내지도 못하는 말들이 입안에 맴돌았다.


상담은 올해 봄 정도에 종료되었다. 우울이 다 지나가서가 아니라, 우울을 다루는 방법을 배워서인 것 같다. 상담 선생님과 나는 긴 대화를 하고 힘들 땐 다시 보자며 인사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죽고 싶었던 마음은 어떨 때는 죽고 싶고, 어떨 때는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상담을 하며 나눴던 대화들을 가끔 트위터에 옮기기도 했다. 따뜻한 말이나 공감의 말을 받을 때면 조금 위로가 되곤 해서.


그중 한 달 전에 썼던 건 이런 글이었다. 상담하면서 놀란 게, 건강한 사람들은 평소 대부분의 기분이 평온한 상태란 이야기였다. 인간은 원래 평소에 기분이 다운되어 있고, 의욕 없고, 좀 죽고 싶을 때가 많지만 힘내서 살려고 노력하는 거 아니었나? 그래서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다들 놀랐다. 내가 그런 생각 하는 줄 몰랐다고. 내 이야기였다. 그날도 죽고 싶단 생각을 하다가 내 생각을 조금 다듬어보려고 그런 말을 썼던 거였다. 생각보다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놀랐다.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 건강한 것 같은데, 나만 이렇게 우울과 살아가는 게 아니었구나.




내 입장에서 우울과 살지 않는, 마음이 건강한 사람과 사는 건 도움이 됐다. 내가 우울의 늪에 빠져 있을 때 나의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 함께한단 건 긍정적인 기분이었다. 온몸이 바닥 아래로 녹아들어 가는 기분일 때 밥을 먹자, 산책하자, 밀크티 먹으러 가자고 하면 실행하진 않더라도 어딘가 전환되는 기분이 들곤 했으니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오늘이 그냥 끝나버렸으면' 하다가 내 곁에 느껴지는 숨소리나 따뜻한 온기를 느끼다 보면 진정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일주일 중 일주일 모두 죽고 싶은 날에서 일주일 중 3, 4일 정도만 죽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나는 실재하는 공포와 조금 거리를 두게 된 게 있다. 오랫동안 가정폭력의 영향과 그 감각 아래에서 살며 느꼈던 가족에 대한 공포에서 멀어진 것, 혼자 사는 여자로서 살았던 공포에서 멀어진 것. 이런 감각을 느꼈을 때는 사실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세계를 단지 남편이 있단 사실로 어느 정도 안전해지는 기분은 좀 더럽기도 하고.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거였는데.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 생각했는데 결국 나도 그런 엄마의 뒤를 밟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집에 남편이 함께 살고 있다는 걸 주변에서 인지하고 있단 자체가 내게 가해지는 위협이 덜하단 건 그저 나만의 느낌이 아니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를 남편에게 한다면, 그는 어떤 얼굴을 할까. 아니 사실은 멀찍이 둘러둘러 한 이야기를 던졌을 때, 너는 이미 눈치챈 게 아닐까. 아니면 그때 그가 “차근차근 하나씩 해가면 되지.”라고 말한 건 내가 나에 대한 정보를 너무 조금 준 게 아닐까. 남편의 머릿속에 갔다 오는 게 아닌 이상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나는 불쑥불쑥 상상으로 묻고 내 멋대로 결론 내리곤 한다. 너 우울증 여자랑 살만하니? 음, 살만하니 살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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