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해 본다면 보다 다행스러운 것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일찍이 알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저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고뇌한다. 일찌감치 포기하거나, 저런 질문을 떠올려 본 적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저 답은 실재적 삶을 통해 얻은 건 아니다. 부끄럽게도 모두 책 덕분이다. 오늘은 필자에게 답을 내어준 책 몇권에 대해 이야기해볼 참이다.
『투데이 위 리브』- 엠마누엘 피로트
여기 민족의 배반자가 있다. ‘마티아스’는 나치군의 일원으로 동료와 함께 미군복을 입은 채 전선으로 침투하는 중이다. 특수임무의 일환이자 나치의 마지막 발악이기도 했다. 그는 유대인 손인 ‘르네’를 죽이려는 동료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여긴 사연이 있다. 이는 한 목사가 그들을 정말 미군으로 착각하여 유대인 소녀를 보호해달라고 위탁하며 시작된다. 마티아스는 나이대에 맞지 않게 얌전하며 총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눈빛에서 야성이 느껴지는 소녀를 보곤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결국 소녀를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주기로 결정한다.
그는 본래 미국에서 모피 사냥꾼을 직업으로 가졌으며 인디언들과 함께 살았다. 인생에 목적 없이 공허하게 살아가던 마티아스는 전쟁 소식에 한달음에 독일로 달려간다. 동고동락하던 인디언들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지만 전쟁이란 마티아스가 기대하던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 청년을 죽이라던 명령을 따른 후부턴 이 전쟁에 거대한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독일이 곧 패망할 것이란 사실도 깨달았다.
그는 르네를 인도하는 과정에서 전선 부근에서 고립된 프랑스인과 미군 무리를 만나게 된다. 당장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르네에게 안전할 것이로 판단한 그와 연합 군인들이 함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서 마티아스는 미군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할 질문들에 대답하기도 하고-일종의 테스트였다.- 자신에게 연심과 육욕을 가졌던 여성을 거부하기도 하며, 르네가 무대에 선 성탄절 연극도 관람한다. 결국 나치군임이 들통나 고초를 겪고 극적으로 르네와 함께 탈출한다. 이런 경험 속에서 마티아스의 마음은 항상 르네를 지향했다. 그녀 역시도 마티아스가 자신을 끝까지 지켜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에필로그, 전쟁은 끝났고 마티아스와 르네는 바다를 횡단하는 배 위로 몸을 실었다. 한 벨기에인이 그에게 물었다. 전쟁 속에서 어떻게 둘이서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고. 마티아스는 대답한다. 지금 살아 있는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냐고. 그는 비로소 삶을 살고 있다.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
10대의 소년 모모는 똑똑하고 인자한 이웃인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그는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그렇다고 대답한다. 소년은 울음을 터트렸다.
2차 세계대전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시기, 모모는 파리의 빈민가에 산다. 이곳에 프랑스인은 살지 않는다. 그의 이웃들은 유대인이거나, 아랍인이거나,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이다. 모모 역시도 이슬람교도로 자랐으니, 아랍인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년은 로자라는 노년의 유대인 여성 밑에서 자랐다. 그녀는 왕년에는 몸을 팔았고, 쉰이 되어 은퇴한 후부터는 자신과 같은 처지인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으며 살았다. -아마 당시에 프랑스에선 매춘이 불법이었으며, 부모가 충분한 직업을 가지지 않았으면 아이를 데려갔던 듯하다.- 모모를 비롯하여 아이들은 사고를 치고 다니며 로자의 골을 아프게 하고-관심을 받기 위해 집에 똥을 싸고 다니기도 하고-, 돈도 부족하고 이런저런 악조건도 많지만, 그 주변에는 다정한 이웃들이 많았다.
로자 아줌마는 나이가 듦에 따라 빠르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의 이웃들은 발 벗고 나서며 그녀를 도와준다. 유대인 의사 카츠는 늙은 몸을 이끌고 7층 아파트까지 왕진을 왔다. 이삿짐을 옮기는 일을 하는 청년들은 로자를 외출시켜 주기 위해 그녀를 들고 아파트를 세로지른다. 여장남자이며 역시 몸을 파는 롤라는 자신의 벌이를 모모와 로자를 위해 떼어주었다. 그녀는 90킬로가 넘는 상태였다. 아프리카에서 온 이웃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주술에 따라 로자 아줌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악령을 쫓기 위해 그녀를 중심으로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며 전통 악기로 노래를 하는 것이다. 뭐, 로자아줌마는 그걸 인식하고 아연실색하긴 하지만.
카츠는 로자를 병원으로 옮기고자 한다. 그녀는 그런 요양 생활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당시에는 안락사가 불법이기 때문에 영락없이 식물인간 상태가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그 소원을 지켜주기 위해 모모는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로자 아줌마를 아파트의 지하실로 데려다준다. 그곳은 유대인 수용소에서 생긴 PTSD가 생긴 그녀의 피난처였다. 그리고 피난처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모모는 죽어 탁해지는 그녀의 피부를 화장으로 가려주고 썩은 내를 지우기 위해 향수를 퍼붓는다. 3주쯤에 이 광경이 이웃들에 의해 들키게 되고, 모모는 나딘이라는 젊은 여성에게 맡겨진다. 나딘은 이전에 처음 본 모모를 무척 귀여워해 주었으며 아껴주었던,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다.
저 3주 사이. 모모는 하밀할아버지를 한 번 더 만난다. 그리고 전과 같은 질문을 한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치매기가 온 할아버지가 횡설수설하자 모모는 그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나도 젊었을 때는 누군가를 사랑했었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우리……,”
나딘에게 맡겨진 모모가 회상하길, 하밀 할아버지의 말마따나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리고 로자를 사랑했고, 추억한다. “사랑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며 소년의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
천사 중 한 사람인 미카엘은 하나님의 명을 어긴 대가로 숙제를 하나 받는다. 그는 여자 한 명을 천국으로 데려가야 했는데, 갓난아기가 둘 딸린 것을 보곤 결국 행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사는 지상으로 미카엘을 보내며 세가지 질문의 대답을 구해오라고 지시한다. 그 질문들은 총 세가지로 첫째,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둘째,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마지막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였다.
미카엘은 차디찬 러시아, 교회 앞에 맨몸으로 떨어진다. 미카엘은 첫 번째 질문은 오래지 않아 깨달을 수 있었다. 딱 봐도 궁핍해 보이는 남자가 자신에게 외투를 벗어주며 집으로 데리고 와 대접해 준다. 아내의 구박과도 싸워가면서 말이다. 그 남자의 이름은 세몬으로 착실한 구두 공이다. 시몬의 가정은 미카엘이 예상했던 대로 정말 궁핍했는데, 자신이 건네받은 외투도 부부 둘이서 돌려서 입고 다니던 것이었다. 심지어 시몬은 당장 돈이 없어 외상값들을 받으러 떠났다 실패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미카엘은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시몬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사람이 어떻게 날 도와주겠어? 하지만 세몬은 자신들이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주었고, 아내 역시 처음엔 툴툴거렸지만, 미카엘에게 동정심을 느껴 결국 집 안으로 맞아준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이라고 천사는 깨달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은 고급 가죽을 들고 시몬을 찾아온 무례한 부자와 함께 찾아왔다. 그는 세몬에게 아주 오래도록 신을 수 있는 튼튼한 장화를 만들어달라고 하면서 성공하면 큰돈을, 실패하면 감옥에 가두겠다고 오만하게 선언한다. 그런데 미카엘은 부자의 말을 듣는 채 마는 체하며 씩 빙긋 웃어 보였다. 그게 불만이었는지 부자는 그에게 장화를 만들라고 주문하며 떠났다. 그런데 웬걸, 미카엘은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지켜본 세몬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그 순간 급사가 한 명 뛰어와 부자가 죽었다며 장화 대신 슬리퍼로 주문을 바꾸겠다고 말한다. 곧 죽음을 맞이할 부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장화가 아닌 슬리퍼였던 것이다. 미카엘은 부자가 장화를 만들어달라고 한 순간 깨달았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지 않았다.
미카엘이 시몬 밑에서 일을 한 지 몇 년이 지났다. 그의 솜씨가 뛰어났던 탓에 시몬도 어느 정도의 재정적 여유가 생긴 상황이었다. 그러다 한 여인이 한 쪽 다리를 저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자신들을 찾아와 신발 두 켤레를 맞추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며 말한다. 두 아이가 쌍둥이라 치수가 똑같다고. 그 여인은 사실 친어머니가 아니었다. 미카엘이 만든 신발을 받으며 그녀가 밝히길, 두 여자아이는 본래 고아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을 하던 중 사고로 죽었고, 어머니는 출산후유증으로 죽었기에 옆집에 살던 자신이 키웠다고 말이다. 그 순간 미카엘은 깨닫는다. 자신이 데리고 와야 했던 여자가 바로 그 여자임을, 그리고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사실을 말이다. 친어머니는 죽었더라도 이렇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지 않은가? 미카엘 몸에서 빛을 발하며 천사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여기에 온 사연을 설명하며 다시 하늘로 돌아간다.
그렇다. 답은 사랑이다. 삶이란 총구로 조준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라는 동력 없이 굴러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간의 능력이 미천한 탓에 알지 못한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사랑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