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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Oct 23. 2023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정리 및 요약

비판철학은 어떻게 정의되는가?



 호르크하이머 논문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은 비판철학 -혹 프랑크푸르트학파- 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동시에 20세기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긴밀히 다뤄져야하는 저작이기도 하다. 호르크하이머가 비판이론의 창시자 중 한 명인 동시에, 자신들의 학문 -즉 비판철학- 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저작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번역된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을 통상적으로 구할 방법이 없다. 필자 역시 오래된 서고에서-본인이 구해놓았던 것은 아니다.- 이를 우연히 찾게 되었다. 상기의 사유로 필자는 위의 저작을 능력에 닿는 대로 한 번 정리해볼 생각이다. 이 글이 본인 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우선 비판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생애에 대한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호르크하이머를 비롯한 1세대 비판이론가들은 나치즘을 피해 미국에서 오랜 기간 학문했다. 그들의 눈에는 미국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비판이론가들은 자유주의는 긍정적 의미로, 민주주의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했다. 그리고 이 문제란 본질적인 측면에서 나치독일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비판이론가들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비판한다는 거대한 작업에 착수한다. 기존의 학문들 역시 이 비판을 피해가진 못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은 특히 학문체계에 대한 비판을 방점을 두고 있으며 그를 바탕으로 비판이론이 무엇인지를 정의한다. 이 저작은 약 60쪽의 분량을 지녔으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화두가 여러 모습으로 변주되어 반복되는 구성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전통이론이라는 학문적 전통의 윤곽을 잡은 후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이러한 전통이 데카르트로부터 연원한 것으로 분석한다. 그가 말하였듯이 전통이론가들은 수학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과학에도 사용한다. 이 수학적 방식이란 연역법이다. 그리고 당대에 많은 학문들은 이러한 방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과학이란 명제들이 연역적으로 뭉친 정합적인 체계 내지 개념들의 총괄이라고 정의된다. 비록 명제들의 기본이 경험주의적인지 합리주의적인지 등은 때론 다르지만. 실제로 인간을 연구하는 학자들 이러한 방식을 따르고자 노력한다. 다만 호르크하이머가 말하는 전통이론에는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사회과학이나 논리실증주의등 여러 학풍들을 포괄한다.


 이제 저자가 지적한 비판이론들의 특징에 대해 논의할 차례다. 우선적으로 필자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과학'적 학문들이 각광받는 이유다. 호르크하이머가 볼 때는 사회적으로 수리학이나 과학등이 옳다고 여겨지므로 다른 분야의 학자들도 그 방법론을 따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학문도 결국 역사∙사회적 맥락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학자라는 직업 역시 사회적 분업화의 결과물이자 일부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호르크하이머는 코페르니쿠스의 사례를 예로 든다. 지동설은 16세기에는 거의 논의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혁명적 힘을 발휘하게 된다. 보통의 학자들은 이러한 과학의 변화를 기존의 이론을 유지하는 것보다 폐기하는 것이 적절하고 효율적인 되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패러다임론을 생각해도 좋을 것같다. 하지만 호르크하이머의 관점에서는 아니다. 기존이론을 합리화시켜줄 보조명제들은 언제든지 만들어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시민 계급의 부상과 결코 떨어져있지 않다. 과학구조의 변화는 이렇듯 사회적 상황에 연관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변화처럼 거대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이다. 인간의 인식은 생활조건의 결과이다. 사냥꾼이나 어부들의 지각작용이 서로 다르고 이가 생활조건의 결과이듯, 오늘 날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식 역시 생활조건의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전통이론가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지식이 초사회적이고 독립·유동적이라고 믿는다. 동시에 그러한 지식을 지향한다. 하지만 전술했듯 이들 역시도 사회적 장치 속에 존재한다. 동시에 사회적 과정이며 산업의 일부이기도 하다. 사회와 기술, 이론은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다. 이론은 -특히 전통이론은-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방식으로 연구하고 사실을 확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발견되는 지식은 산업을 위한 정보나 자료, 수단이 된다. 이러한 학문적 착각 역시 호르크하이머는 데카르트에서 기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진리와 존재에 대한 이원론적 구별 말이다. 전통 이론가들이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하는 것 역시 사회적 문제를 발생시키고 심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전통이론은 전체를 다루기 보다는 특수하거나 개별적 대상을 다룬다. 호르크하이머는 이러한 전통이론이 무용한 것이라 주장하진 않았다. 오히려 인류의 발전에 기여가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단지 전통이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이성적인 사회-사회의 문제에 전통이론이 관여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함으로-를 위해선 새로운 학문 방식이 필요하다고 밝힐 뿐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학문방식을 비판이론이라고 명명하다.


 "한편 사회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활동이 있다." 비판이론의 탐구대상은 이렇게 정의될 수 있으며, 동시에 전통이론과 구별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회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며 사회구조 자체를 겨냥한다. 그들은 이성적이지 못한 사회를 개혁하며 현재의 불행에 대해 실천 -학문도 실천이다.- 를 위해 움직인다. 전통이론과 달리 이들이 다루는 것은 고립된 대상이 아니다. 비판이론은 전체에 매개된 집단을 주체로 한다.


 물론 이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사회적 맥락 속에 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지각하고 있냐 아니냐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외에도 비판이론과 전통이론은 교집합이 있다. 분석을 진행하며 연역이라는 탐구방법을 부정하지 않는다. 전통이론이 대게 추상적인 명제를 기본적인 전제로 삼듯 비판이론가들도 신맑스주의자들로서 경제적 교환이론을 전제로 삼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둘을 결코 같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없다. 우선 비판이론은 사회구조에 대해 사유하며 실용주의와 거리를 둔다. 동시에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냐에 대해 고민한다. 허나 전통이론가는 순수한 진리에 대해 관심이 있다. 비판이론은 실제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을 분석하며 형성된다. 즉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위에 언급한 것만으로는 비판이론이 왜 필요한지 충분히 설득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살을 붙일 계획이다. 호르크하이머는 사회문제를 어떻게 분석했는가? 그가 생각하기에 사람들은 인위적인 것을 자연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종의 체념에 빠져있었다. 사회적으로 발생하는 계급∙계층적 문제들이나 빈부격차, 부조리등이 그렇다. 이들은 인위적이기에 바꾸고 변혁시킬 수 있는 대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운명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전통이론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재촉하는 셈이다. 그들은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것을 탐구하고자 하며 그로 인해 인간들을 타자화시킨다. 데카르트적 사고는 인간이 사회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점을 망각하게 만드며 인간을 수동적으로, 즉 소외시킨다. 이들은 전통이론가들과는 다르게 실천을 촉구한다. 다만 이들의 실천에는 학문도 포함된다. 사회를 비판하는 이론을 구성하는 것도 충분히 실천으로 부를 수 있을 성싶다. 이는 비판이론의 문제의식에는 실천과 이론 사이의 긴장과 대립에도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후술하겠다.) 과학이 초사회적이고 말하듯, 우리의 행동도 초사회적 자유에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둘 모두 사회적 생산방식에 따른다.


 추가적으로 호르크하이머는 전통이론 중에서 맑스주의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비판이론은 분명 신맑스주의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론에 대해 완전히 찬성하지도 않는다. 우선 그들은 마르크스가 약속했던 낙관적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혁명의 동력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물론에 대해 극단적 견해를 취하지도 않는다. 물론 비판이론가들은 관념론보단 유물론에 보다 치우쳐져있다. 하지만 이들은 관념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한 이분법적 분류는 세상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사회는 유물과 관념 사이의 긴밀한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


 이런 일련의 주장들은 꽤 과격하다. 호르크하이머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는지 논문 후반부에 자신들에 의해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 적는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말한다. 이론의 의의는 비판에 있다. 이론은 갈등을 일으켜야만 하며 이는 필연적이기도 하다. 갈등 없는 이론은 이론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도구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론을 이용하려는 자들은 부르주아 계층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갈등은 프롤레타리아 계층과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이 갈등은 금전적 계급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인 계층은 금전적 요인이 아닌 교육 등의 외적인 요인으로 인해 생겨난 지위이기 때문이다. 다만 비판이론가들의 견해가 프롤레타리아의 지배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몇몇 사람들은 산업귀족이 아닌 대학교수들이나 중간계층의 국가공무원, 의사, 검사등이 지식인 계층이라는 특수하고 초사회적 계층을 형성해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계급 사이에서 부유하는 일을 호르크하이머는 반대한다. 이러한 행위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발생시킨다. "정신은 자유롭다." 이 자유는 실천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이상으로 호르크하이머의 주요 저작이자 비판이론의 주요 저작이기도 한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에 대한 논의를 마치겠다. 데카르트적 사고에서 계승된 전통이론은 자신들과 사회가 분리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우를 범한다. 이로 인해 사회는 -비록 학문이 이렇게 된대에는 사회의 영향력도 분명있지만 -비이상적 사회가 촉진된다. 반면 비판이론은 어느정도의 추상성을 담지한다는 점에서 전통이론과 접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사회 내적인 존재라는 점을 자각하고 있으며 개별적 탐구가 아닌 총체적 탐구를 진행한다. 이러한 활동의 목적은 사회를 보다 이상적으로 만들고 현재의 불행을 제거하는데 있다. 비판이론가들은 이론 역시 실천이라고 여겼다. 사회에 대한 유효한 비판을 하는 것 역시 실천인 것이다. 비판이론의 목적은 지식의 확장이 아니라 현재의 곤궁에서 해방하는 것에 있다.


 



" " 안에 문장은 모두 「전통이론과 비판이론」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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