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아파트

by 전상수

누구나 한 번쯤은 도시의 번잡한 삶에 싫증이 날 즈음 전원 생활에 대한 낭만에 젖어들 때가 있다. 푸른 숲에 둘러싸여 지저귀는 새 소리를 들으며 아침잠에서 깨면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모습에 삶의 활기를 느낀다는 전원 주택에서의 삶을 꿈꾸며 여기저기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청도 각북면의 헐티재 중턱에 전원 주택 단지가 있다고 해서 가보니 참으로 명당 자리 같았다. 비슬산 자락이 눈앞에 길게 펼쳐지니 절로 가슴이 웅장해질 정도였지만 선뜻 도시의 아파트를 버리고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파트 생활에서도 전원의 삶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식물 가꾸기와 물고기 키우기로 힐링하면서 나름대로 전원 아파트 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비록 숲 속의 자연친화적인 삶에 비하면 여전히 도회지의 답답한 아파트지만 식멍과 물멍의 매력에 빠져 지내다 보니 전원 주택에 대한 막연한 미련이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금호강을 앞에 끼고 그 사이에 7만 평 규모의 체육 공원을 앞마당처럼 두고 있는 우리 아파트는 주변에서는 물론이고 여타 도회지에서는 보기 드문 친환경 아파트이다. 아파트와 인접해 있는 체육 공원 안에는 박주영 축구장을 비롯하여 둘레 팔백 미터의 맨발 산책길을 끼고 있는 광활한 잔디 광장과 열 면의 테니스 코트, 물고기들이 노니는 연못 생태 산책길, 분수 광장, 갈대밭 등이 있어 그야말로 산책과 힐링의 명소로 손색이 없다.


십여 년 전 처음 입주할 무렵에 심긴 나지막한 나무들이 이제는 상당한 숲을 이룰 정도로 우거졌고 온갖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거실에까지 들릴 정도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파트 내에는 아스콘 포장 도로가 없고 아파트 내 도로는 모두 블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인도는 모두 구운 벽돌로 되어 있어 차별을 보인다. 무엇보다 아파트 조경 대상을 받을 정도로 잘 조성된 조경 규모는 인근의 역세권 아파트와 비교하면 거의 열 배 이상이나 수종도 많고 잘 가꾸어져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오자 남는 건 시간이라 낮 시간에는 주로 식멍과 물멍으로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예전에도 늘 실내에 화분 몇 개는 키우고 있었지만 백수가 되다 보니 주섬주섬 모은 화분이 거의 쉰 개가 된다. 베란다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화초들을 보는 식물 멍 때리기가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주로 퇴임하면서 가져온 화분이 좀 있고 그 외에도 멜라닌 고무나무와 몬스테라, 안스리움, 산세베리아, 호접란, 보석금전수, 돈나무, 스투키, 선인장 등의 공기 정화 식물이 많으며 일부 다육 식물과 풍란도 몇 개 있으니 제법 어우러진다.


특히 커피나무는 빨간 열매가 제법 열리고 제주에서 가져다 키우는 귤나무는 한 해 열매를 맺어 귤을 따 먹기도 했는데 요즘은 통 열매를 맺지 않아 그냥 관상목으로 키우고 있다. 덩굴식물인 호야와 트리안 외에도 벤야민과 올리브나무, 동백나무, 장미허브, 게발선인장, 마다가스카르재스민, 유칼립투스 등이 저마다 화분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작은 식물원이라 해도 될 정도이다. 화초마다 습성이 달라 주기적으로 물주는 일과 가끔 분갈이도 하며 식물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지루함을 없애는 명약임에는 틀림이 없다.


퇴임 전에 구피 두 마리를 얻어 키우면서 물멍에도 입문했다. 암수 두 마리에서 시작하여 한때 서른 마리로 불어나 조금 큰 수족관을 장만하여 옮겨 놓았다. 그러다가 너무 드래건 구피 한 종류로만 키우는 것보다 색깔이 다른 구피들을 넣어보자는 생각에 이마트에서 레드, 옐로, 블랙, 네온 구피 암컷 각각 한 마리씩 네 마리를 사서 수족관에 집어넣은 게 엄청난 실책이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두 마리씩 용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새로 사 온 구피를 제외한 모든 구피들이 다 죽고 말았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어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결국은 이마트 어항에 있던 물이 화근이었다. 곱게 자란 드래건 구피들이 새 구피들과 함께 딸려 온 물속 기생충에 아주 취약했던 것이다. 측면 여과기와 기포 발생기를 작동시켜 보아도 속수무책으로 예전 구피들을 다 보내고 나니 수족관이 너무 허전해서 다시 몇몇 종류의 구피들을 영입했다.


이번에는 새로 가져온 구피들은 따로 작은 어항에 담아 충분히 놀게 한 후 구피들만 건져서 큰 수족관에 넣었다. 풀블랙 구피와 퍼플블랙 구피 암수 다섯 마리를 넣어 총 여덟 마리가 넓은 수족관 속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니 안심이 된다. 최근에는 구피 외에도 레드 플래티와 네온 테트라까지 몇 마리 넣어 놓으니 제법 어울린다. 물멍에 입문하면서 무늬와 색깔, 꼬리 모양에 따라 구피의 종류가 수십 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에 놀라며 조그마한 열대어 몇 마리가 삶의 활력을 주는 또 다른 명약이 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자라는 수많은 식물과 물고기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아도 직접 가서 보거나 살피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비록 제한된 공간에서 자라는 화초들과 물고기들이 일견 측은하기도 하지만 요즘은 반려 식물이니 반려 동물이니 하는 말도 생기고 식물 보며 멍 때리기와 물고기를 관찰하며 멍 때리는 게 낯설지 않아 전원 아파트에서의 자연친화적 생활은 날로 윤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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