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 토기양식
1. 중서부지방
중서부지방의 토기들은 크게 궁산양식으로 묶을 수 있다. 물론 내부 지역 간에 문양 등에서 차이를 보이고, 전통적으로는 그 차이를 지역성으로 보아 각각 개별적인 양식으로 묶였지만, 이것은 세부적인 속성 차이일 뿐이며 모두를 관통하는 상사성이 인정된다. 최초 궁산양식 1·2기에 후행하는 세부 양식은 남경양식·금탄리양식·암사동양식 등이 있는데, 크게 대동강유역과 한강유역을 중심 공간으로 한다. 가장 이른 궁산양식 1·2기는 대동강유역의 금탄리유형과 한강유역의 암사동유형이 등장하기 이전이다. 두 단계로 세분되기 때문에 궁산양식 4기까지 편재가 되는 것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남경양식 역시 두 단계로 세분되는데, 이는 금탄리양식 2기를 양분하는 지표가 되어 궁산양식은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는 견해와 네 단계로 나눈 후 마지막 4기를 2개의 소단계로 나누는 견해가 있다. 기종은 크게 발과 호로 구성된다.
1기 토기는 크게 3부위로 구분 시문한 것이 특징적이다. 구연부는 점열문이고 동체부는 종주어골문, 저부는 사선대문이나 횡주어골문이 시문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른 문양요소가 확인되기도 한다. 소형 발형토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원저 혹은 첨저형이다. 2기 토기는 시문 방식에 있어 1기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구연부와 동체부 사이에 중호문과 같은 부가적 문양이 시문되기 시작한다. 동체부의 종주어골문은 상하로 압축된 형태가 많아진다. 3기에는 궁산양식 원류에 비해 변화가 두드러지는데, 일단 3부위 구분시문이 사라지고 2~3종의 문양이 교대로 반복시문되는 양상이 주가 된다. 문양소의 기본은 다치횡선문이나 다치압날문에 그 내부 공간을 채우는 삼각집선문 조합이다. 호형토기에는 침선문으로 그린 타래문이 확인된다. 4기가 되면 저장용일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심발이 대두하며, 태토는 기존의 활석혼입계가 사라지고 사질 태토로 바뀐다.
2. 중동부지방
중서부지방의 토기양식은 오산리양식을 기저로 하여 이후 압날문이 침선문으로 변화하는 지경리양식으로 변화한다. 오산리양식은 융기문토기에 뒤이어 압날기법으로 시문한 토기들을 지표로 설정된 양식이다. 오산리유적을 지표로 했을 때 하층과 중층이 오산리양식에 포함되며, 뒤이어 죽변유적을 지표로 하는 죽변양식이 잇따르는데 이 역시 큰 범위에서 오산리양식에 포함된다. 기종은 옹이 주가 되며, 발·호·완 등도 확인된다. 옹 중에는 손잡이를 부착하거나 경부가 확인되는 것들도 있다. 문양은 무문양토기가 일반적이지만 유문양토기일 경우 구연부에 한정적으로 시문된다. 문양 형태는 압날문계와 채문계로 나뉜다. 전자는 평행점열문·단사선문·조爪문 등이 있으며, 후자는 Y자 혹은 W자 형태로 주칠문을 그린다. 태토는 석영이 많이 혼입된 점토이며, 화장토를 입혀 마연하는 경우도 확인된다.
중동부지방의 중기 이후 토기양식을 대표하는 지경리양식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기종은 평저의 발과 호, 그리고 첨저 심발로 구성된다. 첨저 심발은 중서부 궁산양식과 다르게 기고에 비해 구경이 넓은 편이다. 1기는 오산리양식을 잇는 단사선문계 토기가 중심을 이루는데, 시문 방식이 압날에서 침선으로 바뀌었다. 2기는 남부지방의 수가리양식 1기와 병행하면서 그것과 유사한 집선문의 비중이 커지며, 단도마연토기가 등장한다. 3기는 구분시문이 거의 사라지고 토기 전면에 동일한 문양이 시문되는데, 횡주어골문이 유행하고 그 외에 격자문이나 사선대문 등이 확인된다. 수가리양식 3기와 병행한다. 4기는 침선계 사선문과 단사선문이 유행하며, 남부지방의 수가리양식 3기와 병행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韓國考古學專門事典: 新石器時代篇』.
임상택, 2017,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양식의 성립과 변동」, 『고고학』 16-1, 중부고고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