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삼락

by 전상수

맑고 푸른 하늘이 짙푸른 수풀과 어울리며 온몸을 덮어오는 요즘, 새파란 잔디를 밟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필드에서 멋진 포물선을 그리는 궤적을 바라보면, 어느덧 골프 삼락의 경지에 빠져든다. 함께 골프를 즐기는 동반자들의 도란거리는 소리들도 지저귀는 산새 소리에 묻혀 갈 즈음 나는 어느새 세속과는 다른 필드 속에서 잡념을 잊고 만다.


골프를 처음 접하게 된 때는 내 나이 쉰을 바라보던 때였다. 거의 30여 년 동안 즐기던 테니스가 조금은 시들해지던 차에 골프에 입문하여 첫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잡아보는 골프 클럽이 어색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별다른 재미도 느끼지 못해 레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 당시만 해도 주변에 골프 인구가 그리 많지 않았기에 호기심으로 한번 경험해 보는 것으로 이내 싫증이 나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다가 근무지 주변에 그물망을 쳐 놓은 골프 연습장을 발견하고 다시 골프의 문을 두드렸다. 내가 보기에도 제법 나이 드신 분이 레슨을 하고 있어서 두어 달 등록하고 클럽을 휘둘러 보았다. 충청도에서 오신 분인데 박세리 프로를 어릴 때부터 지도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해서 레슨을 받으며 골프와의 인연을 조금 이어갔다. 일 년 만에 발령이 나서 울진을 떠나는 바람에 골프는 다시 내 손을 떠나고 말았다.


차츰 붐이 일기 시작한 골프 산업이 스크린골프로 인해 대중화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근처에 있는 골프 연습장을 찾아 어쭙잖은 스윙이지만 골프채를 다시 잡고 휘두르기 시작했다. 골프라는 운동을 처음 접한 지 근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레슨도 받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물려받은 중고 클럽으로 짧은 거리의 인도어 연습장에서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스윙 동작을 익히다 보니 조금씩 골프에 대한 흥미도 되살아났다.


이렇게 다시 불을 붙인 골프가 최근 몇 년 간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전부가 된 양 나를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백수가 된 지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매주 한 번 정도는 잔디를 밟으며 푸른 창공을 향해 힘차게 샷을 날리는 한편, 한두 차례는 실내 스크린골프 연습장에서 지인들과 한 나절 골프 삼매경에 빠져 지내고 있다. 그러고도 남는 시간에는 혼자 골프 연습장을 찾아 열심히 스윙 동작을 익히느라 땀을 빼고 나면 한결 몸과 마음이 가뿐해진다.


골프란 참으로 묘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인류가 창조한 가장 멋진 스포츠라는 평가를 받는 모양이다. 골프의 세계에 빠져들수록 점점 골프 삼락의 경지를 터득하게 된다. 골프를 통해 얻는 세 가지 즐거움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자칭 골프 전도사가 되고 말았다. 물론 골프를 즐기며 열심히 걷고 스윙하고 또 걷다 보면 세 가지 즐거움 외에 덤으로 건강이 따라오니 이 어찌 즐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골프 삼락의 첫 번째 즐거움은 소통의 기쁨이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들이 떠나가고 홀로 남아 외로움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골프는 혼자 즐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물론 연습은 혼자 가능하지만 제대로 골프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명에서 네 명으로 이루어지는 팀을 구성해야 한다. 최근에는 함께 골프를 즐기는 모임들이 서너 개가 된다. 어떤 모임에는 제일 연장자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모임에서는 가장 나이가 적은 막내가 된다. 한 달에 한두 번 필드 경기를 하는 모임이다 보니 한 나절 자연을 벗 삼아 필드를 누비고, 마치면 함께 식사도 하며 수다를 떨다 보면 인생의 즐거움이 저절로 빚어진다.


두 번째 즐거움은 몰입과 집중에서 오는 무아의 기쁨이다. 그저 티 위에 올려놓은 공을 향해 무거운 골프채로 휘두르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무수한 변수와 조건에 따라 볼이 날아가는 방향은 천차만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휘둘러서는 골프의 참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온몸과 온 마음을 집중하여 근육 하나하나를 제대로 움직이며 적절한 궤도에 따라 스윙 동작이 이루어지도록 몰입하지 않고서는 골프의 재미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주변의 잡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람과 비탈길에도 굴하지 않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기에 골프에 집중하여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을 잊어버리는 무아의 경지에 빠져 무한한 기쁨을 맛보게 된다.


골프 삼락의 마지막 세 번째 즐거움은 끊임없는 목표 지향을 통한 도전의 기쁨이다. 탁구나 테니스 같은 스포츠를 오랫동안 취미로 즐긴 사람들은 일정 수준에 오르게 되면 그리 많은 연습을 따로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며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골프는 그리 만만한 스포츠가 아니다. 도달해야 할 수준이 거의 까마득하여 매일 연습을 하여도 새로운 목표와 레벨이 늘 앞을 가로막고 있다. 이제는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은 아마 골프를 접기 전에는 불가능하기에, 늘 도전하고 탐구하며 노력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무미건조한 일상적 삶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골프의 세계에서 맛보는 오묘한 기쁨으로 자칫 무미건조한 권태감에 빠질 인생 2막이 화려한 불꽃을 피우며 삶의 활력으로 채워진다. 이제 남은 여생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골프채를 들 힘과 잔디밭을 걸어 다닐 두 발이 성하다면 언제라도 필드를 누비며 지인들과 골프 삼락의 경지를 만끽하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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