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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수 Oct 05. 2021

가제: 너희들이 있는 곳


 가끔 계획 없이 이유도 없이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산복도로 북살롱’에서 진행했던 독립 출판하기 수업이 내게는 그런 일이었다. 책을 평소 가까이하고 읽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글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다. 더더욱 책을 만든다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수업을 들었던 건 개인도 충분히 출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얇은 책을 한 권 만들더라도 책의 내용이 될 소재가 있어야 하는데 소재가 전혀 없었기에 신청을 해도 될지 고민이 됐다. 수강료도 내 기준에서는 꽤 비쌌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 고민은 수업 전 날 저녁까지 계속되었고 밤늦게 수업 신청을 완료했다. 결국은 그냥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이긴 것이다. 소재가 없어도 수강료가 꽤 비싸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지금 당장 소재가 없더라도 나중에 소재가 생기면 혼자 만들 수 있으니 수강료는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 같다면 자연스레 자기 합리화를 했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서 꽤 긴 계단을 등반하면 어두운 골목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불을 켜놓은 작은 서점 하나가 보인다. 서점의 첫인상과 같이 수업 내내 서로의 첫 책을 응원하며 새로운 세계들을 마주했다.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흔히 보는 책의 내지 형태를 갖출 수 있었고, 표지를 각자의 손그림으로 만들 수도 있었고, 책이 어떻게 유통되는지도 간단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글쓰기는 나와의 온전한 싸움이었다.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려주는 수업은 아니니 글을 쓰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는데 그 과정이 참 힘들었다. 평소 글 쓰는 게 취미도 아니었고 일기조차도 잘 쓰지 않는 편이라 내 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확신이 없는데 책을 낸다고 한들 내 책을 읽어줄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칭찬은 둘째치고 비난을 받을 것이 두려웠다. 글 쓰는 과정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겪는 부분이라고 했다. 하지만 난 이 언덕을 넘지 못하고 언덕 아래에서 쉬는 것을 택했다. 손으로 직접 만든 내 책의 가제본을 만났을 때는 얼른 다시 글을 써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 마구 솟아올라 다시 언덕을 오를 준비를 하기도 했지만 겉은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책이 될 거 같아 결국 다시 언덕 아래에 주저앉았다. 이번 수업은 언젠가 내 책을 만들기 위한 발판으로 삼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그 발판이 되어 지금 다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단 생각이 든다. 지금도 여전히 내 글에 확신이 적고 비난을 받는 게 두렵다. 반대로 이전과는 달리 누군가는 내 글을 읽어줄 거라는 생각을 조금 더 크게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이제는 언덕을 올라갈 용기가 생겼고 남들보다 조금 늦을지는 몰라도 부지런히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곧 그 언덕의 꼭대기에 올라 여러분들이 이 글을 보고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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