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철학을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비책이 하나 있다. 바로 철학사를 서로 다른 두 사상의 대립의 연속이라는 줄거리로 파악하는 것이다. 하나의 사유가 생기면 그것을 반박하는 사유가 하나 생기고, 그 둘을 바탕으로 새로운 주장을 하는 사람이 나타나고, 또 그것에 반대하는 사유가 생겨나고.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변증법적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철학은 이렇게 발전해 왔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사례로는 20세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을 꼽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은 이런 전통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상기의 주장에 반대하지 않는다.-누군가는 엄밀하게 철학의 시작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때부터라고 말하기도 하는 실정이니.-다만 조금 더 과감한 견해를 채택해보고 한다. 필자는 여기서 철학사의 변증법적 발전의 시작을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 사이의 대결에서 찾는 것이다.
고대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두 철학자 모두 생몰년도가 정확하진 않다. 다만 헤라클레이토스가 6~5세기에 나고 자랐으며, 파르메니데스의 경우 한 세기 늦게 활동한 것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말하자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뻘인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세기경에 태어났다. 철학 1세대로 취급되는 밀레토스ㆍ피타고라스학파가 기원전 6세기경에 태동한 것을 고려해 본다면,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대강 철학의 두 번째 세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파르메니데스의 경우 2.5세대라고 보는 것이 더 엄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설왕설래가 있긴 하지만, 이런 추측 탓에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에 헤라클레이토스를 향한 반발이 어느 정도 섞여 있다는 것 역시 주류적 견해에 포함된다.
우선 두 철학자가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주제에 대해 서술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몇몇 철학자들에 대한 오해를 벗겨내는 데 도움이 될 일이기도 하다. 몇몇 철학자들은 '상대에게 어떻게 의견을 전달하지?'라는 물음에 깊이 몰입했다. 이런 문제를 '메타담론'이라고 부른다.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는 메타담론에 대해 최초로 골몰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우선 전자의 경우는 자신의 주장을 수수께끼 같은 문장으로 남겼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스스로의 사유를 시로 담아내었다. 즉 문학적인 텍스트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 둘이 21세기에 태어났다면 학사졸업논문도 통과하지 못했을 거다. 농담이다. 물론 각각의 합당한 이유가 있긴 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에 대해 고민했다. 그가 찾은 결론은, 자연은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마치 그가 남긴 경구처럼 수수께끼같이 말이다. 파르메니데스의 경우는 여러 가지가 이유로 지목된다. 가령, 당시에는 시라는 매체를 이용하는 게 독자들의 관심과 이해를 유도하기 용이했다던가.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는 핵심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지성은 일상과 경험을 넘어선 무언가를 지향했다. 즉, 그는 피안의 철학자다. 그런 요소를 표현하기 위해선 초월적인 존재와 내용-신화적인 존재들, 파르메니데스의 시에는 여러 신들이 등장한다.-을 사용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가 서사시를 쓴 핵심적 이유는 아마 이것일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어두운 사람’,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 따위의 별명을 가지고 있다.-학자로서 좋은 뉘앙스의 것들은 아닌 것 같지만-. 전술했듯 수수께끼 같은 경구들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진행하였기 때문에 붙은 별명들이다. 그의 사유일반은 '판타레이panta rhei' 라는 말로 대표될 수 있다. 이 말을 헤라클레이토스가 직접 하였을 가능성은 무척 낮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분명 있을 터. 다음의 인용구를 살펴본 후 논의를 이어가보자.
“우리는 같은 강에 들어가면서 들어가지 않는다. 우리는 있으면서 있지 않다. ”,
“차가운 것들은 뜨거워지고, 뜨거운 것은 차가워진다. 젖은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젖게 된다.”, “동일한 것…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깨어 있는 것과 잠든 것, 젊은 것과 늙은 것. 왜냐하면 이것들이 변화하면 저것들이고, 저것들이 변화하면 이것들이기 때문에.”
이상의 것들에서 강조되는 것은 ‘변화’와 ‘대립되는 요소들’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보았다. 더불어 이 변화란 서로 다른 것들의 투쟁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영원불멸한 무언가-가령 진리라던가-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나에게 귀를 기울이지 말고 로고스에 귀를 기울여, ‘만물은 하나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지혜롭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상에는 진리가 존재함이 전제되어있다.
그의 철학에 대해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만물은 불이라고 지적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인지, 단지 비유적인 의미였을지는 식자들 간에 의견이 갈린다. 필자의 경우 후자의 견해를 전제하며 글을 썼다. 아마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의 모습에서 세상의 모습을 본 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사상이 집약되어 있다고 평할 수 있는 경구를 인용하겠다. “대립하는 것은 한 곳에 모이고, 불화하는 것들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은 투쟁에 의해 생겨난다.
헤라클레이토스가 변화를 강조한 철학자라면, 파르메니데스는 불변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자세히 논하기 전에 그가 남긴 저작들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서시'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이 앞으로 진행될 사유들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암시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로 인용하기엔 분량이 상당하니 대강 간추리겠다. ‘누군가가 암말과 처녀들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길 끝에는 정의의 여신 디케가 지키는 문이 있었는데, 여신들이 로고스를 이용해 파르메니데스가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문지기를 설득해준다. 디케는 그로 하여금 문 너머에서 진리의 흔들리지 않는 심장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한다.’ 여기서 누군가이자 시의 화자는 파르메니데스 본인으로 추측되며, 마차를 이끌며 수행하는 암말과 처녀들도 신화적인 존재들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바는, 파르메니데스 스스로가 초월을 보고 왔다는 자신감이 넘친다는 사실과 그곳에 진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로고스를 강조했다는 것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로고스를 향해 내딛는 첫발자국부터 둘은 대척점에 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더 중시한다.”라고 했다. 즉 경험을 탐구의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다. 파르메니데스의 경우, 후대의 주석가인 이러한 아에티오스의 평가가 남아있다. "피타고라스, 엠페도클레스, 크세노파네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감각들은 거짓되다." 서시에서 나타난 그의 로고스는 지극히 이성·논리편향적인 듯하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본론적 사유에서 경험일반을 배제하며 논리를 전개한다.
이제 그의 머리 속 내밀한 면까지 들어가 보자. 위에서 언급한 아에티오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파르메니데스에 대해 각각 이러한 해설을 하였다. "파르메니데스와 멜리소스가 [말하기를] 우주(kosmos)는 하나이다.", "파르메니데스는 정의(定義:logos)에 따라 하나인 것에 매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주를 지칭하기 위해 굳이 kosmos라는 어휘를 사용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kosmos란 우주가 질서에 따름을 강조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이 하나의 우주가 변화나 운동 등속의 것들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세상이 운동하는 것처럼 경험된다는 것은 자신도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변화라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변화란 있었던 것이 없어지거나 그 역이다. 즉 변화란 없음이 있었다는 것이 전제된다. 하지만 없다는 것은 없으며 앞으로도 계속 없어야함이 마땅하다. 반면 있던 것은 말 그대로 있다. 그런데 어떻게 없던 것이 있던 것이 되고, 있던 것이 없던 것이 될 수 있는가? 즉 세계는 불변하는 하나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이러한 주장은 분명 극단적이다. 하지만 논리적인 타당성은 분명 담지하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어두운 철학자라면 파르메니데스는 밝은 철학자라는 말이 썩 어울린다. 헤라클레이토스는 홀로 철학을 하며 철학사 비주류 노선의 출발점이 된 인물이다. 반면, 파르메니데스는 많은 학우들과 어울리며 공부하였고 정치적인 영향력과 존경 역시 받았다. 그리고 사유의 방향성도 썩 달랐다. 어두운 철학자가 경험을 중시하며 변화를 중심으로 세상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경우에는 경험 대신 이성만을 철저히 믿었으며, 세상이란 불변하는 하나라고 외쳤다. 최초로 로고스를 강조하기 시작한 인물들이란 공통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인용구들은 아카넷에서 출판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을 참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