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두 얼굴

by 이새하



얼마 전 유학 시절 같은 연구실이었던 친구가 출장차 한국을 방문해 대학로에서 만나게 됐다. 해질녘 낙산공원에 올라 서울의 야경도 보여주고(너구리도 만났다)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친구는 도쿄의 대학에서 다문화 학생들의 신체활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현재 일본의 가장 큰 교육적 현안인 부등교 학생(심리적·정서적·신체적·사회적 요인에 의해 연간 30일 이상 등교하지 못하는 학생)과 대안 교육에 관한 이야기로 주제가 흘러가게 되었다.


일본 전역에서 학습 공동체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프리스쿨(フリースクール, free school)은 이러한 부등교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과 관계 회복을 위한 민간 교육기관이다. 이곳에서는 교과가 아닌 생활과 경험이 중심이 되어 농사, 요리, 음악, 대화, 여행 등도 모두 ‘배움’으로 인정한다.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치유의 공간이기 때문에 수업이 강제되지 않고 학생 스스로 시간표나 하루 계획을 설계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공부를 다시 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어도 괜찮다’는 위안을 주는 것이다. 이전까지 프리스쿨은 정규학교가 아니어서 학력 인정이 제한적이었지만 지난 2016년 「교육기회확보법」 제정되어 부등교 학생의 다양한 학습권이 인정되며 교육의 한 형태로 점점 받아들여지는 중이다.


고대 그리스의 자유교육에 뿌리를 둔 오늘날의 교육은 본래 인간을 유용한 존재로 길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 사고하고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로 형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시대의 지배적 담론은 ‘효과적으로 측정되고 빅데이터로 관리되는 학습자 만들기’인 것처럼 보인다.

학교 교육에서 역량(competency), 문제해결력, 회복탄력성, 데이터 기반 평가, AI 맞춤형 교육과 같은 키워드가 각광받는 현상의 기저에는 불확실한 미래 사회에서 적응하고 생존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인재상을 바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체육을 포함해 우리가 가르치는 교과 지식들이 진정 학생들을 자유롭게 한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본래 자유에는 두 가지 다른 의미가 있다. ‘리버티(Liberty)’는 법과 제도 안에서 보장되는 공화주의적 자유, 즉 정치적·사회적 권리다. 동일한 한자어로 번역되지만 ‘프리덤(Freedom)’은 간섭의 부재, 외적 억압이나 구속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각각 '~할 자유'와 '~으로부터의 자유'로 구분되기도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공동체 안에서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자, 시민으로서 반드시 학습되어야 할 자유는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질서가 점점 더 미시적인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침투하고, 외부의 통제가 아닌 자기검열의 형태로 내면화된다는 데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리덤(freedom)’은 단순히 외부의 억압이 없는 상태를 넘어, 보이지 않는 규범과 내면화된 기준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둘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그 선택지 자체를 의심할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교육의 본질적 역할이 드러난다.


그래서 자유교육의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회가 부여한 질서 속에서 ‘리버티(liberty)’를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는 시민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러나 아마 앞으로의 세계에서 더 중요해질 두 번째는 내면화된 기준과 보이지 않는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나의 존재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일본의 프리스쿨은 단순한 대안 교육 기관이 아니라 이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균열을 내는 작은 실험처럼 보인다. 이 사회에 얼마나 최적화되어있는지가 아닌, 나만의 색채로 존재해도 괜찮은지를 묻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유교육이 다시 회복해야 할 목표는 지식의 형식들을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기술보다도 학생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인식하고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바라는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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