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가 되고 싶어

욕심쟁이라 해도 괜찮아.

by 새하루

나를 찬찬히 돌이켜보는 요즘

난 여전히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어릴 때부터도 하고픈 일들이 수천수만 가지였던 나.

더러는 욕심이 많다했다.

변덕도 잦아서 세 달 정도 하면 오래가는 것이었다.

지구력이 낮은 건지 흠뻑 빠져서 몰입했다가도

금방 싫증이 나서 관련 용품이나 자료들을

모조리 정리해 버리는 습관이 있다.


그랬던 사실을 잊고 다시금 빠져들어

또 이것저것 사들이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나는 한다.


그렇게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취미들은

첫 번째보다 실력이 더 나아진 것이 보인다.

짧게 하고 금방 덮어두어서

몇 달 혹은 몇 년의 텀이 있다 하더라도

확실히 두 번째부터는 시행착오도 적고

나름의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요즘 드는 생각은

이 또한 나쁘지 않다는 것.


한 가지를 깊게 파는 사람과

비교한다면 재야의 고수가 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떨어질지언정

나처럼 변덕스러운 사람에게는

문어발처럼 여기저기 담가두고

질릴 때쯤 번갈아가며

기술을 조금씩 연마하는 방법도 썩 괜찮다는 것이다.


흥미가 떨어질 때쯤 새로운 흥미를

찾아 삶에 활력을 더하면 되니까.


그렇게 변덕쟁이 취미부자의 욕망도 채우고

갖가지 잔기술을 닦다 보면

새롭게 발견하는 것들이 있고

또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확장되는 세계를 만나게 될 테니까.



늘 하나를 주야장천

깊게 파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는 모르는 것도 없고

역사를 다 꿰고 있으며

스스로 잘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편이 '오타쿠'의 표본이다.

그는 수십 개 시계 브랜드에 관해서

보지도 않고 줄줄 읊고

시계마다 다른 작동 원리와

작디작은 마이크로 부속품들을

보며 경이로워하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몇십 년 동안...


반면 그렇지 않은 나를 보며

나는 스스로 한심하다고 여겼다.

한 가지에 몇 년을 몰입하기는커녕

여기저기 발만 담그고 빼는 것이

나를 애매한 형태로 빚어가는 것 같아

자책할 때가 많았다.


내가 또 그렇지 뭐. 하며 늘 스스로 비관했던 나.


그런데 이러한 내가,

얕은 지식으로 이것저것 발을 담가본 나도

다 쓸모가 있더라.


사람들과 소통의 매개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각보다 도움이 되는

얕은 조언도 줄 수 있으며

주로 취미가 창작활동인 나는 다른

여러 가지 경험들이 합쳐져

꽤나 그럴듯한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또 그런 사소한 경험조차 나의 시야를

확장시켜 주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 어떤 경험도 쓸모없다 말할 수 없다.




어떤 이는 하나를 깊게 몰두해서 갖게 되는

본인만의 정체성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깊이가 얕을 수는 있지만

다양하게 접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감히 어느 한쪽만 훌륭한 것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 모두 필요하다.


그러니 우리의 편협한 잣대로

스스로에게 "왜 하나를 진득하게 못하니?"

반대로 "왜 하나밖에 할 줄 모르니?"

라며 다그치지 말자. 내 아이에게도 동일하다.


각자의 성향에 관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같은 나이, 같은 성별, 같은 직업이어도

다른 색이 입혀진 삶을 살게 된다.

개개인의 시선이

개개인의 손길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새로운 시야가 열린다.


그렇게 다양한 이들이 모여 있는 세상이기에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흥미롭고

그로 인해 삶이 더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좁은 시야를 물려주지 말자.

오타쿠이든 문어발이든

그들만의 세상 보는 법을 모두 존중해 주자.

그리고 한 번씩 서로 들여다보자.

그러면 더 다채로운 내가 될 테니.



딸아

네가 맘껏 뛰놀 수 있는 넓은 세상을 위해

엄마부터 넓은 시야를 가져볼게.


너를 엄마의 생각 속에 가두지 않을게.

엄마도 모르게 너에게 좁디좁은 잣대를

들이밀 때면 “그만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기 바라.


하고 싶은 것이 수없이 많아도 괜찮아.

욕심이 나쁜 것만은 아니야.

하고 싶은 것이 단 하나라도 괜찮아.

외골수가 나쁜 것만은 아니야.


무엇이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엄마가 힘껏 노력할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