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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수 Oct 18. 2021

새아나로그


“나도 유튜브 해볼까?” 


 나도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유튜브 영상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VLOG 보는 걸 즐겨한다. VIDEO와 BLOG의 합성어로 매일 자신의 하루를 기록하는 영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주로 보는 VLOG 유튜버들은 얼굴이 나오지 않고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막으로만 자신을 드러내며 자신의 일주일을 기록한다. 처음에 유튜브 하면 당연히 얼굴이 나와야 하고 목소리도 당연히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유튜브는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주로 보는 VLOG스타일의 유튜버들이 점점 늘어나고 나도 그런 유튜버들의 구독 수가 점점 늘다 보니 얼굴도 나오지 않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도 된다면 나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해보는 유튜브라 정말 그냥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다.


 시작은 어렵지 않았다. 당시 자기 계발로 나름 알찬 하루하루를 보낼 때라 그런 내 모습을 담으면 됐기에 콘텐츠는 이 정도면 됐다. 그리고 장비도 내 휴대폰 하나면 됐고 그나마 돈을 썼다고 하면 큰 삼각대와 영상 편집 어플 1년 구독비였다. 유튜브를 하기로 생각하는 것은 쉬웠지만 몸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영상을 찍어야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아 깜빡하고 영상으로 기록해두지 않는 것이 빈번했다. 그리고 자연스러움을 담아야 하는데 영상에 나의 행동이 찍힌다는 자체가 부자연스러워 평소 하던 행동들도 부자연스럽게 담겼다. 책을 넘기는데 한 장 한 장 조심스럽게 넘겼고, 누워서 책 읽기를 좋아하지만 왠지 책은 책상에서만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워낙 집순이라 두 번째 영상을 올릴 때까지는 회사를 제외하고는 밖에서 약속이 따로 없었다. 그래서 그때까지만 해도 밖에서 촬영한다는 것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약속이 있어 거의 하루 종일 밖에 있는 날이 생기면서 밖에서 영상 찍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상을 찍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이 쓰였고, 내가 이 장소를 영상에 담아도 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고 설령 영상에 담아도 된다고 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도둑 촬영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냥 내가 촬영하는 행위 자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밖에서 촬영은 거의 하지 않고 어딜 갔다 왔다는 자막으로 밖에 있었음을 대체했다. 또 그렇게 하다 보니 집에서 똑같은 모습만을 촬영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고민이 생겼다. 적어도 나만해도 브이로그를 통해 유튜버가 다녀온 장소가 좋아 따라 가보기도 하고 유튜버의 새로운 취미가 재밌어 보여 따라 해보기도 하는데 새로울 것 하나 없는 내 일상 영상을 좋아해 줄 사람이 있고 영상이 가치가 있는 걸까라는 의문에 빠졌다. 내 롤모델 유튜버인 한빈님이 자신의 영상도 거의 똑같지만 오히려 똑같다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껴 좋아하는 구독자들도 있고 비슷해 보여도 잘 들여다보면 다 다른 영상이라며 계속해봤으면 하는 조언을 줬다. 그 조언에 큰 힘을 얻었지만 영상은 5개에서 그치고 말았다. 똑같은 영상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도 계속 있었고 마침 업무가 바뀌면서 매일매일을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보냈기에 다른 걸 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그만뒀다. 

 

 내 일주일을 담아 하나의 영상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있었다. 영상 편집이라는 걸 배운 적이 없기에 아예 못할 줄 알았는데 쉬운 어플 덕분에 영상 편집도 해보고 내가 보낸 일주일이지만 내가 이렇게 일주일을 보냈구나 하고 영상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영상에 담기고 책은 책상에서만 읽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틀을 만들어 나를 제약시키고 밖에서 촬영은 도둑촬영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유튜브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나를 만들고 있는 행위로 느껴졌다.


 영상 편집과 영상을 올리는 것에서 오는 재미가 커서 요즘도 가끔 유튜브를 다시 할까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그 부자연스러움을 꾹 참아내기가 힘들다. 정말 집에서만 촬영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거나 내가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고 밖에서 촬영하는 것에 용기가 생길 때 다시 해 보고 싶다. 그러니 그날이 올 때까지 좋아하는 유튜버들이 만든 소중한 영상들을 보며 그 용기를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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