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랑은 왜』서평
한국 토양에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
경상도 밀양에는 아랑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이 설화는 여러 야담집에 기록되어 있는데 공통적인 플롯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권력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다른 권력자에게 자신을 알려 복수에 성공하고 성불한다.’ 『아랑은 왜』는 이를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이런 설명만 들으면 탐정이나 수사관, 혹은 그에 준하는 인물이 나와 증거를 수집하며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상상할 것이다. 『아랑은 왜』는 분명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다. 하지만 소설 내에서 작가인 김영하의 행보는 꽤 발칙하다.
보통의 추리소설은 탐정이나 그에 준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리고 산발적으로 퍼진 듯 보이는 증거들을 이용해 진상을 알아내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추리소설의 플롯이란 소급하는 것이며 동시에 상승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김영하가 서술자로, 또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인물은 소설가다. 그는 익명의 소설가로 분한다. 여기서 소설가와 탐정의 차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둘의 목적은 명확히 다르다. 소설가 역시 탐정처럼 범인과 사건의 진상이 궁금할 터이다. 허나 소설가의 이러한 욕구는 더 훌륭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일 분.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겠다는 계산이 선다면, 범인이나 사건의 진상 따위 언제든지 내다 버릴 수도 있다. 『아랑은 왜』에서 진행되는 추리는 아랑 설화와 관련된 텍스트들을 샅샅이 살피고, 질문을 제기하고, 빈틈에 상상력을 욱여넣으며 진행된다. 또 독자가 흥미로워할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덧붙이기도 한다. 즉, 『아랑은 왜』는 소설을 쓰는 소설이다. 이런 연유로 『아랑은 왜』의 서사는 상승하는 동시에 하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랑은 왜』는 필자에게로 하여금 보르헤스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했다. 보르헤스는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남미의 소설가이며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효시기도 하다. 『아랑은 왜』에서 나타난 김영하의 시도는 보르헤스 적이다. 전통적인 소설 양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렇고, 가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러한 점에서 『아랑은 왜』는 귀한 소설이다. 이렇게 파괴적이고 창의적인 소설은 드문 편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서 이 소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진귀한 경험이다. 소설가의 사유를 따라가는 일도 꽤 흥미롭고.
다만 이런 질문은 제기할 수 있다. 보르헤스의 작품을 읽지 왜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아랑은 왜』는 분명 보르헤스 적인 시도지만 아류작이고 볼 순 없다. 최소한 필자가 기억하는 한에서 둘의 주제 의식이 겹치진 않는다. 또 보르헤스가 이야기를 창작하는 과정을 직접적으로 해체하는 작품을 쓰진 않았다. 두 번째 이유로 보르헤스의 작품은 심히 난해하지만 『아랑은 왜』는 아니다. 술술 읽히기도 하고 꽤 재밌다. 소설 읽기를 즐긴다면, 또 소설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