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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수 Oct 04. 2021

작은 전시회


 약 3년간의 취업 준비를 끝으로 사회생활에 첫 발을 내딛기 전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긴 취업 준비 동안 취업이 되고 나면 이런 취미 생활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갈 거야라는 생각들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노트 한편에 그 생각들을 적어뒀다. 그중 하나가 그림 그리기였다. 어릴 때부터 미술 쪽으로 진로를 정할 생각도 했을 만큼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자주 하는 취미는 아니더라도 혼자서 그림 그리는 게 취미였다. 한 번쯤은 스케치북이 아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지금 캔버스에 그림 그리는 걸 배워야겠다 싶었다.


 흔히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유화를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성격상 결과물이 빨리 나오는 걸 선호하다 보니 마르는 시간도 필요하고 덧칠도 어려운 유화는 나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크릴은 유화와 정반대였다. 마르는 시간도 빠른 편이고 덧칠이 가능해 수정하기도 쉬운 편이었다. 붓이 아닌 나이프로 그린다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 선택한 것이 나이프 아크릴이었다. 


 붓과는 달리 딱딱한 나이프 때문에 내가 생각한 곳과 다른 곳에 색이 칠해져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면 마음이 불안해지고 조급해져 어쩔 줄을 몰라하는 편이다. 그런데 나이프 아크릴화를 그리며 생각한 것과 다를 때를 많이 접했는데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못했지만 점점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이 작아졌다. 오히려 생각과 다른 곳에 칠해진 모습이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틀리면 고칠 수 있다는 아크릴의 장점 때문인지 몰라도 내게 틀려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한 달 과정이었던 수업은 큰 사이즈의 해바라기를 완성하느라 두 달 동안 진행되었다. 이렇게 나를 알아가며 두 달간 크고 작은 캔버스로 총 4개의 작품을 완성했다.


 수업이 끝났을 때는 11월 말이었다.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지 이야기가 오갈 때이다. 화실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던 중 화실 소속 작가님들과 작은 전시회를 열려고 하는데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따뜻한 제안을 해주셨다. 내가 전시회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덥석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화실 사람들과 함께 서로의 그림을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한 해를 잘 마무리했다.


 사실 막연한 내 꿈 중 하나는 내 그림으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 등하교를 함께 하던 친구와 언젠가는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친구는 언젠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했고,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라도 화가로서 개인전을 한 번은 열고 싶다고 했었다. 개인전도 아니고 화실 사람들끼리만 함께하는 작은 전시회였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내 막연한 꿈의 일부를 경험해본 것 같아 행복했다. 그렇게 그 해는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으로 따뜻하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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