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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와 편의, 그 사이 어딘가 7

신라와 가야의 제어구[肆]

by 새긴믈

판비와 같은 시기에 등장하는 환판비는 판비의 장식성을 어느 정도 가져가면서 판비에 비해 유연하다. 함유가 고리모양인 판에 고리를 가르지르는 금구가 부착된 것을 기본으로 이루어진 재갈이다. 환판비는 대개 철제품이며 제작이 간단하고 유동성이 좋아 실용적인 재갈로 이해되는 견해도 있는데, 그렇다고 판비를 비실용적인 재갈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서기 4세기 후엽에서 서기 5세기 초엽에 판비와 마찬가지로 북방 재갈의 영향을 받아 고령과 합천을 중심으로 유행한다.


고구려 선비 전연의 판비.png [그림 1] 북표북구 M8호묘 출토 재갈


[그림 1]은 요령성 북표北票북구北溝 M8호묘에서 출토한 재갈이다. 북표북구고분군은 조양의 북구베이퍄오시 북구베이거우촌에 위치해 있으며, 전연의 유적으로 상정된다. 출토 재갈은 두 점이 한 쌍인데 아래는 판비, 위는 환판비로 구성되어 있다. 환판비의 경우 고리부분은 유실되어 점선으로 표현되었지만, X자 혹은 十자 함유금구가 명확히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라와 가야에서 확인되는 환판비는 이 함유금구를 통해 분류와 편년을 할 수 있다. 기본적인 형태는 T자형·人자형·X자형이 있으며 금구가 직선인 것도 있고 곡선인 것도 있다. 그러므로 금구의 형태에 따라서는 총 여섯 가지로 분류가 가능하다.


환판비.png [그림 2] 가야 출토 환판비


[그림 2]는 가야 고분에서 출토한 환판비들이며,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시기적 선후관계가 나열된다. 비교적 늦은 시기의 재갈인 합천 옥전 M2호분 출토품과 고령 지산동 45호분 출토품은 위의 세 재갈과 비교했을 때 유환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유환의 유무를 통해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의 재갈과 늦은 시기의 재갈을 구분할 수 있다. 환유의 추가는 곧 유연성의 강화로 이어지므로 더 개발된 제품이라 할 수 있겠다.


환판비.png [그림 3] 환판비 착용 상상도


원환비는 현대인에게 가장 익숙한 재갈이며, 그만큼 현재 가장 널리 쓰인다. [그림 4]를 보면 알겠지만 원환비는 철봉을 구부려 만든 원형의 고리를 함유로 삼은 재갈이며, 이 고리에 함-인수-유환을 모두 연결한다. 직관적으로 보았을 때도 제작이 매우 간단한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거기다 함유가 말의 뺨에 미치는 압박이 가장 낮고, 함과 인수의 유동성이 좋다. 말에게 고통을 가하여 제어하는 부위는 함유가 아니라 함이기 때문에 함유의 압박을 줄이면서 동시에 재갈의 유연성을 높인 원환비는 구조나 기능면에 있어 가장 효율적인 재갈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재갈에서 가장 장식성이 강한 부위인 함유가 간소화되었기 때문에 장식성은 매우 떨어진다.


원환비.png [그림 4] 원환비 착용 상상도


유라시아 북부의 기마민족은 서기전부터 원환비를 제작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한권역에서는 주로 소가야와 백제지역을 중심으로 유행한다. 물론 신라에도 미추왕릉지구에서 출토한 바 있다. 그 출토 사례들을 따져보면 대체로 6세기 1/4분기와 2/4분기(기원후 501년경부터 550년경까지)에 짧게 유행한 것 같은데,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매우 실용적이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가장 유행하는 재갈로 자리 잡게된 것 같다. 출토 시점을 보았을 때 삼국시대 재갈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환비의 분류는 주로 유환의 유무라든지 함-인수-원환의 연결 방법 등에 따라 이루어진다.


[표 1] 원환비 연결 방법에 따른 분류안


[표 1]의 모식도에서 가장 큰 고리가 원환비의 함유이며, A2식 모식도의 중간 크기 고리가 유환이다. 함과 인수가 유환을 통해 연결되는 것이 A식, 유환이 없는 것이 B식이다. 세부 분류 요소는, 유환의 유무와 별개로 인수와 함유가 연결되지 않는 것이 1식, 연결되는 것이 2식이다. 이것들을 모두 적용하면 [표 2]와 같이 총 4개의 분류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 중 [그림 4]의 말이 착용한 재갈은 B2식이며, 사진 속 재갈은 A2식으로 생각된다.


[그림 5] 신라·가야·백제·일본의 원환비


[표 1]의 분류안에 따라 한반도 남부와 일본에서 출토된 원환비를 분류하면 위 [그림 8]과 같다. 기본적인 형태는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제작 방식이나 부속 형태의 차이에 따라 분류가 이루어지는 형식학적 정리가 이해되는가? 이러한 분류를 통해 어느 단계에 정확히 어떤 형태의 물건이 제작 및 사용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를 ‘편년’이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원환비는 그 이용 시점이 모두 중복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형식학적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편년연구의 사례로 들 수는 없을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표 2]를 보면서 소개하겠다.


[표 2] 원환비 출토 유구의 연대와 동반 마구


워낙 짧게 이용되기도 했고 확실히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사례가 나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편년이 확 구분되지는 않는다. 굳이 정리하자면, 6세기 1/4분기에는 A1식과 B1식이 사용되다가 2/4분기로 들어오면서 A1식은 보이지 않고 새로 2식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유환의 유무에는 그다지 시기성이 반영되지 않는 것 같고, 굳이 시기성을 부여하자면 함-함유-인수의 연결 방식 정도? 그런데 정말 2/4분기에 들어서면서 A1식이 사라지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례가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상으로 길고 길었던 재갈편을 모두 마치도록 하겠다. 마구 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장구이지만 주로 고삐만 눈에 띌 뿐, 실질적으로 중요한 함이나 함유는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제는 마장을 볼 때 말의 아가리부터 먼저 보게 될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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