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필요해

적정한 위험요소가 있는

by 새하루

인생의 모습과 닮아 있는 이곳.


이리저리 얽힌 구조물과

여러 난이도의 징검다리,

높이가 다양한 미끄럼틀이 있는

놀이터.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달려들어

수없이 시도하고 수없이 넘어지지만

끝내 성공해 내며 방법을 터득한다.

고작 20개월 아기도 말이다.


어떻게 하면 그물로만 이루어진 곳을

지나 건너편으로 넘어가지?

어떻게 흔들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지?

그네는 어떻게 타는 걸까?


어린이집 선배 언니, 오빠들이

놀이터에서 활보하는 것을

눈을 반짝이며 유심히 관찰하며 익히고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한다.


처음에는 엄마가 손을 잡아줘야 하지만

같은 것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엄마의 손 없이도 혼자 거뜬히 해내는 딸.

성취감에 기뻐하는 딸의 얼굴.


며칠 전만 해도 혼자서는 타기 어려웠던

언니 그네(등받이 없이 안장만 있는)를

갑자기 혼자 탈 수 있게 된다거나


높은 미끄럼틀에서도

스스로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서

안전하게 내려온다던가


높이가 다른 징검다리에서도

하나씩 차근차근 중심을 잡으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비약적 성장에 놀람과 동시에

'아 이렇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구나'

'나도 이렇게 배웠구나' 싶은 요즘이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 살면서

꽤나 어린 나이부터

어떠한 보호자도 동행하지 않고

친구들끼리만 하이킹을 다니거나

계곡에서 놀곤 했다.


특히 여름에 자주 가던 계곡은

얕은 곳도 아니어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위험한 순간들 속에서도 지혜롭게

대처하고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 계곡은 여름마다

외부 피서객들이 방문하고 머무르던 곳이었는데

갑자기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이 있어

매 해 한 번씩은 꼭 익사 사고가 나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곳에서

어른의 감시 없이 오롯이 초등학생

다섯이서 놀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아찔하다.


사실 대부분의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물에 뛰어들었다던가,

제대로 된 보호장치 없이,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이

깊은 수심이 있는 구간으로 진입했다던가... 등등



우리는 비록 어렸지만,

계곡에서 물놀이를 할 때나

자전거로 동네를 여기저기 누빌 때도

우리만의 규칙이 있었고

또 언니, 오빠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배웠기 때문에

위험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알았다.


언젠가 한 번은 한 친구가 수영을 하다가

수심이 깊어지는 구간에서 당황하고 긴장한 나머지

허우적대며 물에 빠져 위험한 순간이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지혜롭게 지시를 하고 구출해 준 덕에

큰 사고가 나지 않고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나이는 초등학교 4학년 정도 되었을까.


그 일을 통해 우리의 놀이가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과

어떻게 하면 다치지 않고 놀 수 있을지,

만약 위험한 순간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며 터득했던 것 같다.


그 사건 이후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계곡엘 갔고

30살이 넘은 지금, 모두 건재하다.


강, 계곡 그리고 숲이 우리의 놀이터였던 그 시절.

자연은 푸근했지만 늘 위험 요소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놀이는

가끔 치고받고 싸울 때도 있었지만

우리만의 규칙 속에서

늘 서로를 살뜰히 살피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렇게 다치지 않고 노는 법을 잘 배우며 자랐다.



그러면서 인생을 배웠을까.


물론 내 아이를 위험천만한

계곡에 친구들끼리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험요소가 있는 공간에서도

생각보다 아이들은 강하다는 것,

그 요소를 통해 삶을 살아내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합의가 있고 규칙이 있고

그 규칙으로 더욱 끈끈한 결속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서로를 지킨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어른에게도 필요한 것들이 아닐까.



놀이의 공간,

놀이터는 작은 인생 실험 공간이다.

단순히 어떤 신체의

기술적인 면만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사회의 일원이 되어

신뢰를 쌓아 결속력을 다지고

서로를 품어가는 방법을 배운다.


놀이터에서 수없이 넘어지고,

또 다른 이의 넘어짐을 일으켜주면서

체득하는 삶의 방법들인 셈이다.

그 배움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 우리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맘껏 뛰놀 수 있도록,

때로는 어른의 감시 없이도

자유로이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인생은 늘 새로운 것,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의 연속이다.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배움이 존재한다.


아이가 걸음마를 떼면

뛰는 법을 배우고

뛰기 시작하면 속도를 조절하고

어디서 뛰어야 할지 분별하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계속해서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첫 배움부터 완벽할 수 있을까?

아니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시도하고 실패해도 괜찮을

연습의 장소가 필요하다.

연습의 시간이 필요하다.

놀이터처럼.


때로는 위험요소도 있지만

계속 시도할 수 있는 공간과

믿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다면

넘어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잘 살아내는 법을 배울 터이다.


또한, 개인의 마음가짐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다.

놀이터에서 다치지 않고 잘 노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는 인생의 어떤 난관에서도

단단한 마음 그릇을 가지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나이에 맞게 또 각자의 수준에 맞게

적절한 위험요소를 접하면서

위험을 마주하는 법, 잘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얻는 사소하지만 소중한 성취들과

노력의 역사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마음을 꾸준하게 단련해 주기 때문이다.

나에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말하듯 이야기해보자면

"이모! 저 지난번에 어, 어,

엄청 높은 미끄럼틀에서 슝 내려왔어요!"

"하나도 안 무서웠어요!"

의기양양한 모습.

그러니 이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그런 것들이 쌓여

조금 더 큰 세상에서 만나게 될

위험도

두려움도

불안도 기꺼이 직면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 갈 수 있지 않을까.


고로 우리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충분히 뛰어놀 때,

충분히 넘어져볼 때


단단한 관계

단단한 마음 그릇

단단한 용기가 생기리라 믿는다.


딸아

맘껏 뛰어놀아라.

실컷 넘어져보아라.

그렇게 배우는 건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테니까.




[불안세대-조너선 하이트 저]를 읽으며

떠오른 생각을 적어보았습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