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지방의 토기양식
고산리양식토기는 제주 고산리유적에서 처음 발견된 토기 조합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출현한 양식이다. 동북아시아 고古토기의 일종으로 한국 신석기시대 초창기를 대표하지만, 제주도에만 국한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아무르강유역과 연해주에서 발견되는 고토기와 유사하여 그것으로부터 계통을 찾기도 한다. 확인된 토기의 형태는 대체로 평저무문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발형토기가 많다. 섬유질혼입토기와 원시무문양토기를 비롯하여 융기문·압형문·자돌문·압날문이 시문되는 토기들도 있다. 태토에는 현무암 등의 굵은 입자가 다량 섞여있으며, 섬유질을 비짐으로 삼아야 할만큼 경도가 약하다. 고산리양식토기는 문양에 따라 크게 5가지의 Type으로 나뉘는데, 이 중 Ⅰ형식과 Ⅱ형식은 세부 종류에 따라 두 가지의 아형식으로 나뉜다.
Ⅰ형식은 무문으로 식물성 섬유질이 혼입된 ⅠA형식과 혼입되지 않은 ⅠB형식으로 구분된다. Ⅱ형식은 문양이 돌출된 융기문으로 평행융기선문인 ⅡA형식과 융기태선문인 ⅡB형식으로 구분된다. Ⅲ형식은 압형문인데, 여러 모양의 돌기를 조각한 원통형 시문구를 토기면에 누른 뒤 굴려 배열된 문양을 장식한 것이다. Ⅴ형식은 토기 전면에 지之자문, 즉 지그재그 무늬를 시문하였다. 날카로운 시문구로 연속해서 눌러 찍었으므로 크게 보면 압날문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문양의 형태가 통일성을 띠고 나오는 시기가 한정되므로 독립적인 형식을 특정할 수 있는 속성으로 인정되었다. 또한 지자문토기문화는 중국 동북지구의 대표적인 신석기시대 토기문화이며, 이 형식과 유사한 토기는 요하유역을 비롯하여 아무르강유역과 두만강유역에서도 확인되어 연관지을 수 있다.
동삼동양식은 융기문토기를 지표로 하는 신석기시대 조기의 토기양식이다. 초창기의 고산리양식에 뒤이어 북부지방과 함께 처음으로 한반도 내에서 확인되는 토기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 동삼동유적을 비롯하여 남해안, 특히 동남해안지방에서 융성하였다. 일본 조몬토기 중 도도로키轟 B식 혹은 아무르강 중류 유역의 융기문토기에서 계통을 찾는 견해가 제기되었으나, 모두 기형이나 시문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요즘은 자체발생설이 제기되기도 한다. 융기문의 종류는 점토띠에 각목을 새긴 융기대문과 새기지 않은 융기선문, 토기의 기면을 손으로 꼬집어 기면을 융기시킨 유사융기문, 콩알 정도 크기의 점토 덩어리를 붙인 융기점열문 혹은 두립문 등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융기문을 비롯하여 이외의 문양인 압날문이나 침선문계 문양소들이 복합적으로 조합되어 토기를 장식한다.
영선동양식은 신석기시대 전기 남부지방의 대표적인 토기양식이며, 압날문토기를 지표로 한다. 부산 영선동유적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동삼동양식에서 영선동양식으로 전이하는 과정에서 융기문을 가진 압날문토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점진적으로 트렌드가 변한 것이라 볼 수도 있으나, 일각에서는 동북부지방의 자돌문계로부터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 견해는 미싱링크가 존재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시문은 끝이 뾰족하거나 둥근 시문구로 기벽을 눌러 찍는 방식이며, 문양 형태는 자돌문·압날문·조압문·세침선문·세단사선문·구순각목문 등이 있다. 자돌문이나 압날문 등 점의 형태를 가진 문양은 열을 지은 점열문 조합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세침선문이나 세단사선문 등 선의 형태를 가진 문양은 횡주어골문·사선문·삼각집선문·격자문 등의 조합으로 나타낼 수 있다.
수가리양식은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 남부지방의 토기문화를 대표하는 양식으로, 김해 수가리유적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크게 세 단계로 나뉘어 각각 중기-후기-말기를 대표한다. 표준적인 즐문토기의 문양조합을 보여주며 기종은 발이 주가 되고 이외 완이나 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기는 대부분 첨저를 이루어 심발의 경우 포탄형토기로 불리기도 한다. 시문은 토기 전면에 이루어지며 뾰족한 시문구로 긋거나 압날하는 방식이다. 삼각집선문·구획집선문·평행집선문·방형집선문·능형집선문 등의 문양 형태가 주를 이루며, 한 종류의 문양소가 단독으로 시문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문양소가 복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Ⅰ기는 태선침선문을 주류로 한 규칙적인 문양의 즐문토기가 대표적인데, Ⅱ기로 가면 퇴화침선문이라 하여 규칙적인 문양 배열이 상당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Ⅲ기의 침선문은 거의 흔적기관처럼 남게되고 이중구연토기라는 새로운 형식의 토기를 지표로 한다. 이중구연토기는 구연부를 보강하거나 장식할 목적으로 점토띠를 덧붙여 구연단을 이중으로 만든 토기이다. 기종은 원저 혹은 첨저를 갖춘 발이 주를 이룬다. 남부지방 즐문토기 계통 중에서 가장 늦은 형식에 속하며, 부산 금곡동의 율리패총 출토품이 전형적인 형상을 띠고 있어 율리양식이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까지 출토사례가 증가하여 밀양 살내·창녕 비봉리·경주 황성동유적과 같은 영선동양식 토기 단계(서기전 4,000년경)이나, 부산 동삼동패총 2호 주거지(서기전 3,000년경)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다만 이것이 하나의 고정적인 형식으로 대두하는 것은 서기전 2,000년경인 신석기시대 말기부터이다. 이중구연을 갖춘 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 가락동양식의 지표유물이기도 하지만, 가락동양식과 수가리양식의 이중구연토기가 하나의 계통을 가진다고 보기는 형태적으로나 시기적으로 긍정하기 어렵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韓國考古學專門事典: 新石器時代篇』.
이청규, 1995, 『濟州島 考古學 硏究』, 학연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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