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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Aug 05. 2023

『충분근거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정리 및 요약

쇼펜하우어의 인식론 전반



 0. 필자의 서론


 이전에 쇼펜하우어의 인식론을 주제로 글을 쓴 적이 있다. 다만 거기에서는 그의 인식론에 대해 충분히 다루지 못하였으며 전체적인 구성상에 문제도 있었다. 그러니까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다 매듭지지 못하고만 것 같았다. 필자는 이러한 찝찝함을 해소하기 위해, 쇼펜하우어 철학의 인식론에 대한 저작이자 박사논문이었던 『충분근거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Über die vierfache Wurzel des Satzes vom zureichenden Grunde』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할 요량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언급하고 싶은 것이 몇 개 있다. 첫 번째는 번역의 문제다  ‘Zureichenden Grunde’라는 표현이 최근에는 충족이유율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잦은 것같다. 하지만 이가 영어적인 번역이 아니냐는 지적 역시 있다. 그들에 따르면 Zureichenden Grunde단어는 이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라이프니츠와 해당 어휘를 사용하는 쇼펜하우어가 모두 독일인이었으니 만큼 독일어적 번역을 지향해야 한다. 상기의 단어를 독일어적으로 번역하면 '충분근거율'이 된다. 필자는 이들의 주장에 조금 더 납득이 가기 때문에 충분근거율이라고 계속하여 서술하겠다. 두 번째는 글의 순서에 관련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문을 생성, 존재, 인식,행위의 충분근거율의 순서로 기술한다. 하지만 필자는 존재, 생성, 인식, 행위의 순서로 글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1. 쇼펜하우어의 문제의식

 

 『충분근거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의 3장까지는 서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과 그에 따른 보완점을 제시한다. 동시에 자신이 하필이면 인간의 인식능력을 충분근거율로 선택하였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크게 나누면 두 가지다. 첫째는 칸트 철학을 완성하는 것, 둘째는 이전의 철학이 인식일반을 탐구하는 과정에서의 결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칸트의 철학을 완성하겠다고 천명한다. 그런 까닭인지, 쇼펜하우어의 인식론적 도식은 선학의 것과 흡사하다. 우선 인식객관과 인식주관을 구별한다. 쉽게 풀어쓰자면 인식주관은 '나'이고 인식객관은 '나'가 인식하는 외부의 대상이다. 그리고 주관자의 인식능력은  [감성-상상력-지성-판단력-이성]으로 도식화될 수 있다. 우리의 인식은 저 도식에 따라 내면에서 산출된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은 결국 표상이다. 이 점은 쇼펜하우어와 칸트가 공통으로 삼은 바이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의 철학에 약간의 미진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바로잡고 보완하는 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다.  


 서론에서 쇼펜하우어는 기성 철학자들 몇몇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자주 언급되는 자는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셸링, 헤겔등이다. 쇼펜하우어가 생각하기에, 이들은 제대로 된 인식론을 연구하지 못한 자들이다. 여기서 나오는 비유가 종과 속의 비유다. 동물분류학의 그 종⋅속이 맞다. 종으로 비유되는 동질성의 법칙은 대상을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상위의 것으로 분류하는 방법이다. 하나의 치와와를 개라고 한다면 동질성의 법칙을 따른 것이다. 속으로 표현되는 특수화의 법칙은 이와 반대다. 대상의 개별적 요인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나의 개를 치와와라고 한다면 이 법칙에 의거한 경우다. 쇼펜하우어는 전술한 철학자들이 동질화의 법칙에 지나치게 집중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지나치게 이성중심적이며 비현실적인 철학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의 인식론은 자연히 특수화의 법칙에 집중할 것은 당연하다. 


2.  가지 충분근거율

 

 충분근거율은 무엇인가? 이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것은 라이프니츠다. 그는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이 법칙을 충분근거율이라고 표현했다. 결과에는 '원인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라는 법칙을 인식기능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의 본질이란 왜?를 따지는 힘이라는 주장을 함의한다. 즉, 쇼펜하우어에게 인간의 인식능력이란 현상의 원인을, 왜?를 파악하는 것이다. 


 예고하였듯 존재의 충분근거율부터 설명을 시작해 보겠다. 존재의 충분근거율은 시⋅공간이다. 칸트의 그것을 떠올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는 감관의 기능에 해당한다. 우리는 외부의 대상을 잡다로서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잡다는 특정한 질서를 지닌채 인식된다. 그 질서는 잡다가 시⋅공간이라는 형식에 맞추어져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경험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이렇게 산출된 잡다를 내용으로 가져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일반은 그저 형식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표상의 첫 걸음은 당연 존재의 충분근거율이다. 


 이어지는 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오성에 속한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오성이란 시⋅공간형식에 따라 산출된 것들을 결합시키는 장소다. 그 결과가 바로 인과관계다. 시공간 속에서 대상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연관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가 '생성'이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선 좀 긴 설명이 필요하다. 칸트는 우리 외부에 있는 질료가 자체의 양은 불변할 것이라고 보았다. 쇼펜하우어 역시 이 의견에 동조한다. 하지만 그는 조금 더 극단적인 발언을 하는데, 질료가 실체라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변화란 단지 질료의 상태가 변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것은 마치 새로운 것이 생성되는 것처럼 인식된다. 이어 이러한 변화와 변화에는 분명한 선후관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곧 생성의 충분근거율이라고 이름 붙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인식의 충분근거율은 단적으로 말해 이성이다. 쇼펜하우어는 동물일반과 인간을 구별하는 요소로 이것을 지목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언어나 수학등을 비롯한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소관인데, 다른 동물들은 그러한 지적 활동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어 그가 지목하기로 이성은 순수한 형식이다. 이성의 기능은 오롯이 감관과 오성을 통해 만들어진 직관을 추상화하여 개념을 만들고,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리란 이러한 과정에서 발견된다. 쇼펜하우어는 진리를 개념 상호 간의 연결이 참인 경우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 진리의 종류에는 각각 경험적 진리, 선험적 진리, 메타논리적 진리로 나뉜다. 경험적 진리란 직관과 개념이 갖는 관계일 따름이다. 선험적 진리란 논리다. 메타논리란 선험적 진리의 전제가 되는 몇 가지 원칙들이다. 동일률이나 배중률 등속이 여기 속한다. 


 마지막은 행위의 충분근거율이다. 이 층위는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관하여』에서는 짤막하게 다뤄지고,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자세히 이야기된다. 하지만, 이 인식이 무엇인지 윤곽 정도는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는 서술되어 있다. 행위의 충분근거율은 이름 그대로 행위의 이유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행위의 이유란 결국 의지라고 통칭될 수 있다. 상기의 것은 다른 충분근거율의 층위들과는 다른 독특한 점이 몇 개 있다. 우선 의지란 여타 인식구조의 밖에서 작동하며 그것들을 이끌 수 있다. 다음으로 이를 인식하는 방법은 전적으로 주관자의 내감을 통한다는 것이다. 즉 다른 인식들은 주관자의 외부에 있는 객관을 향한다. 하지만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선 주관자가 스스로의 내부를 객관으로 만드는, 이른바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아주 고생스러운 일이란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나오는 대목이지만 급하게 언급하자면, 의지란 일종의 세계법칙이다. 그리고 모든 질료는 의지에서 파생된다. 즉 우리는 모두 같은 의지에서 파생된 존재다.


 쇼펜하우어가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헤겔등과의 차이점은 이렇게 이성만이 아닌 다른 인식의 층위와 종류들도 강조함에 있다. 그들은 모든 인식을 이성으로 환원하고자 했다. 반면 쇼펜하우어는 인식의 여러 방식과 종류에 관해 연구했다. 현상들이란 종류에 따라 각각 저렇게 층위의 충분근거율로 파악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거시적 관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인식론과 칸트의 도식에 대해 비교해보겠다. 일단 쇼펜하우어는 상상력과 판단력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진 않는다. 아마 선학이 그랬듯, 감성과 오성을 매개해주고 오성과 이성을 매개해주는 힘 정도로만 생각했을 성싶다. 그러니까 쇼펜하우어의 도식은 객관/주관[의지(‘감성-상상력-오성-판단력-이성)] 정도로 그려볼 수 있다. 이 외에 차이는 칸트는 직관이란 전적으로 감관의 소관으로 보았지만, 쇼펜하우어는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오성에서도 직관의 작용이 벌어진다고 보았다. 소결 부분에선 각각의 충분근거율에서 어떤 학문이 기인하였는가를 다룬다. 그러니까 인식의 충분근거율은 수학, 기하학의 근거는 존재의 충분근거율. 뭐 이런 식으로. 이에 대해선 굳이 다루지 않겠다.


 3. 마무리  


 『충분근거율의 네 가지 뿌리에 관하여』를 독서할 때 주의할 부분은 칸트와 거시적으론 같아 보이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의지개념에 대한 서술이다. 이 개념이 무척 난해하기 때문에 본 저서를 넘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도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칫하면 그를 극단적인 주의주의자나 관념적인 몽상가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주의점에 강조하며 내용을 정리해 보겠다. 존재의 충분근거율은 시⋅공간의 형식으로 객관을 받아들이는 첫 관문이다. 잡다는 이상의 형식으로 갈무리되며 오성에게 맡겨진다. 오성에는 생성의 충분근거율이 위치하고 있다. 생성의 충분근거율은 상태의 생성을 파악하는 능력이다. 시⋅공간을 통해 정리된 잡다들을 상호 연결하여 인과관계를 형성한다. 이렇게 얻게 된 표상까지가 쇼펜하우어가 지목한 직관이다. . 직관을 통해 개념을 산출하고 상호 연결하는 것이 이성이기도 한 인식의 충분근거율이다. 이는 추상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위한 순전한 형식이다. 마지막은 의지다. 행위의 충분근거율은 행동의 근거를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선 주관 스스로의 내감을 관조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다. 의지가 중요한 이유는 세상 만물은 결국 의지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의지가 곧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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