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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Sep 22. 2024

윤하로 사유하기 : 우주의 차라투스트라 보이저

1번 트랙「오르트 구름」

  개괄


 윤하의 6집인 『END THEORY:Final Edition』과 7집 『GROWTH THEORY』는 서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ND THEORY』는  ‘소녀’와 ‘혜성’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GROWTH THEORY』는 ‘혜성’과 헤어진 ‘소녀’의 성장담이다. 즉 두 텍스트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 서사시다. 이는 실제로 앨범의 주인이자 가수, 총괄프로듀싱을 맡은 윤하가 공인한 바이기도 하다.


 이 장편 서사시의 서곡을 담당하는 화자 '보이저'는 우주의 차라투스트라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차라투스트라란 니체의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난다. 본격적으로 이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곡과 가사를 살펴보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유튜브 링크를 적어놓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bfXsQ9k9PtY 

(*은 후렴이다)


어둠만이 나의 전부였던 동안

숨이 벅차도록 달려왔잖아

Never say “time’s up”

경계의 끝자락

내 끝은 아니니까


울타리 밖에 일렁이는 무언가

그 아무도 모르는 별일지 몰라

I wanna wanna be there

I’m gonna gonna be there

벅찬 맘으로 이 궤도를 벗어나


Let’s go!

새로운 길의 탐험가

Beyond the road

껍질을 깨뜨려버리자

두려움은 이제 거둬*


오로지 나를 믿어

지금이 바로 time to fly

두 눈 앞의 끝, 사뿐 넘어가

한계 밖의 trip, 짜릿하잖아

녹이 슨 심장에 쉼 없이 피는 꿈

무모하대도 믿어 난*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선 우주 속에

겁 없이 뛰어들어 fall (fall) fall (fall)

답답한 가슴 안에

불꽃을 피워낼래

shine and bright


곧 잡힐 듯이 반짝이던 무언가

꼭 달릴수록 멀어져도 난 좋아

I never never give up

I’m getting getting better

여정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야


누가 뭐래도 믿어 난

Go, 다치고 망가져 버거워진 항해

Go, 숨 한 번 고르고 이어가면 OK

구름 너머 세상을 내 품에 안을래


나의 여정을 믿어 난


「오르트 구름」: 우주의 차라투스트라 보이저 호


『END THEORY』와 『GROWTH THEORY』는 모두 실존주의적인 뉘앙스가 짙게 느껴진다. 이러한 색채가 유난한 노래가 몇 곡 있는데, 오프닝을 맡은 「오르트 구름」이 바로 그러하다. 이 노래의 화자는 모두가 알고 있는 보이저호이다. 작사를 맡은 윤하는 1977년에 탐사를 시작한 보이저호가 아직도 작동하는 채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화자는 “어둠만이 나의 전부였던 동안 숨이 벅차도록 달려왔"다, 라며 운을 뗀다. 이 두 마디는 화자가 처한 배경과 현실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를 봐서는 128의 BPM, 경쾌한 컨츄리 반주와 가사가 서로 정합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후의 가사를 보면 '보이저'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바로 이후의 가사는 “Never say “time’s up” 경계의 끝자락 내 끝은 아니니까.”로 이어진다. 여기서 더 나아가, 화자는 “벅찬 맘으로 이 궤도를 벗어나”, “한계 밖의 trip, 짜릿하잖아.”라고 말한다. 곡의 첫 두 마디를 제외하면 가사는 계속 명랑함을 유지한다. 반주와 아주 딱 맞아떨어진다


  물론 '보이저'는 점점 늙어간다. 하지만 “녹이 슨 심장에 쉼 없이 피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다치고 망가져 버거워진 항해.”, “숨 한 번 고르고 이어가면 OK”라고 생각할 뿐이다. '보이저'는 “구름 너머 세상을 내 품에 안을” 꿈을 꾼다. 여기서 구름이란 오르트 구름을 짧은 단어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 구름 -또 오르트 구름-은 한계를 상징한다.


차라투스트라,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이며,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최초로 공식화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텍스트를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초인이 되라고 강권한다. 니체의 초인이 어떤 개념인지는 어린아이라는 비유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이 어린아이는 낙타와 사자라는 다른 상징과 비교되어 제시된다. 니체에게 낙타란 외부의 대상에 의해 무거운 짐을 메고, 군말 없이 대상의 손에 이끌리는 순종적인 대상을 의미한다. 사자란 낙타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짐을 메게 하려는 자와 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사자의 싸움은 그저 싸움일 뿐이다. 반면 어린아이는 싸움을 넘어 명랑하게 자신만의 놀이를 한다. 이 놀이란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를 말한다. 끊임없는 어둠을 넘어 여행하는 것이 보이저호가 스스로 세운 규칙이며 놀이이다. 그는 이 놀이를 명랑하게 즐긴다. 보이저호는 “누구도 본 적 없는 낯선 우주 속에 겁 없이 뛰어”드는 존재다.


 니체가 말한 초인이란 또 끊임없이 힘에의 의지를 추구하는 존재다. 이 힘에의 의지는 힘과 강함에 대한 추구이며,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지다. 니체는 이 의지가 인간에게 내재되어있으며, 동시에 세상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으로 파악한다. 그는 유고에서 힘에의 의지가 곧 세상이라고 말한다.


 「오르트 구름」의 가사에서는 화자가 힘에의 의지를 추구하고 있음이 여러 번 암시된다. 그는 “한계 밖의 trip”을 “짜릿하”게 받아들인다. 또 스스로를 “새로운 길의 탐험가”라고 선언하며, “Beyond the road 껍질을 깨뜨려버리자”고 말한다. '보이저' 스스로도 자신이 무모하게 보일 수 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무모하대도 믿어 난 누가 뭐래도 믿어 난”이라고 재언할 뿐이다. 전술하였듯 오르트 구름은 어떠한 한계를 상징한다. '보이저'는 이 거대한 한계를 넘어서 세상을 안으려고 한다. 힘에의 의지가 모든 것에 내재되어 있는 지는 의견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보이저'에게 그러한 의지가 내재되어있음은 확실하다.


  또『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펼치는 줄거리를 가진다. 차라투스트라는 사람들에게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오르트 구름은 태양계를 둘러싼 가상의 경계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태양계와 오르트구름 사이에는 까마득한 공간이 있으며, 그 사이의 공간은 정말 어둠만이 전부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보이저'는  아마 이곳에 도달할 것이다. 또 그 장소는 혜성의 고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 여정에서 ‘보이저’는 ‘혜성’을 만나게 된다. '보이저'가 오르트 구름에 도달하여 ‘혜성’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지구로 향하고 있는 ‘혜성’을 만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보이저호’와 ‘혜성’이라는 서로 다른 인물이 일종의 명랑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뒤의 다른 곡에 드러난다. 아마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보이저’가 ‘혜성’을 만나고, 그에게 자신이 가진 ‘힘에의 의지’를 가르쳐준 게 아닐까 추측한다.  그의 여정은 아마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르트 구름을 넘어서는 또다시 끝없는 어둠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저'에게 그런 건 아무 상관없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명랑하게 한계를 넘어 나아가고자 할 뿐이다.  ‘보이저’는 우주의 ‘차라투스트라’가 된 셈이다.


 ※ 이 글은 윤하 6집의 리패키지 버전인『END THEORY:Final Edition』7집 『GROWTH THEORY』을 바탕으로 하며 필자의 재해석을 거친 것이다. 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2차 텍스트와 발언은 최대한 배제하여 본래의 가사에 기반하였으며, 서사를 필자의 해석에 따라 보다 명시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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