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시대, 민주시민은 어디로 나아가야하는가?
민주주의의 핵심은 절차다. 이 절차란 바로 절대다수의 의견교류다. 그 덕에 최대한 많은 관점과 의견을 청취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실수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 의견교류가 이뤄지는 장소를 공론장이라고 부른다. 민주주의를 하나의 지향점으로, 또 최선의 정치형태로 고려하는 한 우리는 공론장에 대해 숙고해야 하며, 더 긍정적인 공론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공론장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사람은 독일의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다. 우리나라에서는 몇십 년 전 학계에서 하버마스 붐이 분 적이 있었고, 세계 3대 석학이라는 수식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9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집필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은 2022년 하버마스가 저술한 논문인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를 포함하여 그 외 두 가지 텍스트를 묶어 번역한 단행본이다.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은 이전 하버마스를 세계적인 학자로 만들어준 저서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시대에 맞게 몇 가지 말을 붙이는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즉, 오늘날에 공론장의 구조가 또다시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고찰한 작품이다.
공론장은 보통 미디어를 통해 형성되어왔다. 필연적으로 기술이 발달하고 미디어가 변화함에 따라 공론장의 구조에는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디어, 즉 구미디어는 신문이나 잡지, 책, 언론사가 중심이 된 티비뉴스 따위였다. 이들은 모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장소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미디어는 '플랫폼'으로 대표된다. 플랫폼은 사람들과 창작물들을 연결하는 매개체의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곳에서 과거의 발신자와 수신자, 창작자와 독자의 구분은 해체된다. 이전에 기자와 독자가 나뉘어있었다면, 오늘날에는 모두가 기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기술의 변화는 항상 사람들의 의식변화보다 빠르다는 사실이다. 구미디어의 중심에는 충분히 훈련된 저술가와 기자들이 있었다. 또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때론 감시와 통제를 위한- 여러 절차가 있었다. 물론 모든 발신자가 양심적이었던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나름의 저널리즘과 절차, 기준 따위를 가지고 일했다. 만약 잘못된 정보를 발표했다면 그 책임은 엄연히 그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뉴미디어에선 상황이 다르다. 밀려드는 정보들 사이에서 옳고 의미 있는 정보를 선별하고 수용하는 건 독자의 몫이 되어버렸다. 뉴미디어의 발신자들에게 최소한의 소양을 기대할 수 없으며, 최소한의 기준이나 절차도 기대할 수 없다. 다수의 독자는 아직 이를 체득해 내진 못한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부모가 자식들에게 티비같은 걸 보지 말라고 했다. 요즘엔 자식들이 부모에게 유튜브 좀 그만 보라고 하는 시대가 아닌가? 확실한 건 어떠한 정보가 티비프로를 통해 발표되기 전까진 꽤 많은 절차가 있으며 국가적 처벌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지만, 유튜브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하바마스는 이런 플랫폼에서도 이제 콘텐츠와 자신을 매개로 송출되는 정보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비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술한 비판은 관점에 따라 무척 표면적인 주장일 수 있다. 반면 하버마스의 이어지는 비판은 보다 근본적이다. 뉴미디어는 공론장을 반쪽짜리로 만든다. 하버마스는 이를 봉건제로의 후퇴와 같다고 표현한다. 뉴미디어의 세계에서 개인들은 파편화되고 정보 과다에서 허우적거리며, 충분한 비판적 사고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추세는 공론장의 기능을 약화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라면 응당 있어야 할 절차들을 무용하게 만든다.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은 오늘날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술한 책이다. 즉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떠한 시사점도 주지 못한다면 무가치하다. 그렇다면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의 시사점을 찾아보아야 한다. 첫째로,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절차, 의사 교환과 공론장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둘째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짚어봄에 있다. 하버마스는 반쪽짜리 공론장이 포퓰리즘의 영양가 있는 토양이 됨을 지적한다. 하버마스 본인조차도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모두 공론장의 구조변동만으로 해설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고찰은 분명 예리한 구석이 있다. 마지막으로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에는 이런 뉴미디어의 등장에 발맞춰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도 던져준다. 하버마스는 플랫폼도 자신이 송출하는 콘텐츠들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또 우리가 충분한 소양을 기르고 건전한 공론장을 회복시켜야 함을 암시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전 시대에서 사용한 방법과는 분명 다른 수단을 사용해야할 터이다.
우리에게 아직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정치체제는 등장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우리는 공론장에 대해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점검해야야 한다.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은 그러한 역할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는 지적 아방가르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