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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수 Oct 05. 2021

분노의 질주를 할 줄 알았지


 시리즈물 영화 중 마블을 제외하고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분노의 질주다. 차에 관심은 없지만 배우들의 시원시원한 운전과 액션을 보며 분노의 질주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언젠가 나도 저렇게 멋있게 운전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위험한 운전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고 멋있는 운전을 말한다.

 

 주변 또래들은 대부분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운전면허를 땄는데 나는 필요할 때 따는 게 맞다는 생각에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취업을 했다고 당장 차를 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회사차를 운전해 출장을 나갈 수도 있다고 해서 지금이 면허를 딸 때라고 생각했다. 걱정이 컸지만 필기시험과 장내 기능 시험은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하지만 도로주행 시험은 두 번을 쳐 겨우 합격할 수 있었다. 첫 시험 때 출발한 지 5분도 안돼서 실격 처리를 당해 너무 허무했다. 연습을 할 때 강사가 신호등이 초록불이어도 사람이 건너지 않으면 지나가도 된다고 해서 당연히 그렇게 해도 되는 건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안 되는 걸 된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 같지만 그때는 강사가 알려준 대로 한 건데 실격 처리가 되니 너무 억울했었다. 그렇게 한 고비를 넘겨 운전면허증을 드디어 손에 쥘 수 있었다. 이 기세를 몰아 바로 운전 연수도 등록했다. 엄마, 아빠, 동생 전부 운전을 할 수 있기에 가족들에게 운전 연수를 받아도 되지만, ‘가족한테 운전 배우지 마’라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외부 업체를 통해 운전 연수를 받았다.


 도로 주행에 한 번 떨어지면서 운전하는 것에 살짝 겁을 먹었지만 분노의 질주 속 멋있는 운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분노의 질주를 상상하며 운전을 해서 그런지 겁 없이 운전하는 모습에 도로 연수 강사가 너무 겁 없이 운전하는 거 아니냐며 진정하라고 말릴 정도였다. 다섯 차례의 수업을 끝으로 운전 연수도 끝이 났다. 내 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에서도 운전이 당장 필요한 상황은 아니라 주말에 가족들과 어디를 갈 때면 종종 운전을 했다.


 그렇게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운전대를 놓는 일이 생겼다. 하루는 동생과 함께 외할머니댁에 가기로 했다. 평소 운전하던 아빠 차인 소나타가 아닌 조금 더 차 폭이 넓은 그랜저를 몰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차에 가야 하는 길도 어려운 코스였다. 우리 집에서 외할머니 집으로 가는 빠른 길은 산복도로 길인데, 이 산복도로가 산동네를 연결하는 길이라 경사가 심하고 폭이 좁은 편이다. 거기다 갓길에 주차하는 차량들이 많아 더 폭이 좁은 편이다. 소나타와 그랜저의 폭 차이가 크게 없다고 하지만 운전 초보인 나에게는 그랜저의 폭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공간 감각이 무뎌져 버린 상태에서 산복도로에 진입하니 패닉이 왔다.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큰 차를 보고 순간적으로 반대편에서 차가 오는지 보지도 않고 방향을 확 틀어 반대편 차와 부딪힐 뻔했다. 예의 주시하고 있던 동생이 핸들을 꺾어줘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너무 겁을 먹은 나는 이 날 이후로 운전을 하지 않았다. 첫 차는 SUV를 살 거라고 장담했는데 이제는 경차가 당연하다며 급하게 노선을 변경했고, 분노의 질주를 꿈꾸던 나는 운전 겁쟁이가 되었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운전대 한 번 잡지 않고 1년이 흘렀다. 1년 후 근무하는 곳이 집과 거리가 멀어 평일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지내고 주말에는 집에서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운전을 못하다 보니 항상 동생이 태워주는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동생이 데리러 올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이고 운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금요일 퇴근과 일요일 저녁 회사로 돌아갈 때만이라도 운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다시 운전대를 잡은 날 어떻게 운전을 한 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긴장을 하고 운전을 했었던 건지 다음날 약 2시간의 운전 후유증으로 온몸에 근육통이 와 앓아누웠다. 그 뒤로 매주 엄격한 호랑이 선생인 동생의 가르침과 함께 운전 연습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동생의 엄격함에 운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점점 부담감으로 다가왔고 운전을 할 때면 한없이 작아졌다. 어떻게든 운전을 피하고 싶어 꼼수를 쓰려고 했지만 쓸 꼼수가 없어 운전을 잘하기 위한 과정인가 보다 하고 참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 심해지는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회사에 가는 일이 적어졌다. 주말에도 코로나로 어디 놀러 가지도 않으니 운전대를 잡을 이유가 없어졌다.


 오랜만에 회사로 돌아가는 길, 오랜만에 운전할 내가 걱정되었던 아빠는 본인이 운전을 하겠다며 운전대를 내주지 않았다. 가는 길에 아빠가 말했다. 이렇게 듬성듬성 운전한다고 실력이 늘지 않는다며 그냥 네 차가 생기면 그때 꾸준히 운전하라고 하셨다. 나는 내 차가 있어도 운전이 무서우면 차를 고이 모셔만 둘 것 같아 차를 먼저 사라는 주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었는데 겪어보니 차 먼저 사야 된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그런데 부족한 운전 실력에 차 사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과 차 유지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조그마한 내 월급을 보니 당장은 못 사겠고, 정말 당장 차와 운전이 필요한 때가 오면 그때 다시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디 그날이 빠른 시일 내에 오지는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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