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르고 흘리는 법

배우는 과정을 견뎌주는 것

by 새하루

아기 옷과 물건에 큰돈을 쓰지 않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를 닮은 아기는 떠먹여 주는 이유식으로는

성에 차질 않았다.

앞섶에 묻히고 흘리더라도

양손과 얼굴에 이유식이 범벅이 되더라도

스스로 만지고 먹어야 했다.


곱고 깨끗하게 입혀서 누군가에게 물려줄 심산으로

예쁜 옷과 예쁜 물건을 사는 것은

내 아기에게는 가당치 않은 선택지였다.


새 옷은 하루 만에 얼룩이 지고

아무리 공을 들여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며

아기 물건에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게 되었다.

누가 물려준다고 하면 내심 뛸 듯이 기뻤다.


그렇게 이유식 시작과 동시에 아이 옷 욕심이 줄었다.


처음에는 더러워지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워

혼자 이유식을 먹겠다는 아이를 굳이 말리고

내가 나서서 깨끗하게 먹여보려 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스스로 밥을 먹어야 하는데,

흘리지 않고 먹는 방법을 익혀야 하는데,

내가 지저분한 것이 싫다고 전부 대신해 주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 작은 이기심에 아이를 묶어두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하얀 옷에 형형색색 얼룩으로

지도가 그려져도

밥을 먹는 동안 식탁 아래로 음식물이

이리저리 던져지고 떨어져도

눈을 딱 감고 넘기는 연습을 해야 했다.


매 식사와 간식 시간이 끝나고 나면

온몸을 씻겨야 한다거나

무릎을 굽히고 바닥을 닦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지친 마음에

눈물이 고일 때도 있었더랬다.


하지만 엄마의 작디작은 인내와 기다림 속에

아이는 배우고 성장했다.


제법 빠른 개월 수에

혼자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 법을 터득했다.

여전히 흘리기는 하나

숟가락으로 뜨기 어려운 국물류도

제법 잘 떠서 먹을 줄 알게 되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것도

도와주겠다는 엄마의 손을 마다하고

홀로 도전하더니 곧잘 오르내리게 되었다.


놀이터의 그네, 그물징검다리 등

난도가 높은 기구에서도

혼자 도전해 보며 때때로 위험한 순간을

제외하고는 엄마의 도움 없이 성공해 냈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잡아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내가 대신해주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참고 지켜봐 주었다.


그리고 아이조차도 엄마가 도와주려는

인기척이 느껴지면 저리 가라고 떠밀었다.

의도치 않게 그저 지켜본 적도 많다.


조금 느리고 서툴러도

방법이 잘못된 것 같아도 지켜보기만 했다.

아이가 도움을 요청할 때만

방법을 다시 알려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잘못된 방법으로 하고 있다가도

스스로 옳은 방향으로 전환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지 이리저리 탐색해 보더라.

그러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하는 아이.

그렇게 혼자 해낼 때면 아이의 표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기쁨을 본다.


내 눈에는 너무 작고 어린 아이라 못할 것 같지만

스스로 사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때로는 어른이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할 때도 있다.

그것이 100% 정답은 아닐지언정.


처음에는 하고 싶은 대로 되지 않는 것에

쉽게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지

잘 되지 않더라도 계속 시도하고 노력한다.

아이는 벌써 배움의 시간,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들을

스스로 견딜 줄 알았다.

그런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배운다.



어른인 나는 답답한 시간을 견딜 줄 몰랐다.

막막한 생각이 들면 빠르게 포기했다.

때로는 어질러지고 흘려도 치우면 그만인 것을.

방향이 빗나가도 다시 돌아오면 되는데

내가 옳다고 생각한 좁은 길만 고집해서

오히려 다양한 길을 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좁은 생각에만 갇혀 제자리에만

머물러 있던 것이 아닐까.


내가 내 아이를 그저 지켜봐 주고 기다려주었듯이

나도 나 자신을 그리고 우리 서로를

기다려주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각자의 속도를 존중해 주는 법을 배워야 한다.


평소에 나는 서투른 누군가를 그저 지켜보는 것이

답답하고 어려워서 내가 도맡아 한 적이 많았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선택한 일이었지만

되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들었다.


이를 테면 요리에 소질은 없는 남편이

음식은 좋아해서 유튜브 레시피 영상을 자주 본다.

그리고 본인 생각에 시도해 볼 법한 요리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어 직접 만들어 줄 때가 있다.

그 마음이 귀하고 고맙기는 하지만

사실 썩 내키지는 않았다. 맛이 없어서는 아니다.

나보다 혀의 민감도는 뛰어나서 간을 잘 맞추기 때문에

처음 해본 요리도 맛은 보장되는 편이다.


다만, 남편이 요리를 하는 동안에는

온 주방이 난장판이 된다.

나는 요리를 할 때 쓰레기나, 설거지거리가 생기면

바로바로 치우면서 하곤 한다.

어지럽혀지는 것을 보기가 싫고,

나중에 한 번에 치우려고 하면 더 힘이 들기 때문에

정리해야 할 것이 적을 때 바로바로 치운다.


반면에 남편은 한 가지 요리를 하는데도,

하물며 밀키트 요리를 할 때도

꽤나 넓은 우리 집 아일랜드 식탁이

온갖 도구, 그릇, 식재료 포장지 등으로 빼곡해진다.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이 나에게는 고역이다.

그래서 남편이 오롯이 혼자 요리를 하기로 한 때에도

응아 마려운 강아지처럼 주방을 서성인다.

그래서 속으로는 그냥 요리를 안 했으면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남편도 참고 지켜봐 주었더니

요즘에는 요리를 할 때 예전처럼 주방이

너저분해지지 않더라.

멀리서 지켜보니 내가 하는 것처럼

중간중간 치우는 모습도 보이고

이것저것 다 꺼내놓지 않고

필요한 도구와 식재료만 사용했다.


'아, 다 큰 어른도 안 해본 것은

많이 해보아야 능숙해지는구나'

왠지 기특했다.

그 시간을 그냥 지켜보기로 한 나 또한 자랑스러웠다.

이제는 내가 밥을 하지 않아도 굶어 죽진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썩 안심이 되었으니.


이처럼 어른조차도 처음 하는 것을

첫 시도부터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엎지를 수 있다.

어긋날 수 있다.

우왕좌왕할 수 있다.

다시 하면 되지 않은가.

조금은 천천히 해도 되지 않은가.


나는 왜 이토록 성급했을까.

왜 그 짧은 시간을 기다려주지 못했을까.


이제는 나에게도 내 남편과 아이,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이웃들에게도

성장의 시간을 넉넉히 허용해 주고

푸근히 기다릴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