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고리

by 이새하


태평양을 둘러싼 거대한 지각판인 환태평양조산대에는 전 세계 활화산의 대부분이 모여 있다. 이 ‘불의 고리’에 속한 대표적인 국가인 일본은 1995년 한신 아와지 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건축 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왔다. 특히 학교 건물은 지역 공동체의 재난 대응 거점이라는 원칙 아래 지진 등에 대비해 철저히 좌우 대칭의 구조로 지어진다. 탈출 통로가 될 수 있는 창문을 크게 만들고, 붕괴 시 대피 경로를 다양화하기 위한 외부 계단과 비상용 물 저장소 역할을 하는 야외 수영장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는 큰 지진이 많지 않았지만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을 계기로 2층 이상 건물 대부분이 내진 설계가 의무화되었다. 지진이 발생하면 지반의 흔들림이 건물로 전달되며 건물은 좌우 방향의 힘, 즉 지진력을 받게 된다. 내진 설계는 이러한 힘을 흡수하고 분산하여 건물이 쉽게 붕괴되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 장치다. 이를 위해 건물은 수평 방향의 진동에 견딜 수 있도록 기둥과 보, 벽체 등의 구조를 강화하여 안정성을 확보한다.


그런데 내진 설계가 필요한 것은 건물뿐만이 아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흔들림을 견딜 수 있는 마음의 구조가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의 파이데이아, 로마의 후마니타스, 근대의 인문학 교육은 모두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져 왔다. 교육이란 결국 삶의 고통과 위기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내적 구조물을 세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기는 인생이라는 건축물의 설계 도면이 완성되는 결정적 시기라 할 수 있다.


체육교육의 본질적 목적 역시 신체활동을 통해 올바른 삶의 태도를 습득하고 스스로 이러한 삶의 골조를 형성하도록 돕는 데 있다. 몸을 움직이며 겪는 실패와 두려움, 협력과 경쟁의 경험은 개인이 삶의 흔들림을 견디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흔히 체육교육의 가치로 언급되는 건강 증진, 체력 향상, 여가 선용, 사회성 함양과 같은 외재적 효과들 역시 이러한 삶의 토대를 강화하는 데 결국 우회적으로 기여한다.


당연하게도, 그 어떤 앎으로도 삶의 고통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통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는 오롯이 나만이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내가 현지에서 지내면서 가장 놀란 것은 지진을 포함한 자연재해를 대하는 사람들의 인식이었다. ‘영원한 것은 없으며,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담담한 자세는 인간 삶의 덧없음을 관조하는 특유의 미의식, ‘모노노 아와레物の哀れ’로 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체념이 아닌 인정과 수용이며, 재난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비하는 태도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진 설계는 외부의 충격에 전혀 흔들리지 않는 건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흔들리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내진 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지진을 견딜 수 있는 강도만이 아니라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며 버티는 연성(ductility)이라고 한다. 강도만 높은 구조물은 큰 충격 앞에서 오히려 쉽게 붕괴될 수 있지만 적절한 유연성을 지닌 구조물은 흔들림 속에서도 형태를 유지하며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불의 고리 위에 놓인 것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지각 변동의 시대에,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힘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체육교사로서 나의 역할은 학생들이 이러한 견고함과 유연함을 몸으로 체득하도록 하는 일, 스포츠 리터러시라는 내적 구조의 설계도를 통해 삶의 흔들림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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