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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현 Mar 19. 2024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서평

문화는 붙잡으려는 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은 문화를 소유가능한 대상이자 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이런 관점은 의식적으로 행해지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일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이런 관점은 실재와는 상당히 괴리가 있다는 것이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의 문제의식이다. 즉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는 상기의 사고방식에 대한 마틴 푸크너 교수의 도전이자 비판이다. 문화는 매우 동적이며 소유 불가능하다. 마틴 교수는 이런 관점을 서론에서 밝히며, 이후에는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역사적 일화들을 제시한다.


 저자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문학 전공자가 대중을 상대로 한 역사서를 저술할 때, 역사학자에 비해 갖는 장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서사를 구성하는 능력일 터. 마틴 교수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을 엄선하고 엮어 하나의 흥미로운 서사를 만드는데 발군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조직된 장들은 단순히 흥미로운 것을 넘어, 저자의 의도를 전달하는데도 무척 효과적이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대목을 예로 들고 싶다. 이집트의 종교란 본래 다신교다. 이는 절대적인 것이기도 했다. 허나 아케나톤이라는 남자가 왕좌에 앉으며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집트의 종교를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전환하고자 종교개혁에 착수한다. 또한 새로운 수도를 건설한다. 결과적으로 이 개혁은 실패한다. 그가 죽자 이집트의 종교는 다시 다신교로 회귀하였다. 또 아케나톤과 대립했던 이들은 그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제거하기 시작한다. 본래 고대 이집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케나톤의 경우엔 의도와 철저함이 엿보인다.


 일신론에 대한 아케나톤의 열망은 나일강이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에서, 모세라는 유대인에 의해 실현된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유대교의 시금석인 일신교라는 개념이 아케나톤의 아이디어에서 따온 것이 아니냐고 주장한다. 실제로 모세의 출애굽과 유대교의 형성은 아케나톤의 치세기와 엇비슷하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유대교는 현재까지도 지속되고있다. 또 기독교와 이슬람 등으로 발전하며 인류사를 풍미한 종교가 되었다. 종교에 대한 영향력이 점점 감소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종교의 영향력을 결코 작지 않다. 아케나톤과 그의 일신교는 이집트에서는 의도적으로 말살되었고, 단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에 영감을 받은 다른 이들에 의해 재창조되고 그들의 문화와 결합되며 역사상의 대폭발을 일으켰다.


 12장, 아이티의 역사 이야기도 사뭇 흥미진진하다. 여기서는 유럽의 계몽주의와 미국, 프랑스에서 벌어졌던 혁명이 아이티의 독립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가 다뤄진다. 아이티 혁명은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한 노예 혁명이었다. 또 자력으로 독립을 이뤄낸 몇 안 되는 대사건이기도 하다. 물론, 프랑스의 혁명가들이나 미국의 독립운동가들이 흑인-과 여성 등의 소외계층-들에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았다. 하지만 노예들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큰 영감을 받았다는 것, 또 그 덕에 목적을 달성했음은 사실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인권선언은 첫 문장에서 만민이 평등한 존재라는 점을 확인 -여성이나 흑인에게 투표권을 주진 않았지만- 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자연법사상이나 인권 등의 개념은 아이티 혁명의 이론적 배경이 된다. 아이티의 흑인들은 그 선언서의 개념들을 자신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실제 아이티 혁명의 대표적 인물인 벨리에는 프랑스혁명 공회에서 연설을 한다. 이 연설을 통해 프랑스 노예제가 종결되었으며, 흑인들도 평등한 프랑스 시민이 되었음이 선포된다.


 전술했듯 저자의 의도는 문화란 동적이며 소유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문화란 것은 또 전술했듯 단절되고, 보존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하며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단절되었던 문화가 복원되거나 재발견되어 폭발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문화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도 이러한 상황에 근거한다. 현재 남아있는 문화 중 단독적으로 발전한 것은 없다. 문화의 이러한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문화 폐쇄주의자들은 결국 문화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독단적인 인물들인 셈이다. 아프리카와 인도의 문화재를 약탈하여 박물관에 전시해 두는 유럽인들이나, 그들을 향한 적의 때문에 유럽적 문화를 절개하려는 탈 제국주의자들이나 이런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탈제국주의자에 대한 언급은 15장에서 짧게 등장한다. 이 장은 나이지리아의 두 소설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쪽은 영어를 사용하며 아프리카 최초의 노벨상을 받은 소잉카가 있다. 한쪽은 그와 반대로 나이지리아에서 유럽의 문화를 철저히 배제하려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서양 문화에 대한 극단적인 배척을 진행한다. 탈제국주의를 내세우는 인물 중 다수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며, 독재자가 되었다. 여기서 마틴 교수는 소잉카에 대한 애정을 과시한다. 소잉카는 영어로 글을 쓰면서도 나이지리아의 전통문화와 영국의 과오들, 그리고 역사와 문화, 개인들 간에 존재하는 상호작용들에 대해 다뤘다. 그는는 아마 저자의 관점에 부합하는 인물 중 하나였을 터. 그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문화적 자원을 활용하여 세계적인 작품을 창조했다.


 마틴의 주장들은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배타주의와 폐쇄주의 등-의 병폐가 여실히 드러난 지가 약 80여 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사람은 폐쇄주의적인 관점과 사고방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문화 간의 접촉이 때로는 폭력을 불러왔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한 문화 위에서 생활하고 있다. 또, 그런 변화로 인해 수 많은 부조리와 폭력이 극복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인류가 갈 일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 때문에 진보를 멈춘다는 것은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인간이 문명을 이룬 지 6000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는 지금까지 6000년의 시행착오를 겪은 셈이다. 때때로 인류사는 후퇴한 듯 보인다. 이런 생각에 반대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그런 후퇴는 언제나 그 이상의 전진을 보장했다. 그러니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문화에 대한 시선을 바꾸고 더 나아가야 할 때다.


 



 필자는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를 읽으며 조선총독부 철거가 떠올랐다.-몇 년 전, 서울에 소제한 일제시기 건축물을 철거하냐 마냐에 대한 논쟁이 뉴스에 자주 등장했던 기억이 있는데 어떤 건물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본래 건축물이란 끊임없이 개보수를 거치며 경우에 따라선 철거 해야 함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제의 잔재이기 때문에 없애야 한다는 건 감정적 불쾌함에 근거를 둔 주장일 따름이다.


 또 이제 그런 부류들의 건물을 보존하는 데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책에 등장한 사례처럼, 이로 인해 유익하고 폭발적인 문화 발전이 이뤄질지 어떨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의 우리들과 후대 모두, 서울 한복판에 세워진 조선총독부를 보며 제국주의와 범국가적 폭력에 대한 경계심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또 미래엔 한국이 강대국이 되어 다른 나라들을 착취하고자 할지도 모른다. 그럴 날이 오면 시민들은 조선총독부를 보며 역사를 상기했을 것이다.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잘못들이,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짓과 같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문화에 있어서 배타주의자이고 폐쇄주의자다. 그들은 문화의 발전을 방해하고 가로막으며 파손시키기도 한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제국주의자들이나 탈제국주의자들이나 이 점은 같다. 일본의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배척하자는 사람들은 제국주의자들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셈이다. 최근에는 비교적 완화되었지만, 일본에 비교적 친화적인 사람은 여전히 매국노나 악인으로 보는 사람들은 남아있다. 현시기에 충분히 성찰해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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