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
내 인생에 죽을 만큼 최선을 다해본 일이 있을까
최선이란 무엇일까
어릴 적 들었던 엄마의 말 중
계속 곱씹게 되는 말 한 가지는
"너는 조금만 더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해"
였다.
당시에는 갸우뚱했다.
내가 정말 그런가?
그 말을 듣다 보니
나는 어느새 그런 아이가 된 것 같다.
정말 더 할 수 있는데도 쉽게 포기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쉽게 만족했다.
사실 엄마의 말대로 내가 본디 그런 아이였는지,
엄마의 말 이후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하는 모든 분야에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이런 말들을 마음속에 품고 살던 나였다.
그 생각에 묻혀 살 때는
그 말들이 그렇게 부정적인 말들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쉽게 자족할 줄 알고
욕심부리지 않는 삶이 현명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 보니 그 말들이
나를 많은 부분에서 멈추게 했다.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조금만 더 애를 쓰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내가 쥐고 있는 것들이 많이 달라졌을 텐데
나는 몰랐다.
내가 나 스스로를 너무 일찍 제한해 버렸다는 것을.
그렇게 어영부영 서른 살이 넘고
엄마가 되어 돌이켜 본 나의 삶은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잔잔바리 덩어리로 보인다.
자족할 줄 아는 삶도 나쁜 것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삶이 그 자족을 넘어서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는 그동안 '최선'을 다하는 것이 두려웠다.
무언가를 그럴듯한 결실이 없이도
꾸준히 밀고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또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내가 예상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으면
일찍이 덮어버리고 나는 못한다고 단정 짓고
'노력'을 외면했다.
늘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돌아간다.
나의 노력 대비 나오는 결과물이
어느 정도의 값어치가 있을까 예상해 본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 따진다.
내 기대만큼 빠른 시일 내에 괜찮은 결과물이 나오지
않겠다는 답이 나오면 나는 곧바로 내려놓는다.
나는 실행도 빠르지만
그만큼 포기도 빠른 사람이다.
나는 꽤나 계산적이어서
조금이라도 품이 든다고 생각이 들면
그것을 오래 품지 않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자족한 듯 보이는 나였지만
속으로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었다.
늘 그 삶을 상상만 하며 갈망했다.
이제는 고통스럽겠지만
최선을 다해볼 것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최선을 배워보겠다.
최선을 다했을 때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두려워 멈추던 나였다.
최선은 당장 결실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간을 넉넉히 투자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최선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도전하는 용기와 인내의 줄임말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이것들을 감내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나를 스스로 제한하는
마음속의 말들부터
끊어내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나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야.
나는 조금만 더 하면 할 수 있어.
엄마의 말을 부정적으로만 받지 말자.
엄마의 말을 뒤집어보면
나는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거야.
나는 시간을 투자하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어.
나는 실패를 견딜 수 있어.
내가 오늘 당장 100은 견딜 수 없지만
10은 견딜 수 있고
내일은 15를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면 언젠가는 100의 실패 앞에서도
조금 아프긴 하겠지만
쉽게 낙담하지 않고 꿋꿋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차츰차츰 나아가는 법을 배워보자.
자꾸만 관성처럼
이전과 같이 나를 제한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 글을 보며 지속적으로
스스로 용기를 심어주려고 한다.
내 아이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그리고 최선을 보여주고 싶다.
내 아이에게는 최선이 습관이 될 수 있도록.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미 내 아이는 최선이 습관이고 일상이다.
나는 내 아이를 보면서 최선을 배운 것 같다.
목을 가누지 못할 때부터
목을 가누는 힘을 부지런히 기르고
시키지도 않았건만 몸을 뒤집어 보느라고
용쓰는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특히 걸음마를 시작할 때,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법을 익힐 때는
손을 잡아주겠다는
엄마의 손을 과감히 뿌리치고
느리더라도 끙끙대더라도
혼자 해내려고 애쓰는 딸이었다.
넘어지더라도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고
힘들어도 혼자 해내고 기뻐하는 내 아이의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러워 눈물이 났다.
그렇게 엄마가 되어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보며
최선이란 어떤 것인지 배운다.
내가 한참은 더 오래 산 어른인데,
고작 한 살배기 아이에게서 삶을 배운다.
딸아 고마워.
나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작은 어른이 되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