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애도조차도 정보라답게
정보라는 부커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작가다. 최소한 필자가 『저주토끼』를 읽은 감상으로는 그렇다. 정보라보다 뛰어난 작가는 많지 않다. 사실 이번에 서술할 『너의 유토피아』는 『저주토끼』와 방향성이 정반대인 책이다. 후자는 -저자 본인이 밝히길- 환상호러소설이며, 문체나 내용 역시 꽤 서늘한 감이 있다. 그 책이 아물어가는 상처를 다시 찢는 책이라면 『너의 유토피아』는 상처를 어루만지는 책이다. 『저주토끼』와 달리 모든 작품의 장르가 SF라는 차이도 있다.
「영생불사연구소」 영생불사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막내 직원이 겪는 고난과 소동을 일인칭시점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긴 문장을 일목요연하고 능숙하게 사용하는 정보라 작가의 실력과 유머러스함이 돋보인다.
「너의 유토피아」는 인류가 멸절된 세계에 남은 자동차와 로봇의 이야기다. 인공지능을 가진 자동차가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인간을 지키고 보호한다는 생득적 원칙을 따라 황량해진 세상에서 모험을 펼친다.
세 번째 단편은 「여행의 끝」이다. 감염되면 식인을 하게 되는 바이러스가 지구에 퍼진다. 주인공은 인류를 구할 방법을 찾기 위해 우주선을 타고 격리된 기술자 집단의 일원이다. 하지만 우주선에서마저도 그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다. 흥미진진한 스토리와 살벌한 설정임에도 등장하는 유머러스한 묘사가 인상 깊다.
결혼을 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부인이 새벽만 되면 누군가와 통화를 한다. 모든 남편은, 혹은 성별이 바뀌더라도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정보라 작가는 누구나 공감대를 느낄 만한 보편적 상황을 통해 특별한 주제와 결말을 끌어낸다.「아주 보통의 결혼」은 평범과 범상이 흥미롭고 짜임새 있게 교차된다.
SF문외한인 필자의 기준에서「One More Kiss, Dear」는 가장 새로운 단편이었다. 서술자가 사물인터넷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라는 점이 이유다. 사실 인공지능을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묘사하는 건 감동적일지도 모르지만 진부한 면이 있다. 실제로 미래에 그럴 것같지도 않고 말이다. 하지만 「One More Kiss, Dear」에서 돋보이는 정보라의 상상력과 작품구성능력은 진부함을 상회한다.
「그녀를 만나다」는 기대수명이 200년으로 향상된 미래를 다룬다. 주인공은 130살 먹은 할머니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갔다가 폭탄 테러를 당한다. 테러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살벌한 사건 위에서 서술자인 할머니의 유머러스한 문체는 꽤 인상 깊다.
「Maria, Gratia Plena」의 주인공은 특이한 직업을 가졌다. 사건 가해자의 기억을 직접 체험하는 일종의 감시관이다. 주인공은 마약사범에 사람들에게 총을 갈겨대던 범죄자를 조사하는 사건에 배정된다. 주인공은 의식을 잃어 누워있는 그녀의 기억을 검사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작품은 「씨앗」은 범국제적 기업과 자연과의 대립을 표현한다. 이 자연의 대표자란 식물과 합쳐진 인간들로 정보라의 상상력과 소재 설정 능력이 돋보였다. 소설을 읽어보니 글로벌적 종자 기업등의 횡포가 떠올랐다. (그 소문들이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문학이란 무엇일까?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 질문의 답은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여기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바는 문학이 개별자 이전의 보편자를 탐구하는 매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라 작가가 사용하는 소재들과 인물들은 확실히 개성적이고 특별하다. 하지만 그러한 개별자들이 느끼는 감정은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너의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희망, 「아주 보통의 결혼」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의심, 걱정, 불안. 엘리베이터가 느끼는 인상들 따위가 모두 그렇다.
다만 후반의 세 작품은 아쉽다. 실제 사건들을 모티프로 하며 창작된「그녀를 만나다」,「Maria, Gratia Plena」, 「씨앗」들 말이다. 기승전결이 불명확한 경우도 있었고, 편향적이거나 너무 직접적이기도 했다. 또 구성이 충분히 타이트하지 않은 텍스트도 있다. 정보라의 이름값에 비해서 정제와 치밀함 부족했으며, 소설보다는 정치 논설문에 가깝게 읽힌다.
물론 세 문학적 논설문이 있더라도 『너의 유토피아』는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주서라고도 할 수 있을 『저주토끼』의 스타일을 벗어나, 유머러스하고 긴 호흡의 문장 그리고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의도는 꽤 성공적이었다. 또 이런 과정에서도 정보라 작가의 최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구성 능력과 상상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저주토끼』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은 독자들은 혼란을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이는 반대로, 둘이 비교하며 새로운 체험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의미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