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시대의 한정행위시설과 의례시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한 공간에 머문 흔적으로 조가비와 돌로 더미를 만들었다. 이 중 조가비더미는 그들이 어로활동으로 획득한 조개를 섭취한 후 그 조가비를 특정 공간에 모아 버린 것으로, 패총이 여러 문화층을 관통하여 존재한다는 것은 곧 그 지점에 인간 사회가 오래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돌더미는 특정 목적을 위해 단기간에 시설한 것인데, 정확히 어떤 용도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단기간 거주를 위해 시설한 노지나 야영지 등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유구들을 묶어 한정행위시설이라 명명할 수 있다.
패총은 규모와 매납물을 통해 인간의 거주 시기와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유구이다. 가령 조가비 외 다른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소규모 패총의 경우 일대에 인간집단의 거주가 한정적 행위를 위해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다양한 종류의 유존물이 발견되는 대규모 패총의 경우 인근에 인간집단의 생활근거지가 있었음을 추정해볼 수 있는 것이다. 패총은 서해안과 남해안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는데, 전자는 대개 서해안에서 많이 확인되며 후자는 거의 남해안의 경우이다. 대규모 패총에서는 패각층 내에서 육지 짐승과 어류 등 조가비가 아닌 동물 유체들도 다량 확인되며, 풍부한 유물과 함께 때로 주거지와 분묘, 야외노지 등의 유구들이 확인되기도 한다. 패각은 굴의 조가비가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외 꼬막·홍합·백합·전복·벚굴·바지락 등 다양한 조개들의 조가비도 존재한다. 소규모 패총에서는 거의 굴 조가비만이 확인되며, 발견되는 유물도 거의 없다. 인근에서는 간혹 야외노지나 건물지가 확인되는데, 일시적 야영을 위한 시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런 야영 시설의 흔적들은 대개 돌이 넓게 깔린 집석유구의 형태로 발견되는데, 이것은 물론 패총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지만, 대부분 도서나 해안에서 확인된다는 점은 유사하다. 대부분의 집석유구는 야외노지시설로 생각되는데, 둥글고 얕게 구덩이를 판 다음 그 위로 돌을 1~2벌 깔았다. 집석 아래에는 목탄이 확인되는 경우가 있어 어떤 용도였든 불을 담은 시설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야외노지시설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라면 토기 소성·조리·자비 등이 있을 것이다. 인천 용유도 남북동유적이나 진안 갈머리유적 등에서 집석유구에 남은 지방산을 분석한 결과 대개 어패류나 식물성 식료를 다루었음이 규명되었으며, 양양 오산리유적에서는 도토리와 갈돌·갈판 등이 출토되어 당대인의 식생활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집석유구 중에서는 화장시설로 생각되는 유구도 있는데, 진주 상촌리유적의 경우가 그러하다. 유적공간 내에서 화장한 인골을 담은 옹관묘나 화장한 인골편이 여럿 출토되었기 때문에 시설의 용도가 특정될 수 있었다. 이 중 3호와 6호 집석유구에는 타제 첨두기가 매납되어 있었는데, 모두 6점이 세트를 이루고 있었으며 출토 형태를 보았을 때 노끈 등으로 묶여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자들은 이를 유적공간 바깥의 특정 지역으로부터 교역을 통해 수입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6점이 해당 기물을 교역하는 데 기본 단위였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이 첨두기들은 어떠한 의례의 목적으로 매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외에 특별한 유구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출토 유물의 성격과 출토 위치가 범상치 않아 의례가 거행된 장소로 판단되는 유적도 있다. 사례로 부산 다대동의 봉화산유적과 용호동유적을 들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울진 후포리유적에서 출토한 것과 같은 대형의 편평편인석부를 비롯한 각종 석기들이 확인되었다. 울산 신암리유적에서도 이와 같은 양상이 확인되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이미 발굴되어 신석기시대 조기 유적으로 규정되었으나 2013년에 그 공간의 일부분이 재발굴되면서 마제석부와 각종 석기들이 확인되었다. 위 사례와 같은 형태는 아니지만 마제석부는 깨끗한 석영으로, 여타 석기들은 일본산 흑요석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역시 범상치 않은 유물로 판단되었다. 이 세 유적의 공통점은 바다가 바라다보이는 산지라는 점이다. 부산 봉화산유적과 용호동유적은 인간의 거주를 추정하기 어려운 가파른 산 정상이며, 울산 신암리유적은 바다를 향해 있는 해성단구 사면이다. 즉 이들 모두 어촌민 집단에 의해 의례가 거행된 곳으로 생각된다.
동서문물연구원, 2019, 『金海 農所里貝塚』.
동의대학교박물관, 2002, 『상촌리 유적』.
부경문물연구원, 2017, 『蔚州 新岩里 遺蹟』.
서경문화재연구원, 2016, 『인천 남북동 유적 Ⅱ』.
한국고고학회, 2015, 『한국고고학강의(개정신판), 사회평론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